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도이 감독 ‘기억과 산다’ 상영… 고 김순덕·강덕경 할머니 삶·죽음 담아

 

“길고, 보기에 괴로운 영화지만 지금 일본인들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위안부 소재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과 산다’를 만든 일본의 프리랜서 언론인 도이 도시쿠니(62·사진·土井敏邦) 씨는 정식 개봉 첫날인 지난 4일 오후 2회차 상영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영관인 ‘시부야 업링크’는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 중 하나인 시부야(澁谷)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전용 소극장이다. ‘기억과 산다’의 상영관 객석은 42석에 불과했지만 이날 두 차례 상영 모두 빈자리없이 관객이 들어찼다. 대부분 중장년이었지만 20∼30대로 보이는 젊은이도 몇몇 섞여 있었다.

‘기억과 산다’는 도이 감독이 1990년대 중반 약 2년에 걸쳐 고(故) 김순덕(2004년 작고)·강덕경(1997년 작고)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6명의 삶과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영상에 담은 작품이다.

같은 시간대에 10분 거리의 시부야역 앞에서 열린 우익 단체의 집단 자위권 법안 지지 연설회에 나선 연사의 ‘포효’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 ‘낮은 목소리’였다.

상영시간 3시간 35분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영화지만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은 찾을 수 없었고, 자막이 다 올라가자 객석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원래 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고 밝힌 34세 회사원 오타니 씨는 관람 소감을 묻자 피해자들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들어본 적은 처음”이라며 “한번 듣고 끝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군위안부와 관련한) ‘책임자’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도이 감독은 2회차 상영후 무대 인사 시간에 “처음에 나를 계속 피했던 강덕경 할머니가 결국 취재에 응한 것은 ‘당신이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전해달라’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서 지금 ‘노 모어(no more) 나가사키, 노 모어 히로시마(이상 2차대전 원폭 피해지)’만 외칠 뿐 누구도 ‘노 모어 난징(南京·일본군의 중국인 대학살이 이뤄진 곳)’은 말하지 않는다”면서 “여러분 앞에서 역사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억과 산다’는 도쿄를 시작으로 사가, 나고야, 요코하마, 후쿠시마 등지에서 순차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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