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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소장
김병학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소장
  • 김명기 기자
  • 승인 2015.02.12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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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선생은 고려인 문학의 시조(始祖)”
▲ 김병학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

(동양일보 김명기 기자) “포석 조명희 선생은 재소 고려인 문학의 시조(始祖)입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사는 한국인들의 문학은 모두 그 원류가 포석 선생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 한인 이주 15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연 ‘한국이민사박물관 특별전(2014년 9월 1일∼2015년 1월 31일)’에 자료를 제공하고 컨설팅을 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했던 김병학(50·사진)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은 지난 9일 동양일보를 방문한  자리에서 조명희 선생에 대한 높은 평가부터 내렸다.

김 소장이 동양일보를 방문하게 된 것은 평소 관심이 높았던 포석 조명희 선생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고, 오는 5월 진천에서 개관 예정인 포석 조명희 기념관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재소 고려인 문학의 시발점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봉신문이 창간된 것을 고려인 문학의 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와 둘째, 포석의 제자이자 극작가인 연성용씨가 1927년 원동변강희곡 경연대회에서 ‘승리와 사랑’으로 1등상을 수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마지막으로 1928년 포석 조명희 선생이 연해주로 망명하여 한글 문학의 씨앗을 퍼뜨렸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90% 이상의 연구자들은 포석을 고려인 문학의 시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포석 망명 이전의 문학과 이후의 문학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 할 만큼 그 질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 소장이 카자흐스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당시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 소련이 개방되자 광주지역 교수와 기자, 김 소장 셋이 소련 여행을 떠나면서부터다.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는 민족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모국어 부흥운동이 한창 일어나고 있었죠. 저희들이 찾아간 고려인 집성촌에서 한글학교를 세워달라고 간절한 요청을 해왔어요.

한글을 가르치는 민간학교가 카자흐스탄 2개, 우즈베키스탄 2개, 러시아 2개 등 6개가 설립돼 있었는데, 교수님의 추천으로 1992년 봄에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 고려인 최초 강제 이주지인 ‘우쉬또베’에서 1년 동안 학교 운영과 부교장 직책을 맡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육자이자 시인이고 한글문학의 전도사를 자임하는 김 소장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전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하고보면 1991년 소련으로의 여행은 문학과 교육과 민족혼을 일깨우는 일에 종사하게끔 만든, 그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된 셈이었다.

이후 카자흐스탄 수도인 알마아타에서 한글학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알마아타 종합대 한국어과 강사로도 8년간 일했고, 카자흐스탄 고려일보 신문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5년∼1996년, 2000년∼2003년 두 차례 고려일보 기자생활을 했죠. 고려인들 속에서의 생활이었습니다. 그 곳 고려인 1세대, 2세대와 친했죠. 고려일보는 소수민족 신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인의 문화와 사회생활, 숨겨져 있는 역사 등을 발굴하는 게 저의 주된 활동이었습니다. 재소 고려인들에게 문화적·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것을 세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선봉신문(1923년 3월 1일 발간)에서 레린의기치, 그리고 고려일보로 이어지는 신문이 그 첫째고요, 교육 전문가를 양성했던 고려(조선)사범대학교(1931년 설립)가 두번째, 그리고 고려극장(1932년 건립)이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국어와 모국 문화를 발전시켜왔던 3대 기구라 할수 있죠. 그 정신을 이어받아 고려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아 지금까지 뛰어왔습니다.”

1933년 선봉신문에서 당시 주필이었던 최호림의 요청으로 포석은 문학특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문학이론과 시 창작 기법 등의 강의였는데, 문인이었던 최 주필 또한 포석으로부터 문학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선봉 신문에 문예란을 만들어 연해주 지역 고려문학을 번성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요즘 깊은 고민이 생겼다. 모국어와 모국 문학이 3세대에 이르러 단절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발품을 팔고 열심히 연구해 고려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열성을 기울인다.

“포석 선생의 교육을 받은 직계 제자들이 한글문화 1세대인데, 대부분 돌아가시고, 1958년 북에서 온 망명작가들과 카자흐스탄으로 온 사할린 한인들이 2세대입니다. 그런데 3세대는 한글을 거의 모릅니다.

스탈린 정권의 민족정신 압살 정책 탓이었지만, 이제 그 3세대들이 모국어를 쓰고 모국의 정신을 알아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걱정이 많지만, ‘한류열풍’ 등으로 긍정적인 기류도 형성되고 있으니 더욱 우리글과 문화를 전파하는데 앞장 서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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