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비행기가 태풍을 만나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음날 신문을 펴든 딸이 자신이 아니라 앞 자리에 앉은 조지 클루니의 사진을 보게 될 것을 걱정하는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그는 한때는 슈퍼히어로물인 '버드맨'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벌어들인 돈은 흥청망청 모두 써 버리고 지금은 퇴물이 된 60세 할리우드 배우다.

꿈과 명성을 되찾으려는 리건은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한다. 자신이 배우의 길을 걷게 해 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리건은 "커리어가 걸린 의미 있는 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극에 '올인'하지만 첫 공연을 앞둔 주변 여건은 녹록지 않다.

연기 못 하는 배우를 자르고 급하게 섭외한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튼)는 연기도 잘하고 비평가들에게 인기도 좋지만, 모든 연기는 사실이어야 한다며 무대에서 진짜로 술을 마시는 등 기행을 일삼고 리건 자신에게 집중돼야 할 관심을 빼앗아가는 눈엣가시다.

이런 가운데 마약 재활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딸 '샘'(엠마 스톤)은 자꾸만 엇나가고, 오랜 무명을 거친 '레슬리'(나오미 왓츠)는 불안감에 떤다.

설상가상, 연극의 성패를 좌우하는 유명 비평가는 연극을 보기도 전에 '쫄쫄이 새 수트를 입은 할리우드 광대'의 존재 자체가 싫다며 최악의 평을 쓰겠다고 예고한다.

과연 리건은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훨훨 날 수 있을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버드맨'은 퇴물이 된 스타가 자신의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더이상 자신이 사랑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존재하지 않아. 난 여기 없어"를 읊조리며 권총 자살을 하는 연극의 주인공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리건의 모습은 점점 닮아간다. 연극이 "내가 살아온 기형적인 삶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라는 리건의 대사처럼.

리건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 역시 1989년 '배트맨'(감독 팀 버튼)에 전격 캐스팅돼 전성기를 맞았다가 '배트맨2' 이후 별다른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진 점을 감안하면 절묘한 캐스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로 하층민의 삶 속에 숨겨진 절망을 파헤치며 사회를 성찰해 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사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성공의 기준과 자아와의 싸움에 대해 얘기한다. 틈만 나면 리건의 귀에 들리는 환청은 리건의 복잡한 심경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여기에 미로 같이 복잡한 무대 뒤와 배우 사이를 넘나들며 길게 이어가는 카메라워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연극 무대와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대본 15페이지의 분량을 한 컷에 담아낸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은 "생각해보면 삶은 하나의 연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컷 없이 영화를 진행하는 것이 어쩌면 이 이야기의 리듬을 관객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극 중 리건의 연습실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빛난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아마도 이 문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골든글로브에 이어 오는 22일 열리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의 전초전격인 골든글로브에서는 각본상과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월 5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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