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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주제발표
4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주제발표
  • 조아라 기자
  • 승인 2015.10.18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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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토론

“‘집단경험’에 초점 둔 포석의 시편들 ‘낭만성과 현실성, 작품에 오롯이 담겨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포석 조명희(1894∼1938) 선생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한 4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 16일 오후 4시 30분 진천 ‘포석 조명희 문학관’ 3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동양일보가 주최하고 동양일보 문화기획단이 주관한 이날 심포지엄은 학술대회 결과물을 한국 문학사의 기록문화 자산으로 남기고자 마련됐다. 동양일보는 지면을 통해 심포지엄의 내용을 싣는다.<편집자>

 

 

●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조명희 시의 낭만성과 현실성

▲ 유성호 교수

조 포석 선생을 근대 시사 전체에 놓고 볼 때 독특한 그만의 속성이 많이 있습니다. 시 공간에서도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요. 우리나라 근대시의 역사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텨……ㄹ썩, 텨……ㄹ썩, 척, 쏴……아’하는 파도 소리로 시작됐지요. 이처럼 현해탄을 건너 다시 돌아오는 것에서 근대 초기 문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 지식인 문사들의 문학 수업은 현해탄을 넘어 동경 등에서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선에 돌아와서 문학 행위를 하고 해방이 되고 분단되면서 남과 북으로 흩어졌죠. 그런 과정에서 조명희 선생만이 갖고 있는 시공간의 스케일을 보면 3~4년여의 일본 문학 생활은 다른 문인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죠. 그러나 조선에 돌아와 시집을 내고 문학적 중심을 소설로 현저하게 이월시키신 다음 근대 문학의 미답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망명을 택해 한국문학의 공간적인 스케일을 연해주까지 넓힌, 굉장히 개성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문학에서 한일 문학은 굉장히 많이 연구됐지만 한중, 한러의 영향관계랄까, 연변 조선족 자치주나 연해주 쪽의 한글 문학에 대한 연구는 덜해요. 그런데 조명희 선생이 가진, 이와 같은 지식인의 존재 방식은 굉장히 문제적이고 험난한 한국사, 조선사에서 기념비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 포석 선생은 최초의 희곡을 쓰고 최초의 창작 시집을 내셨지요. 사실 최초의 시집은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이지만 미발표작이 들어간 창작 시집을 냈다는 데 최초의 위상을 부여해 드린 것이죠. 사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한국 시의 봉우리가 높아졌죠.

하지만 조명희 선생은 그보다 1~2년 전에 아주 밝은 음색의 음악성을 지닌 탄력 있는 시를 남겨 시인으로서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망명 전까지는 대개 소설에 전념하셨죠. 그리고 러시아로 가서는 다시 시를 회복해서 조금 장거리 시편, 장형화되는 시로 나아가 짧은 시간이지만 장르적으로도 복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은 그 중에서 ‘봄 잔디밭 위에(1924, 춘추각)’를 텍스트로 해서, 수필이나 소설은 논외로 하고 시에만 나타난 현상을 낭만성과 현실성의 두 축으로 나눠 본 성과입니다.

근대시라는 것은 국민 국가의 상실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시인들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회복, 탈환의 측면에서 시를 썼고, 또한 고전 시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미적 속성을 근대적인 것으로 바꾸는 노력이 동시에 행해집니다. 문학사에서 초창기 1920~30년대 초 한국시의 경향은 세가지인데. 3.1운동의 결과적 실패로 인한 감상성, 탄식과 비애의 경향이 있고, 민요를 재구성하자는 전통주의 흐름이 있고, 당시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자아에 머물지 않고 사회, 역사에 관심을 갖는 문인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조명희 선생은 이중 1,3번이 합쳐진 것입니다. 낭만적 충동을 개인적 판타지가 아닌 동시대 조선의 사람들을 적극적 테마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명희가 이상화와 더불어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적 성취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명희가 동경에서 쓴 시편들이 우울하고 어둑한 데 비해, 귀국하여 쓴 시편들은 밝고 신비롭고 모성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물론 예리한 현실 감각을 보여주는 시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건하고 밝은 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래서 시집 제목도 ‘봄’으로 귀일하였을 것입니다. 인간과 생명과 우주에 대해 밝은 눈으로 바라본 결실을 그는 강렬한 낭만적 변주로 채색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 일제 강점기를 봄이라고 형상화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런데 조명희 선생은 어둡기 그지 없는 세계를 봄으로 형상화해요. 봄의 속성과 그로 인한 상태에 대한 기대를 거꾸로 드러내는 형식이죠. 봄에는 모든 것이 태어나지 않습니까. 이것은 신생, 어머니와 맞아요.

어머니는 모성, 모성의 생명성, 생산력과도 연관이 됩니다. 이것은 김소월, 한용운에는 없는 것이에요. 이에 시적인 성숙도를 기해 좀 더 펼쳤더라면 조명희 선생의 시적인 재능이 높은 봉우리에 올랐을텐데 너무나 성급하게 시를 접고 산문으로 가셨지요. 제 어림짐작으로는 시라는 장르의 장르적 한계를 절감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이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망명하기 전까지 주로 소설에 매달려 사실 ‘봄 잔디밭 위에’ 보다 빼어난 시적 성취는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다만 망명 가셔서 시를 쓰기도 했지만 체제와 여건이 달라 지식인의 자유시이기 때문에 한국시에는 걸맞지 않아요. 자의식이나 존재 여건이 달라진 상태에서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다시 검토해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사물화하는 데 대한 강력한 항의로서의 언어, 그러한 항의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환멸의 에너지가 조명희 시편의 저류에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 점에서 그는 현실의 비극성을 본원적으로 감득하고 표현한 일종의 현실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주지하듯 현실에서 느끼는 ‘비극성(悲劇性)’이란, 이상적 상태를 바라는 주체의 소망이 좌절되고 난 후 생성하는 미적 범주입니다. 특히 예술에서의 ‘비극성’은, 실재 세계 속에서의 이상적인 것의 몰락이자 실재하는 것 속에서의 이상적인 것의 패배로 규정됩니다. 그렇게 비극성은 실재하는 것과 이상적인 것 사이의 특수한 관계이기 때문에, 다른 미적 범주들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역사성을 가지게 됩니다. 조명희 시편은 그러한 비극성을 소박하게나마 담아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낭만성 속에 온축된 현실 지향성을 드러냅니다.

포석 선생의 시는 비극성의 실재를 가장 먼저 한국 시사에 선구적으로 도입하고 착근시킨 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후 이러한 충동과 원리가 프로시인인 임화, 이찬 등에 이어졌고 오장환, 이용악, 백석 시편들로도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비극성의 시적 실재들을 미학적 원리로 해명하고 우리 시사에 착근시키는 것은, 그동안 이러한 시적 지향에 철저하게 인색했던 관행 곧 근대문학의 생채기로 기억하는 부정적 평가를 넘어, 비극성이라는 원리를 우리 시사의 중요한 육체로 형성해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조명희 시의 정점은, 민족주의와 낭만성을 비극성이라는 미적 범주로 통합했고 나아가 민족 현실의 전체성을 사유하는 성과를 거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그가 러시아로 망명한 후 쓴 작품들까지 포괄하여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포석 선생이 1924년 처음으로 시집을 묶을 때만해도 어떤 시집이 좋은 시집인지에 대한 문학사적인 합의가 없던 상태였어요. 그래서 2~3년 후에 나온 시집에 비추어 형상성, 완결성 등이 조금 성급니다. 그것은 시 장르에 이 분의 자의식이 소설에 비해 조금 덜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더 좋은 시를 쓸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아쉽게 멈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소월 이전, 한용운 이전, 프로문학 이전에 거둔 거의 유일한 성과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시편들은 한국 근대시의 계몽적 출발의 초점을 개별화한 개인으로 돌리지 않고 민족 혹은 집단의 경험에 돌림으로써 새로운 계몽을 추구한 공로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낭만성과 현실성이 길항하는 이행기적인 속성이 그의 시에 나타난 오롯한 시사적 의의라고 강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외곤 상명대 교수 ·문학박사

인도주의적 휴머니증에서 민족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 김외곤 교수

지금까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것으로 파악되어 왔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동시에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근대성을 문학 연구의 중심 범주로 설정할 때 가장 심각하게 다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될 대상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입니다. 그동안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시민 계급의 문학을 뛰어넘은 문학으로 평가되어 왔지만, 이제는 그러한 평가로부터 벗어나 근대성의 경험에 대한 반응 양식의 하나로 새롭게 자리 매김되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연하면, 이제부터의 연구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어떤 이유 때문에 무조건적인 근대 추종이나 근대성의 획득 대신 급진적인 근대 극복으로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가담했던 문학인 가운데 이러한 연구의 대상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조명희입니다. 그는 19세기 말에 충청도 진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192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진영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봉건 왕조의 말기에 지배층 출신으로 태어났으나 국권 상실 이후에는 오히려 자신의 출신 계급과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했던 것입니다. 이후 그는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의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으로 망명했는데, 거기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던 중에 일제의 스파이로 몰려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서 보면 조명희 선생은 자신이 속한 전통 사회가 파멸되는 과정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의지를 발견해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 혁명적 성격의 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와 같은 연구 태도를 지양하기 위해 근대성 이론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을 재조명해 보고자 했습니다.

조명희 선생은 시, 소설, 희곡,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문학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문학 활동의 초기에 주력한 장르는 희곡으로 ‘김영일의 사(1921·동양서원)’와 ‘파사(1923·개벽)’가 있습니다. 먼저 ‘김영일의 사’를 살펴보면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빈부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근근이 고학 생활을 이어가는 김영일과 그 친구들을 무산 계급으로 설정하고 그 반대편에는 전석원과 그 무리들을 유산 계급으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가난한 김영일은 돈을 빌리기 위해 전석원을 찾아가지만 전석원은 김영일 일행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급기야 두 세력 간에는 싸움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병을 앓고 있던 김영일은 풀려 나온 뒤에도 차도를 보이지 못하다가 결국 이국땅에서 사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정한 주제는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의 대립을 그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명희 선생은 김영일을 통해 세상의 학대와 운명에 맞서 싸우려는 인간의 갈등과 의지를 그리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김영일의 사’는 가난과 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사상적, 인간적 갈등을 다룬 작품인 것입니다.

파사라는 작품은 좀 더 급진적입니다. 이 작품의 본편은 착취와 살육을 일삼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와 왕비 달기를 죽여 버리고 혁명에 성공하는 민중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희곡에서 싹을 보였고 시에서 보다 구체화된 부정과 초월의 정신은 소설 장르에 이르러 그 성격을 조금씩 달리하기 시작합니다. 즉, 소설에서는 전자의 측면이 농촌이나 도시적 삶을 배경으로 하면서 보다 확실한 구체성을 확보하는 반면, 후자의 측면은 지식인의 자기반성을 매개로 하여 마르크스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먼저 삶의 현장 속에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현실에 대한 보다 확고한 부정 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경향을 살펴보면, 그 초기적 양상은 소외된 도시 빈민의 처참함에 대한 묘사로 나타납니다. 이후 조명희의 작품 세계는 주체적이고 자생적인 근대화 대신 식민지 정책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가 얼마나 조선 사람을 소외시켰는가를 폭로하는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도시인의 비참한 삶과 짝을 이루는 것은 농촌 공동체의 파괴와 훼손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작품 속에서 가정의 파괴나 삶의 터전으로부터의 축출이라는 모습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농촌 사람들’, ‘이쁜이와 용이’ 등이 이 경향에 속하는 대표적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에서는 그 원인을 단순히 남녀간의 관계에서 찾지 않고 식민지 지배 체제 및 그와 결탁한 매판적 조선인들로부터 찾고 있음이 주목됩니다.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거지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작가는 ‘꿈’이라는 환각적 장치를 통해 극복합니다.

한편 근대성의 경험에 대한 조명희 선생의 양면적 인식 가운데 초월적 세계에 대한 지향으로부터 출발하여 꿈이라는 환각적 장치에까지 이른 이 측면은 카프의 목적의식론이 대두되는 1927년 무렵에 이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수용과 더불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갈망으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점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낙동강’입니다. 선생은 이 작품을 쓸 무렵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에 비례해 사회주의를 향한 그의 열망도 더욱 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한 젊은이가 ‘만국 노동자들의 단결 만세’를 외치며 시위 대열에 참가하는 모습을 그린 ‘아들의 마음’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국내에서의 창작 활동을 하지 않고 사회주의 조국 소련으로 망명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 글은 애초부터 조명희 문학의 현실주의적 성과나 한계를 지적하려는 목적 대신 조명희 선생이 근대성의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형상화하는가를 규명하려는 목적 아래 쓰여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작인 ‘낙동강’을 위시해 여러 작품들을 다루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 분석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조명희 선생의 작품을 탐구하면서 언급했던 바, 리얼리즘을 끝내 실현시킬 수 없었다거나 영웅적 의지가 표현되었다는 등의 평가가 나오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천착함으로써 근대성의 경험에 대한 양면적 인식이라는 모티프를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이 점이 이 글의 성과라면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조명희의 문학은 근대적 세계에 대한 환멸과 환상적 세계로의 초월의식을 양대 요소로 하여 성립된 문학입니다. 그런데 이 두 요소를 통해서 보면, 조명희의 문학은 처음부터 리얼리즘적 성과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작품 활동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부정 정신을 강하게 내세움으로써 객관적 현실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강했던 초월적 세계로의 지향 의식 역시 영웅적 의지의 형상화로 귀결되었을 뿐, 현실의 리얼리즘적 형상화에는 도리어 저해 요소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 등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작품들도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근대적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히려 그런 작품들은 근대화에 대한 조명희 선생의 두 가지 인식 태도 가운데 환상적 경향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더욱 더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명희 선생이야말로 자신이 겪은 근대성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작품화하였으므로 소위 근대적 문학인의 대표적 존재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4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토론

 

포석의 선구자적 문학적 성과… 더 많은 연구 기대

‘근대’ 매개로 한 새로운 분석 시도… 다양하고 활발한 토론으로 포석을 말하다

 

● 주제발표

△유성호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김외곤 상명대 교수 ·문학박사

● 토론 (가나다순)

△김명기 동양일보 편집부장

△오만환 시인·진천문인협회장

△이석우 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

△정연승 소설가

● 좌장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문학평론가

 

● 때·10월 16일(금) 오후 4시 30분

● 곳·충북 진천 포석 조명희문학관 세미나실

● 정리·조아라 동양일보 기자

● 사진·고경수 〃 사진부 기자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 김주희 교수

“올해는 그동안 진행돼 오던 학술 심포지엄을 조명희 문학관에서 처음으로 개최하게 됐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학이 인간과 인생에 대한 탐구라고 한다면 문학 연구도 어떤 유파나 하나의 성향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떤 경계를 지어 놓고 그 안에 작품을 넣는 것을 많이 했는데 오늘 발표하시는 두 분은 경계를 넘어 어떻게 하면 조명희 선생의 작품을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토론회도 풍성한 논의가 있어질 것이고 이 자리를 통해 우리가 조명희 선생의 문학 작품을 조금 더 많이 누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유성호 교수님의 발표에 대해 이석우 선생님께서 질문해 주시겠습니다. 질문하시면 유 교수님이 바로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석우 시인

▲ 이석우 시인

“조명희 선생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가 중 가장 고향에 오래 사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충북에 큰 시인들이 있는데 조명희 선생, 정지용 선생, 오장환 선생, 이런 ‘삼각형’이 있습니다. 조명희 선생님이 일본에서 돌아오던 1923년에 정지용 선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죠. 오장환 선생은 정지용 선생의 제자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분이 영향을 받게 되는데 최초로 어머니를 청자로 사용한 분이 포석 선생인데 그런 유사 정서의 시를 쓴 것이 정지용의 ‘굴뚝새’라고 파악됩니다. 그렇다면 이 서정성을 정지용 선생이 이어 받은 것이고 사회주의적인 계열은 오장환 선생이 이어받지 않았을까 하고 파악해 봅니다. 신경향파의 주요 시인은 김기진, 박영희, 조명희, 이상화 등이고 이들의 시적 모티브와 정서는 정지용에게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특히 신경향파 시인인 김기진 시인의 ‘백수의 탄식’이라는 시가 있는데 이것은 정지용의 시 ‘카페프란스’에서 퇴폐적인 한 카페와 그곳에 등장하는 식민지 청년의 모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됩니다. 질문을 드리면 조명희 시인이 국내에 들어와 쓴 시는 낭만파 시로 설명해 주셨는데 그러면 일본에서 쓴 시는 어떤 시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지용 시인의 ‘카페 프란스’ 같은 시도 신경향파나 낭만주의 범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질문은 ‘봄 잔디밭 위에’, ‘성숙의 축복’, ‘경이’의 ‘어머니’와 ‘무제’, ‘불비를 주소서’에서의 ‘주’는 어떻게 다른지요.”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가 김기진의 ‘백수의 탄식’의 일부 구절을 품고 인용했다고 하는데 그 작품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벌레 먹은 장미’ 등 다양한 장르가 들어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신경향파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정지용 시를 신경향파라고 할 수는 없고, 신감각파라고 문화생들은 그렇게 불렀죠. 정지용 시인은 조 포석 선생과 영향 관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포석의 ‘봄 잔디밭 위에’에 대해 후대 시인들은 어떻게 영향을 받았고 넘어섰는지 계보학적으로 추적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질문에서, 어머니는 모성적 귀속성이 있는 것이고 이상화 시에 보면 ‘검’이 나옵니다. ‘검’은 신적 존재입니다. 신적 존재를 호명하는 것인데 ‘주’든 ‘검’이든 ‘신’이든 초월적 실재로서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는 절대적 청자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주’는 기독교적 ‘주’가 아니고, 어머니와도 다른 속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만환 시인

▲ 오만환 시인

“유성호 발제자의 개별 작품론과 결론에 공감하면서 문학 수용자 입장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포석에게 있어서 ‘낭만성’이 극복해야 할 점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창작 시집 표제작 ‘봄 잔디밭 위에’를 감상하면, 주권을 빼앗긴 조선 농촌 농민이 느끼는 박탈감, 상실의식이 바탕에 깔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절함, 맑고 밝은 동심,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의 맛을 높이고 독자에게 울림을 줍니다. ‘어머니가 없다’, ‘빼앗겼다’는 부정적 현실 인식은 ‘비극적’이지만 자연에 대한 외경심, 이상에 대한 동경,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낭만과 잘 어울리고 있지 않습니까? 포석의 시에 봄에 대한 이미지 말고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경이’의 배경은 가을이며 여름도 있고 다양합니다. 포석은 장르나 작품, 지사적 생애, 입체적입니다. 시인과 작품으로 좁혀서 말해도 작품의 다양성과 깊이, 독자의 층위가 두텁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포석의 시적 성취가 1924년에서 멈춘 게 아닌가 하는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고 보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망명해서 쓴 작품들, 장시가 가지는 미학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포석 외에 1920~30년대 국내에 디아스포라를 대표하는 작가를 언급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 교수

“제가 알기로 러시아로 가서 문학 활동한 분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이미 문학적 성과를 낸 사람이 러시아로 가서 문학적 말년을 보낸 경우는 (포석 선생이) 유일하죠. 그래서 한글로 표기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포석 선생이 어떤 문학적 자부심을 줬는지가 선연하고요. 망명했거나 쫓겨났거나 거기서 낳고 자란 재러시아 작가들의 문학적 성과들과 2차 대전 끝난 후의 고려의 문학, 디아스포라를 포괄해야 하겠지만, 여기서 이미 문학적 성과를 내신 분이 러시아에서 문학적 성과를 내신 분은 제가 알기로는 유일한 것 같습니다.”

 

▷오 시인

“공감합니다. 포석의 작품이나 자료 생애를 조금씩 깊이 찾아가고 문학사를 읽다보면 여백이 보입니다. 1926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 한 편의 장시로 읽어본 감상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비극적 현실 인식과 낭만성, 님과 이상을 향한 동경과 연민, 이런 점에서 맥을 같이합니다.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망명지에서 ‘고려 민족인, 조선인’의 예술운동에 투사적 삶, 안타까운 최후, 문학사에서 실종 등을 교과서에 재수록하고 연구를 넓고 깊이 문학사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시의 계보를 살핀다면 조벽암, 박아지, 이상화 등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 교수

“벽암 선생은 말할 것도 없이 강한 영향성을 받았습니다. 해방 이후 건설출판사를 세워 삼촌의 책을 낼 정도로 정서적 연속성이 강한 분입니다. 이상화, 한용운 선생이 가졌던 지사적 성격이 직접적인 연관성 있는지는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제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상화 선생은 포석 선생이 위이니 영향을 입었겠지만 만해 선생은 동년배로 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연관 관계를 찾아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김주희 교수

“더 논의를 진행시키면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김명기 동양일보 편집부장

▲ 김명기 부장

“김외곤 교수님께서는 근대성을 매개로 포석 선생의 작품을 분석하셨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분석할 때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것은 문학적 토양을 풍부하게 넓히는 하나의 신호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좋은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조명희 문학은 근대적 세계에 대한 환멸과 환상적 세계로의 초월의식을 양대 요소로 하여 성립된 문학’이라고 하면서도 ‘부정정신 때문에 객관적 현실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근대적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이런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정신 때문에 객관적 현실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다고 한다면 여기서 부정정신은 일제를 부정하는 것이고,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수용된 근대화를 부정하는 것이고, 일제의 수탈에 신음하는 조선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긍정항에 속해야 할 부정정신이 ‘객관적 현실세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고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쉽지 않은데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여기서 말하는 객관적 세계란 소설의 대상이 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일제 치하의 조선 현실일 것이고요. 일제 치하에 대해 포석 선생은 어떤 누구보다 치열하게 문학적 활동을 활발히 하셨고, 일제 탄압을 피해 1928년 8월 21일 소련으로 망명하게 되는데 민족주의적, 민중주의적 이념이 뚜렷했던 포석이 ‘일제 치하의 조선’이라는 객관적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근거인지. 혹시 교수님의 부정정신, 객관적 현실세계가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른 뜻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외곤 상명대 교수

“정연승 선생님과 질문이 겹치는데 마저 질문을 듣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정연승 소설가

▲ 정연승 소설가

“김외곤 교수님의 발표를 듣고 사실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2000년 여름에 연길에 있는 중국어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조선문학사’라는 책을 사 가지고 나오면서 굉장히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에는 포석 선생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책에도 보면 포석 선생에 대해 ‘프로 문학의 선구자’라 평가했고, 포석 선생 작품을 설명하면서 ‘노동자’, ‘부르주아’ 등의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포석 선생에 대한 평가는 남한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교수님께서는 이와는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포석 선생에 대해 발표하셔서 적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논문을 몇 차례 읽어보고 정리를 해봤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기존의 해석을 새롭게 했다는 부분입니다. 그것과 관련해 간단히 질문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교수께서는 마샬 버먼의 근대성 이론을 연구방법론으로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조명희 작품을 유, 무산 계급의 투쟁이 아니라 조명희가 경험한 근대화 경험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규명하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조명희 문학은 1, 근대적 세계에 대한 환멸, 2, 환상적 세계로의 초월을 양대 요소로 성립되었기에 그의 문학은 처음부터 리얼리즘적 성과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조명희는 작품 활동 시작 단계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부정 정신’을 강하게 내세웠기 때문에 ‘객관적인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조명희의 현실에 대한 부정 정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와 객관적인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외곤 교수

“현실에 대한 부정정신이 뭐냐면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한 것이죠. 식민지 시대에 대한 저항이죠. 현실을 부정해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포석 선생에게 있어서는 지금 현재 현실이 부정적이죠. 그래서 그 현실을 어떻게 하면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석 선생 직전에 신경향파 문학이 두 가지 경향으로 있었습니다. 하나는 계급 갈등이라는 이념이나 주의를 앞세우고 현실을 깊이 있게 묘사하는 데 실패하는 경향이 있고요 나머지 한편은 현실은 잘 묘사하는데 이것이 계급 갈등이 기초해 있다는 것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하는, 자연주의의 계승자라고 합니다. 두 갈래가 하나로 합쳐지면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게 바로 ‘낙동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낙동강’이 그러한 단초를 열었지 조선 현실을 잘 열어냈느냐 하는 데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편이고 영웅소설적 서사시적 특징이 강합니다. 식민지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지배한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을 식민지 관료로 키워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마름 제도를 악용하는 거죠. 마름이라는 게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마름을 합니다. 처음에는 조선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 세운 학교에 안 가는데 3.1운동 실패 이후 나중에 식민지 시대가 길게 갈 것이라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 가르치는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이기영의 ‘고향’이라는 소설을 보면 안승학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안승학은 동네에서 아무도 이용하지 않던 전보를 이용합니다. 근대 문물을 이용해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죠. 또 30년대 비료를 사용하는 근대 농법이 나옵니다. 일본이 가르치는 농법을 하면 수확이 늘어난다는 것을 계속 정책적으로 홍보했습니다. 그러한 정책이 가진 허구성을 비판하는 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낙동강’에는) 마름이라든지 하는 매개 계층들, 변절하는 지식인에 대한 형상화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렇게 쓴 것인데 너무 단정적으로 썼나 봅니다.”

 

▷김 편집부장

“교수님의 쓰신 글을 보면 ‘근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 개념이 독자 입장에서 확연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 합니다. 예를들어 김윤식 교수는 근대문학을 ‘논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윤흥길의 ‘장마’가 모성에,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이 부성에 천착한 작품이었다면, 양선규의 ‘난세일기’는 아버지와 장자의 관계를 동업자나 동반자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피’나 ‘위계’가 아닌 ‘논리’를 도입했다는 것이죠. 교수님 평론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근대는 어떤 개념인 것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주희 교수

“근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게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우리가 얘기할 때는 조명희 선생님 작품 속에 반식민과 반봉건이 분명히 들어 있어요. 김외곤 교수님은 학자로서 다르게 검토를 하셨는데, 충분히 독자나 청자를 설득하기에는 조금 벅차셨던 듯합니다.”

 

▷김외곤 교수

“저도 카프 전공을 하고 김남천으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김남천이 사회주의를 얼마나 잘 했느냐를 쓴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은 자꾸 사회주의에 매몰되면 놓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적 요소만 찾으려 하면 포석 선생이 하려고 했던 시대적 변화상에 대한 관심, 현실에 대한 부정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인상들이 ‘낙동강’ 말고 다른 소설에는 안 나옵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부정이 중심이 돼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유토피아적 지향 세계가 있어요. 이 두 가지가 다 근대적인 것이지요. 사회주의 때문에 그런 것을 놓칠까봐 이런 논문을 쓰게 된 것입니다.”

 

▷김주희 교수

“두 분께서 굉장히 조명희 선생의 작품세계를 풍성히 읽어내려고 하셨고 또 일정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하는 언어와 교수님께서 이해하는 언어가 다르고, 교수님이 굉장히 욕심을 내셔 카테고리를 크게 잡으셔서 정교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보다 정치하게 된다면 시도는 훌륭했고 충분히 저희를 납득시킬 수 있는 좋은 발표였다고 봅니다. 이것으로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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