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임금님의 수치스런 비밀을 지켜야만 하는 이발사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서 고민하다가 병을 얻고 말았다. 그는 어느 날 대나무 숲에 가서 비밀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은 이상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임금은 수치스런 비밀을 백성들에게 털어놓았으며 비로소 당당한 임금님의 모습을 되찾았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는 신라 경문왕의 이야기이다. 금기와 위반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인간은 죽인다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은 못 참는다는 주제를 갖고 있다. 말하고 싶어 하는 인류 보편의 속성을 이 설화에서는 문제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필화사건은 이런 죽기를 각오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속성 때문에 생기는 문학적 사건이다. 세치의 혀를 잘못 놀려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대체로 인간은 말하기는 좋아하고 듣기는 싫어한다.

얼마나 수치스러웠으면, 임금은 비밀을 누설할 시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발사는 목숨을 내걸고 대나무 숲에 가서 외쳤을까? 그리고 어찌하여 대나무 숲은 바람을 이용하여 온 백성에게 이 진실을 알려주었을까? 이 세 층위의 스토리라인을 포괄하는 하나의 주제는 치유이다.

이발사는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어내어서 건강을 회복하였고, 임금은 자신의 수치를 만천하에 공포함으로써 즉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왕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이들을 건강으로 이끈 매개체는 숲이었다. 숲은 곧 백성의 환유이다. 바람 소리에 실려 나가는 메아리는 뭇 백성의 소리이며, 뭇 백성의 소리를 모두 귀 기울여 들으라고 임금님의 귀는 매일 매일 자랐을 것이다. 임금님이 뭇 백성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진실을 내보였을 때 세상이 평온을 되찾은 셈이다.

억압된 감정이나 이야기나 진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병을 얻는다. 이 때 가장 현명한 치유의 방법은 억압된 내용들을 쏟아낼 대상을 찾는 것이다. ‘그 대상을 이 신화에서처럼 자연에서 찾는 것은 허무맹랑한 종교에 빠질 우려가 있다.’(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스승이든 나의 한(恨) 덩어리를 털어놓을 대상은 임금님처럼 큰 귀를 가진 사람이다. 아무렇게나 털어내도 그 순간 동안 오직 같은 감정으로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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