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로 몰려 처참히 죽은 형, 가해자들을 찾아가는 동생

살해자들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죽였는지 말하며 웃는다. 그럼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웠다고 자랑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중년 남자의 얼굴 위로 세상 모든 고통과 슬픔, 분노의 감정이 한데 모였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남자는 이윽고 입을 열어 ‘당신이 죽인 그 공산주의자가 나의 형’이라고 말한다.

어떤 가해자는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고 변명한다. 다른 가해자는 과거를 자꾸 들추면 그런 일은 또 일어나게 된다고 위협한다.

‘침묵의 시선’은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 군사 쿠데타 이후 공산주의자로 몰려 군부를 돕는 마을의 행동대원들에 의해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당한 청년 람리의 동생 아디가 가해자들을 찾아가 대면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군부는 반대파와 그 싹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통한 ‘처벌’이 아니라 마을 민병대를 통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는 ‘실종’을 택했고, 영화는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스크린에 올린다.

이 영화를 만든 미국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41)는 대학살의 가해자를 하나씩 집요하게 추적하는 영화 ‘액트 오브 킬링’(2012)에서 나아가 현재까지 이어진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담는 데 집중했다.

촬영은 유족이 가해자를 직접 찾아가 왜,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묻는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디가 가해자들에게 자신이 람리의 동생임을 밝히기 전후로 스크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책임을 회피하는 가해자들의 모습과 망연자실한 아디의 표정이 교차될 때는 보는 이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참혹한 과거가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제3세계를 찾은 서양인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오로지 아디의 눈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려 한다.

9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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