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지나 다시 찾을 때 포석 삶의 흔적은 온전할 지

▲ 조철호 단장이 이양구(맨 오른쪽)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에게 포석 기념관 건립과 관련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김 안드레이 교수가 이장호(왼쪽서 두번째) 한인회장에게 하바로프스크 작가의 집에서 살았던 포석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동양일보 김명기 기자) 하바로프스크 시립공동묘지에서 김 안드레이 교수가 들려준 헌시(獻詩)가 답사단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개운하지 못한 마음 또한 있었다. 조명희 선생의 묘비석이 분실됐기 때문이었다.

관계 기관의 관리소홀로 사라진 것은 조명희 선생의 묘비석 뿐만이 아니었다. 답사단의 첫 여정으로 찾았던 블라디보스토크 옛 극동대 자리에 있던 조명희 문학비 동판 2개도 뜯겨 나간 채 방치돼 있었다. 포석이 고려인들을 가르치며 항일정신과 문학혼을 일깨워주었던 륙성촌의 농민청년학교는 완벽한 폐건물로 방치돼 있었고, 화려했지만 마지막 거주지가 돼버린 하바로프스크의 ‘작가의 집’은 리모델링으로 인해 원형을 찾기 힘들게 됐다. 그나마 완전 철거는 모면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앞으로 10년, 20년 뒤엔 포석과 관련된 ‘답사지’에 또 어떤 변형과 유실이 찾아올지, 가슴이 참 답답하다.

 

그러나 안타깝고 속상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답사단이 하바로프스크를 찾았을 때 만나게 된 이장호 한인회장은 사라진 포석의 묘비석 이야기를 듣곤 그것이 마치 자신의 과실인양 죄스러워했다. 그리고 모스크바로 떠나는 일행에게 자신의 열정을 다해 찾아보겠노라 약속했었다.

‘포석 시리즈’ 연재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이 회장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김명기 부장님.

나머지 일정은 잘 보시었는지요?

제가 공원묘지 묘비의 소재에 대하여 알아보려 하니 그쪽에서 러시아어로 정확히 어떻게 쓰여 있는지, 아니면 사진 찍어 둔 게 있는지 정보를 문의해 왔습니다.

김 안드레이가 통화가 안되어 연락을 드립니다. 회신 주시기 바랍니다.

하바롭스크에서 이 장호드림

 

이 회장이 포석의 묘비석을 찾는데 필요한 정보 몇 가지를 적어 답신을 보냈다.

 

이장호 회장님께

동양일보 김명기 부장입니다. 보내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조명희 선생님과 관련해 많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보여주신 회장님의 호의와 열정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답사단은 남은 일정 잘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저는 10월 중순께부터 조명희 선생 관련 시리즈물을 연재하게 됩니다. 1부 조명희 선생 답사기, 2부 조명희 선생의 삶과 문학. 대략 2가지의 큰 타이틀로 최소 몇 달 정도는 연재할 계획입니다. 10월 중순이나 말께, 인터넷에서 동양일보를 검색하면 제 시리즈물을 보실 수 있을 듯싶습니다.

분실된 조명희 선생의 묘비는 대략 이렇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첫째, 조명희 선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둘째, ‘yo jo’라는 이름 표기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알파벳 ‘y’처럼 생긴 것을 러시아에서 어떻게 읽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셋째, 조명희 선생의 약력이 간략히 기술돼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조명희 선생의 얼굴을 알게 되면(인터넷 검색을 하면 선생의 초상화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해 볼 수 있겠고요.

묘비명에 ‘yo jo’라는 이름 표기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면 될듯싶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고요, 경과와 결과 알려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다시 편지가 왔다.

 

과거 묘비 사진을 찾았습니다.

따쉬겐트의 안드레이로부터 러시아 명을 전달 받았습니다.

현재 공원 총관리인을 소개 받아서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결과는 현재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좋은 기대는 안되리라 봅니다.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연세가 많은 과거 거주하던 한인분들도 수소문 중인데 결과가 나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회장은 아직까지 포석의 묘비석을 찾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것을 그는 한인회장으로 느낄 수 있는 긍지와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같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망외의 소득을 기다리면서도 이 회장이 부담을 느낄 정도의 기대는 자제하고 있다.

 

▲ 조명희 문학비 앞면.
▲ 동판 두개가 뜯겨진 조명희 문학비 뒷편.
▲ 폐허가 된 륙성농민청년학교 내부.
▲ 하바로프스크 작가의 집.

하나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면, 그 이면에서 누군가는 바쁘게 움직여야 할 부분들이 있다. 그 프로젝트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련 인물 섭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면멸한 루트 개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의 이양구 총영사와 김일환 영사의 도움도 소개한다.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면을 빌어 전하고, 더불어 답사가 어떻게 기획되고 추진됐는지 그 흔적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단 답사단이 찾아갈 포석 선생 ‘삶의 궤적’인 연해주 지역에서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재외공관을 찾아보니 블라디보스트크에 총영사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메일을 통해, 직접 전화 통화를 통해 이양구 총영사와 접촉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답사단의 방문 목적과 시기, 일정 등에 대해 설명하며 협조를 부탁했다. 그리고 이 총영사의 답신이 왔다.

 

이양구 총영사님께

저번에 메일 보낸 것 잘 받아보셨는지요.

협조 부탁 드렸던 것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여쭤보고자 메일 올립니다.

그동안 조명희 선생과 관련된 인물중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스리스크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몇 분이나 섭외됐는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섭외 중이라면 몇 명 정도 조명희 탐사단이 만나볼 가능성이 있는 지도 알고 싶습니다.

동양일보 탐사단이 9월 2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많은 분들을 섭외해 주셔서 탐사단이 많은 성과를 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락 루트가 막혀 있다면, 한 두명이라도 괜찮습니다.

해외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면서 업무에 바쁘신 줄 알면서도 부탁 드리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빠른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동양일보 김명기 편집부장.

2014년 8월 4일.

 

메일 잘 받았습니다. 담당영사가 알아보고 있습니다.

결과 나오는대로 알려드리지요.

의미있는 일이니 저희로서도 가능한 지원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기 바랍니다.

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2014년 8월 6일

 

이양구 총영사님께

수고 많으십니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다는 말씀,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님께서도 총영사님의 적극적인 배려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제 ‘조명희 탐사단’이 일주일 정도 후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게 됩니다. 탐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몇 가지 상의하고 협조 요청을 드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첫번째, 조명희 선생 제자 등 관련 인물들의 섭외가 현재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는 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저도 예상합니다. 그 분들의 연세가 80∼90세 정도 됐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두분이라도 찾게 되면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조명희 선생 연구와 관련 집필과 ‘조명희 문학관’ 조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조명희 선생 관련 정보를 수집하다 발견한 인물이 한 분 있습니다. 조명희 선생의 제자 ‘최 예까떼리나 미하일로브나’라는 분입니다. 조명희 선생의 창작유산을 많이 연구·발표하였던 어문학 학사라는 정도가 제가 알고 있는 정보입니다. 혹시 총영사관에서 ‘최 예까떼리나’를 찾으실 수 있다면 자료 수집과 증언 녹취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 총영사님과의 회합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조명희 선생 관련 인물과, 탐사단 방문 예정지에 대한 정보에 대해 총영사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으면 합니다. 탐사단이 총영사관을 방문해서 탐사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탐사단에서는 제가 이와 관련된 내용을 소책자로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토대로 상의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참고로, 이번 탐사단의 주 탐사지역은 블라디보스트코, 우스리스크, 하바로프스크가 될 것이고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2박3일의 일정으로 탐사활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탐사단은 9월 2일 오후 2시 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게 됩니다. 도착 후 탐사단이 총영사관으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여 탐사단이 방문하고자 하는 곳에 대한 정보가 탐사단 측으로서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방문 예정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 총영사님과의 회합에서 탐사단에 제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업무도 바쁘신데 많은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님께서 총영사관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의 말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해서 탐사단이 총영사님과 회합을 가질 때 작은 선물을 증정할 예정입니다.

이번 탐사단의 활동과 탐사내용, 조명희 선생의 삶과 문학 등은 10월 중순부터 동양일보에 연재하게 됩니다.

총영사님과 총영사관 측의 세심하고 정성스런 배려에 대한 인사는 제가 1년 가까이 연재하게 될 그 신문 기사 시리즈를 통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국위선양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하시는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양일보 김명기 편집부장.

2014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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