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북한이탈주민

굶주림에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고,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불안한 신분으로 중국에서 숨어 산 지 4년이 되는 어느 날 중국에서 만난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가라고 하며 쌈짓돈을 쥐어 주어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처음 정착한 곳은 충남 천안으로 남들처럼 잘 살아보려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을 했다. 처음에는 북한 사람이라며 같이 식사를 하는 것도 꺼리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작업반장이 되어 보수도 늘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문제였다. 한국에 와서 일을 해 보겠다고 건설 노동 및 일용직을 전전하였으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술로 마음을 달래던 남편은 중독이 되어 착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은 술주정과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회식을 하거나 잔업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오면 “어느 놈을 만나고 히히덕 거렸느냐?”라며 비난하고 폭행을 하였다.

북한은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풍습으로 인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으며, 주로 여자가 품행이 바르지 못하다고 여길까봐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로 인해 나 역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계속 참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정도는 더 심해지고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 때 천안서북경찰서 보안계 담당 형사(신변보호경찰관)님이 생각났고, 형사님을 만나 어렵게 속사정을 얘기하였다. 형사님은 직접 남편을 설득하여 알콜 중독 치료를 받게 하였고 마침, 천안시에서 운영하는 알콜중독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약 처방을 받아 지금까지 꾸준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렇게 신변보호담당관과의 대화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북한에서처럼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나의 고집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와 함께 희망을 않고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혼자서 힘든 한국의 땅에서 끙끙 앓고 있기보다 주위의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게 해준 대한민국에 감사를 드립니다. 가족처럼 내 일과 같이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신 천안서북경찰서 신변보호담당관 임수정 형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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