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충북도교육청 혁신기획담당 서기관)

▲ 김성근(충북도교육청 혁신기획담당 서기관)

재작년 한국에서도 개봉된 일본영화 ‘행복한 사전’은 15년에 걸쳐 사전 1개를 만드는 한 출판사를 배경으로 얘기가 전개된다. 우직하게 사전 편찬이란 하나의 일에만 몰두하는 한 남자의 인간승리를 다룬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다 모아진 산더미 같은 원고를 4~5번 꼼꼼히 진행하는 교정 작업이었다.
수년간에 걸친 교정을 마칠 무렵, 글자오류 하나를 발견하자, 주인공은 다시 처음부터 교정 작업을 시작한다. 영화는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한권의 책으로 백과사전이 완성되는 과정을 잔잔히 보여준다.
이와 달리 지난 2001년 인터넷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이 이루어졌다. 한 업체가 전 세계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이들을 참여시켜 새로운 백과사전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잘 아는 지식의 내용을 올리고, 이를 본 다른 이들이 다시 수정을 하면서 훌륭한 백과사전이 탄생되었고, 새로운 지식은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백과사전의 내용을 채우는 작업에는 공부를 배우는 학생부터 각 분야의 전문가까지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전세계 200개 언어로 만들어진, ‘집단지성’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탄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은 지금부터 100년 전 개미의 협업 활동을 연구한 미국의 곤충학자 휠러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 사이버 공간의 집단지성을 정의한 이는 피에르 레비(Pierre Levy)이다. 협업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지성’은 가장 빠른 시간에 최적의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활동 유형으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시작인 지난 2000년 시작된 OECD 주관의 PISA(세계학업성취도 평가)시험이 지난 5월 전세계에서 일제히 실시되었다. 우리나라도 고교 1학년 대상으로 시험을 치렀다.
3년마다 치러지는 이번 시험에서는 새로운 평가지표가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협력적 문제해결능력’이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에 대해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되고 가상의 친구와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OECD가 이렇게 PISA 시험에서 ‘협력’을 평가지표로 도입한 것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없다는 절실한 판단 때문이다. 개인 경쟁의 시대에서 집단 협업의 시대로 사회가 변하고 있고 교육에서도 이러한 요구가 전면화 되고 있는 것이다.
김병우 교육감 취임이후 충북교육에 ‘집단지성’의 교육트랜드가 강하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우선 행복씨앗학교와 준비교를 중심으로 서로 수업과 학생지도의 경험을 나누고 학습하는 학습공동체 연수를 통해 교사부터 ‘집단지성’의 씨앗을 뿌린 바 있으며, 내년에는 도내 모든 학교로 확대된다. 배움의 공동체, 거꾸로 수업, 협동학습 등 다양한 형태의 배움중심 수업활동을 통해 체험과 참여, 협력의 수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교육청에서는 전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미팅을 통해 소통과 협업의 과제를 도출한 바 있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충남, 세종, 대전교육청과 함께 세계 석학을 불러 1000명의 교사들이 참여하는 미래역량과 수업혁신사례를 주제로 한 충청권 국제 교육 포럼이 계획되어 있다.
지금 뿌려지는 집단지성의 씨앗, 그 열매는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미래 희망으로 맺어지게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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