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박희선 시인 네 번째 시집 ‘녹슨 남포등’ 시와에세이서 출간

 

탐욕 등지고 살아가는 외로운 인간과

적적한 시골집의 풍경·숨은 생명 탐색

(영동=동양일보 임재업 기자)영동문학의 선구자 박희선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녹슨 남포등(시와에세이)’이 출간됐다.

박 시인의 이번 시집은 통속적 가치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외롭게 하늘의 뜻을 바라며 자연과 사람 속에 숨은 진정한 생명을 탐색하며 시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내 영혼의 집은 오랫동안 비어있다/좁은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고/돌담 밑에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두꺼비가 저 혼자 울었다//문고리에는 가족들의 지문이 아직도 반짝이고/어두운 부엌에는 가난을 끓이던 양은솥이/어둠 속에 녹슬고 있었다//오랜만에 찾아간 내 영혼의 빈집 뒤란의 감나무가 말했다/오늘 밤은 처마 끝에 등불이나 달고/지나가는 기러기나 불러 하룻밤 함께 자고 가라 했다 (시 ‘빈집’ 전문)

박 시인은 문고리에 반짝이는 가족들의 지문과 부엌에서 “가난을 끓이던 양은솥”이 녹슬어가는 것을 보다가 뒤란을 지키는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저절로 붉게 익어가는 감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자신도 “처마 끝에 등불이나 달고” 자신처럼 외롭게 날아가는 기러기를 불러 재워 보내고 싶어 한다. 그 ‘등불’은 곧 깊은 사유 끝에 내면 깊이에 잠재된 진정한 자아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박 시인은 그런 시만이 집 없는 기러기처럼 외로운 이웃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안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매운 연기에 그을린/낮은 처마 밑에는/작은 등불 하나/눈보라 속에/밤새도록 기침까지 했다// 육손이 할머니가/이승에 걸어두고 가신/녹슨 남포등은/오랜 세월/기름 한 방울 없어도/바위에 떨어져도 꺼지지 않았다 (시 ‘녹슨 남포등’중)

‘남포등’은 할머니의 유품으로 “어둡고 추운 곳”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따스한 위로와 희망을 주던 순결한 영혼의 상징이다.

낡은 동화적인 풍경 속의 외딴집 처마에 걸린 ‘남포등’엔 박 시인이 지향하는 시정신이 함축적으로 투시되어 있다.

박 시인은 영동 최초의 문학동인 ‘피노래’ 발기하고 영동문인협회의 전신인 영동문학회를 조직해 열악했던 지역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한 이후 시집 ‘연옥의 바다’, ‘마을에 뻐꾸기가 운다’, ‘백운리 종점’ 등을 펴냈으며 현재 영동 매곡면 노천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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