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마부 요나 포타포프가 황혼녘 기차역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첫 번째 손님인 군인이 탄다. 마부는 한참을 가다가 어렵게 아들을 잃은 슬픈 이야기를 꺼낸다. 손님은 빨리 달리라고 재촉할 뿐 마부의 말을 건성건성 듣는다. 두 번째 손님으로 청년 셋이 탄다. 늙은 마부는 그들에게도 우물우물거리다가 자신의 슬픔을 슬쩍 꺼내본다.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건 농지거리와 빨리 달리라는 재촉 그리고 ‘인간은 모두 죽게 마련’이라는 공허한 말뿐이다. 숙소에 돌아와 젊은 마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이미 잠들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까.’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혼자서 그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다. 마굿간으로 가서 말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그렇다…. 쿠지마 요느이(마부의 아들)는 이 세상에 없어. 먼 곳으로 떠나갔어 … 보람도 없이 살다가 죽고 말았어 … 말아, 가령 네게 새끼말이 있고 넌 그 엄마라고 하자 … 그런데 갑자기 그 새끼말이 어딘가 먼 곳으로 가버렸어. 그래도 너는 슬프지 않겠니?’ 말은 먹이를 씹으면서,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주인의 손에 입김을 불기도 하였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안톤체홉 ‘비탄’)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가 죽기를 각오하고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을 주제로 삼은 이야기라면, 안톤 체홉의 ‘비탄’은 타인의 말은 죽기보다 듣기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을 주제로 삼은 소설이다.

늙은 마부는 아들을 잃었다. 자식을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아픔을 겪고 있다. 어떤 고통에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 아픔을 말하고 싶지만,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손님인 군인은 마부의 말을 건성건성 흘려보낸다. 슬픈 사연을 가진 상대의 말이 아닌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타인의 말일 뿐이다. 두 번째 손님인 청년들은 자신들의 갈 길이 바쁘니 빨리 달리라고 재촉한다. 어렵게 꺼낸 마부의 말을 듣고는 농지거리와 ‘인간은 모두 죽게 마련’ 이라고 답한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 사실이지만 마부의 아픔을 전혀 헤아리지 많은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지 마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자신의 편견으로 응수하는 말이기 때문에 말하는 이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듣는 사람이 자신의 편견이나 판단을 근거로 대답하는 것은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결국 늙은 마부는 사람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말은 침묵으로 주인 말을 듣는다. 침묵으로 들어주어 주인의 가슴에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워주었다.

침묵은 가장 뛰어난 경청의 자세이며 소통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나 사연으로 가득 차 있어서 들을 수 없지만 말은 자신의 문제를 다 비워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