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자 한국부인회 단양군지회장

 

곱디고운 자태를 들어내며 알알이 감 열매가 내 눈물방울처럼 달려있던 계절에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정든 집을 떠나보냈다. 너와 함께 살기로 작정하고 추억보다는 현실에 닥쳐서 비우고 또 비워 이삿짐을 옮긴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개월이나 흘러 좁은 담벼락엔 장미가 만발이구나.

남편의 사업 실패로 분신 같은 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사실과 또 90이 넘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거처를 준비해야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갈 곳 없어 막막하기만 하여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에 기꺼이 우리와 함께 4대가 모여 살자고 마치 구세주 같았던 내 예쁜 며느리의 한마디 고맙고 또 고마웠다.

요즘 신세대들은 물질만능에 젖어 돈 많은 시부모 아니면 효도도 안한다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손익계산이 전혀 없는 착한 그 마음만은 엄만 죽을 때 까지 고마워 할 거야.

하지만 내 예쁜 며늘아. 평생 남을 위해 봉사로 살아온 삶이고 아무리 귀한 것도 나누어 먹고 내 것까지 아낌없이 퍼 주는 게 기쁜 내 삶이라 자부 하고 살지만 정리정돈과 깔끔한 살림이 원칙이었던 내 삶에, 정리정돈 보다는 자신의 몸이 우선 편해야 행복한 내 며느리와의 한집 살림은 생각보다 엄만 행복하지만은 않구나.

남이 편하고 내가 힘들면 내가 힘든 그 길을 택하는 나의 삶이지만, 이젠 엄마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가고 관절에 무리가 와서 계단도 못 오르고 밤이면 무릎이 아파 잠을 설 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구나.

살림이 미숙한 너이기에 엄만 기꺼이 살림을 맡았고 아침에 눈뜨면 너희 부부 야참 먹고 쌓인 설거지, 아침준비, 손녀 둘 예쁘게 치장시켜 유치원 보내기, 그리고 청소, 7명 식구들의 빨래….

엄마도 사람인지라 화도 나고 신경질이 날 때가 있지만,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그래도 네 덕에 우리 식구 텃밭이라도 있는 단독 집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또 추스르곤 한단다.

늙은 부모 찾아온 손님 항상 밝은 모습으로 맞이해 주고, 기쁘게 말상대 해주고, 인사 하나는 끝내주는 우리 며느리 정순아! 언제까지 엄마만 믿고 살림을 안 할 거야? 이제는 아이들도 자라고 엄마도 늙어 가니 올해부턴 조금씩 살림에 관심을 기울이면 안될 까나?

“아니오”하고 안하는 밉상보다는 “예”하고 안 하는 게 백번 좋지만 언제나 힘차게 “예’하는 그 말에 책임지는 우리 며느리가 되었으면 엄만 더 바랄께 없단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세상엔 없단다,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익혀가다 보면 어느새 살림에 고수가 되어 있을 거다.

요즘 얼마나 편한 세상이냐? 손에 쥐인 핸드폰에 궁금한 것 물어보면 전문가들의 조언이 쏟아지고, 음식 이름만 치면 조리법과 요리과정이 간단명료하게 올라가 있고, 이젠 몰라서 못 한다는 말이 핑계거리 밖에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잖니.

언젠가 다시 분가도 할 것이고 또 엄마, 아빠가 둘 중에 홀로 되어 원치 않은 합가도 될 수도 있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지만 정순아 우리 세월이 흘러도 서로 버텨주는 기둥이 되자.

오늘도 내 눈에 보이는 단점보다는 네 맘속에 있는 예쁜 마음만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 한단다.

진정으로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닌 그저 딸이 되어 내 맘 깊은 곳에 자리 잡을 정순이를 기대하며 엄마가 많이많이 사랑해 줄게.

예쁜 내 아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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