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11-17 17:08 (토)
특별기고 - 7월 14일의 단상,프랑스 대혁명과 민주주의<한희송>
특별기고 - 7월 14일의 단상,프랑스 대혁명과 민주주의<한희송>
  • 동양일보
  • 승인 2015.07.13 2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희송(독서시대 대표 / 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 한희송(독서시대 대표 / 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1453년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동로마제국 멸망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서양세계에 전했다. 이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선물한 르네상스와 함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것이 변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생각에 놀라워 했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최소화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서는 인간이 중심이어야 한다’라는 새로운 명제 앞에 하릴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술탄과 귀족이 아닌 시민들 스스로가 구시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일원이 되기까지 인류는 300여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776년 미국독립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변되는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자생적 노력은 그 정신적 바탕인 르네상스로부터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야 했을까?
 
역사는 자유를 향해 인류가 걸어 온 자취이다. 동시대에서 사람들에게 허용된 자유의 질과 양은 그 시대가 가진 사고능력의 크기를 최대값으로 한다. 따라서 추상적 사고의 범위가 작으면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기회를 그만큼 박탈 당한다.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더라도 이를 누릴 기회가 없으면 그 자유는 무용지물이 된다. 르네상스라는 문화, 예술 혁명이 정치구조의 변화를 통해 일반화 되기 까지 흐른 300년은 이를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용기와 이로 인해 유발되는 고통을 감당할 세대를 가질 수 있을 때 역사는 자유를 향해 한 걸음을 옮긴다. 이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혁명은 그래서 귀중한 것이다. 역사의 발전법칙에 순응하는 것이 역행하는 것 보다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귀중함을 기억한다. 또한 이를 아는 후손들만이 그 가치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며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자신들의 세대를 기억시킬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La Fete nationale)을 기억한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중세의 잔재들에 내린 사형선고이자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왕보다 사람들의 건전한 이기심으로부터 유발된 ‘보이지 않는 손’이 더 안전하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미 영국의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 의해 확인된 후였다. 원초적 자유권을 국가에 맡기고 시민권을 받는 것이 자연상태에서보다 더 넓은 범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사회 계약론’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정되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루이 16세의 실정과 삼부회의 소집은 혁명의 전제조건을 채우는 절차였다. 제 3계급은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떠나 인근의 테니스 코트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국민의회가 탄생함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들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바스티유로 향했다.
 
7월 14일(Le quatorze juillet) 프랑스 전국엔 삼색기가 펄럭인다. 파리의 개선문에서부터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콩코드광장에 이르는 군인들의 퍼레이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프랑스 혁명기념일 행사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수십 개의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도 펼쳐진다. 가히 세계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뽐내는 것 같다.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혁명기념일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놀랍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일에 그들은 에펠탑(The Eiffel Tower)을 세웠다. 그리고 같은 해에 프랑스혁명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전 세계인에게 보이기 위해 파리 국제박람회를 열었고 에펠탑을 박람회장의 입구로 사용했다. 1989년이 되자, 프랑스는 혁명 200주년 기념일을 바스티유 국립오페라 극장을 지음으로서 바스티유와 연결시켰다.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미국의 독립이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선구로서 미국의 독립선언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높다. 이를 잊지 않은 프랑스 사람들은 독립선언으로 표현되는 미국의 시민혁명까지 챙겼다. 1876년 미국독립 100주년을 위해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을 선물한 것이 그것이다. 뉴욕의 허드슨 강 입구에서 매년 수십만의 관광객을 내려다 보는 로마의 자유의 여신 리베르타스(Libertas)는 미국의 독립과 함께 프랑스 시민혁명의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은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으로 프랑스 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7월 14일이다. 226년 전의 함성으로 시작된 근대 민주주의와 현대를 표방하는 요즘의 민주주의를 묵상하게 하는 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