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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연해주지역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돌아보며<유기준>
특별기고 - 연해주지역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돌아보며<유기준>
  • 동양일보
  • 승인 2015.08.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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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아산시의회 의장)
▲ 유기준(아산시의회 의장)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마음 판에 새기며 민족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지난 7월 20일~24일의 일정으로 연해주지역 한국의 독립운동현장을 돌아보았다. 먼저 옛 우리선조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촌락을 이루며 살았던 ‘신한촌’을 답사했다. 독립운동의 요람지, 중국은 명동촌, 연해주에서는 신한촌이다. 신한촌은 우리민족이 1860년에 두만강을 건너와서 살았고, 자신들은 고려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은 왜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땅에 살게 되었는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먹고살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서였다.
러시아의 유명한 탐험가 N.H프르제발스키는 1867-1869년 우수리지방을 여행할 때,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부를 때 가우리(Kauli), 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당시 한-러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스스로를 고구려 또는 고려 사람으로 칭하였다.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 사람들이 연해주가 고구려의 땅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를 고려 사람들이라고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 옛날 만주와 연해주를 호령하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며, 러시아인들에게 고려 사람이라고 지칭했다면 그들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고려인들이 조직한 고려족회(1917), 한인사회당산하의 고려적위군(1918), 고려인동맹(1919), 고려인 자치주의 고려공화국 등이 조직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09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보고서에서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은 50만 명이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다고 기록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87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인촌이 형성되었다. 그 마을 이름이 ‘개척리’다. 이곳에서 조선인들은 꿈과 희망을 모아 마을을 만들고 함께 모여서 살았다. 그러나 ‘개척리’ 조선인 마을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2-4㎞밖으로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새로 이주하여 만들어진 마을을 ‘신개척리’라고 불렀는데, 한인들은 ‘신한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신한촌은 중앙아시아로 고려인(한인)들이 강제이주 되기 전까지 존재하면서 해외 독립 운동가들의 주요 활동근거지가 되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신한촌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가? 고종황제의 지시를 받고 이범윤은 1000여명 규모로 ‘충의대’라는 의병을 조직하여 크게 활동하며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범윤은 헤이그밀사 이위종에게 1만 루블의 군자금을 보내기도 했다. 최재형의 의별들, 안중근 의사, 이상설, 이위종(헤이그밀사의 주역) 그리고 이동녕, 이동휘도 이곳에서 활동하였고, 유인석이 이곳이 모인 의병 50여명과 함께 이곳에 와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일야방성대곡을 통해 을사늑약 체결의 통분을 만방에 알린 장지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하여 ‘해조신문’에 애국적 논설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고려인신문 ‘대동공보’가 있었다. 이토 암살을 실었고 최재형이 사장이었으며,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도 대동공보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1910년 홍범도, 이범윤, 유인석 부대들이 연해주에서 통합되어 ‘창의회’를 조직하여 일제침략을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며 독립의병 활동을 했다. 반일정치단체 ‘성명회’를 조직, 고려인들에게 독립을 위해 죽을지언정 ‘일본공민증’을 갖지 말자는 호소와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스탈린 집권 후, 1910년 한일늑약으로 한인들(고려인)을 일본사람들의 첩자로 인식해 1937년 한인들을 카자흐공화국으로 9만5256명(2만1070가구), 우주백공화국으로 7만6525명(1만6272가구) 그 후 4700명을 이주하여 총 18만명(3만6442가구)을 6000㎞를 달려 중앙아시아로 내어버렸다. 그들은 낮선 땅 중앙아시아에서 토굴을 파고 살았으며, 그곳에 도착하여 그해 겨울에 4900명이 죽었다. 다음 해엔 춥고, 굶어 약 8000여명이 죽었다.
한인들은 이러한 쓰라린 곳, 블라디보스토크에 2000년 3개의 비석을 세웠다. 하나는 대한민국, 하나는 세계 흩어진 한국인, 세 번째는 연해주에 살던 한국인들을 상징하며 세웠다. 2012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헌화했다. 나는 이곳에서 묵념을 하고 기도를 드렸다.
뼈아픈 민족의 고통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는 이러한 아픔이 없기를 다짐하고, 그리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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