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버리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신대유~ 아 솔잎을 뿌려서 뭐하신대요 ~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어머니 꽃구경가요. 제등에 업혀 꽃구경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장사익 ‘꽃구경’)

(나) 2010년 겨울 밤, 서울의 어느 아파트.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자기 집 현관문을 열고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그 학생이 아파트를 빠져나가자 그의 집이 화염에 휩싸이고 불길이 솟구쳤다. 소방차가 와서 불을 껐지만, 학생의 할머니와 부모와 여동생이 불길에 희생되었다. CCTV에 찍힌 학생은 곧 붙잡혀 경찰의 취조를 받게 되었다. “나는 예술 계통의 공부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판사가 되어야 한다며 마구 때렸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어요. 할머니와 여동생에게는 미안해요”하며 펑펑 울었다. 취조하던 경찰도 울었다.

(가)와 (나)의 스토리는 자식의 부모 살해라는 공통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땅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가)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모자간의 심리 그 근원에 비통한 감정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아들의 죄스러워 하는 마음과 아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의 귀가 길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숭고한 받아들임이 깃들어 있다. 허기진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 춘궁기, 꽃들은 화엄 세상인 양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꽃구경 시켜드린다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숲속에 이르자 아들의 의도를 알아차린 어머니,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는 어머니, 아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어머니, 그 때 어머니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의 귀가길을 염려하여 솔잎을 뿌리는 것이었다. 솔잎을 뿌리는 어머니의 속엣말은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아들아’, 어머니를 산 채로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아들과 그것을 자연법에 맡기고 순응하는 어머니의 임이 우리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비장미와 숭고미를 느끼게 되는 까닭은 말 없는 중에도 모자간의 소통이 하늘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생과 사로 갈라졌지만 슬픔도 아픔도 배고픔도 다 뛰어넘는 받아들임으로 모두 치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나)는 완벽한 가족 간의 소통단절이 초래한 비극적 스토리이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가정에서 일어난 희대의 사건이다. 가족 간에 소통지수는 제로인데 분노지수만 최고치에 이르렀다. 아버지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관계, 할머니와의 관계, 여동생과의 관계 등 아들과 관계의 끈을 가진 모든 가족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이다. 이들은 서로 자기 말만 했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대리욕구를 채우려 했고, 아들은 자신의 욕구만이 최선의 가치였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타인을 복종시키려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타인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니까 폭력을 행사한다. 가족인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에게 짐이 돌 뿐이다. 아버지의 폭력에 아들이 폭력으로 맞서 더 이상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었다. 서로 주고받아야 소통이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소통이 아니라 억압이다. 이렇게 억압받은 무의식적 자아는 언젠가는 분노로 폭발한다. (계속)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