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떤 양반이 고깃간을 찾았다. “돌쇠야, 고기 한 근만 주거라.” 돌쇠는 고기를 썩둑 잘라 주고 돈을 받았다. 그 때 다른 양반이 와서 말했다.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 돌쇠가 고기를 듬뿍 썰어서 주었다. 먼저 온 양반이 화를 냈다. ‘이놈, 왜 고기 한 근이 이렇게도 다르냐?’ 돌쇠가 얼굴을 씰룩거리며 대답하였다. “네에, 그것은 입쇼. 나리 것은 돌쇠가 자른 것이옵고, 이분 것은 돌쇠네가 자른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돌쇠와 두 양반의 소통의 메시지는 고기 한 근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쇠에게 말을 거는 두 양반의 어투는 달랐다. 첫 번째 양반은 자신의 입장에서 돌쇠에게 하대하면서 명령조로 말을 건 반면, 두 번째 양반은 돌쇠의 입장에서 돌쇠가 듣고 싶어 하는 겸양의 어조로 말을 건 차이이다. 이 다른 어투로 말미암아 돌쇠로부터 받은 대접은 어투 이상이었다. 그러므로 덤은 ‘내면적 감정터치 수준으로 상대방이 스스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내면적인 감정 표현’(박승호, ‘공감소통대화법’)인 셈이다.

첫 번째 양반이 자기가 말하고 싶어 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의 유형이라면, 두 번째 양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의 유형이다. 두 번째 양반처럼 자신의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인정하는 말하기가 진정한 공감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누군가와 말하고 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아무리 행동반경이 적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온종일 타인과 소통을 하면서 지낸다. 그중에서도 소통이 가장 빈번한 관계가 부부일 것이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천만 번 더 들어도 듣기 좋은 말, 사랑해’라는 노랫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는데 사랑이란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사랑이 깊어진다. 이에 비해 남편이 아내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인정해 주는 말’이라고 한다. 인정한다는 말이 남편들에게 용기를 주는 까닭은 성장 동기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말(박승목, 위의 책)이기 때문이다.

말하기 방식을 공감의 대화법으로 바꿔본다면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특히 상처받은 이들과의 대화는 공감의 말로 시작점을 삼으면 좋겠다. 공감대화법은 경청을 전제로 하기에 더욱 가치 있는 소통법이라 할 수 있다.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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