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현 충주시 친환경농산과 주무관

늦가을에 접어든 요즘 산에는 단풍이 물들고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단풍절정기는 조금 지났지만 형형색색의 잎들이 서로 조화를 이뤄 산을 찾은 등산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와 비슷한 풍경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붉은색, 노란색 무늬의 관광버스들이 주차장에 끝없이 줄지어 있고 버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입은 등산복은 마치 단풍에 물든 듯 화려해 눈이 부실 정도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뜬금없이 여행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해본다.
‘여행’이라고 하면 흔히 머릿속에 ‘어디로 떠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푸른 수평선을 등지고 방파제에 힘차게 부서지는 파도, 거대한 병풍처럼 우뚝 솟은 산에 오색 찬란히 수놓은 단풍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처럼 여행에 대한 심상(心象)은 항상 자기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공간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로지 ‘어디로 떠남’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까?
어디로 떠나기만 하고 그대로 끝나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도망’이나 ‘이사’, 심지어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첫 직장을 이곳 충주에서 얻고 지금까지 5년째 충주 시내의 어느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고단함을 느낄 때면 으레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 슬며시 차오르게 된다. 목적지가 없더라도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그런 욕구 말이다.
충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앙탑’이 청명한 가을 하늘에 닿을 듯 오롯이 서 있다.
국보 제6호인 이 탑의 문화재 명칭은 ‘충주탑평리칠층석탑’이다.
탑의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아득해지며 탑이 세워졌던 통일신라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신라 원성왕이 국토의 중앙 지점을 알아보겠다며 보폭이 같은 장정 두 명을 남과 북의 끝에서 동시에 출발하게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지점에 세운 것이 바로 높이 14m가 넘는 ‘중앙탑’이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나라의 중심을 잡고 비로소 신라의 융성을 꾀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충주세계무술공원이나 탄금대공원에서 남한강을 길동무 삼아 거닐기도 하고, 또는 국내 최대 호수인 충주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종댕이길을 자박자박 걸어보기도 한다.
심항산 치맛자락에 서서 고요한 잔물결을 무심히 바라보다 수면 위 저녁노을에 서둘러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아무리 거리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어도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같은 법이다.
결국 모든 여행은 ‘떠남’ 뿐만 아니라 ‘다시 돌아옴’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바다나 산으로 떠났다고 해서 여행이 완성된 것은 아니며, 원래 자신이 속해 있던 집으로, 직장으로 무사히 돌아와야 비로소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가로수 길에 흐드러지게 널린 가을 잎사귀들처럼 전국이 남녀노소 여행객들로 부산한 요즘, 부디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일정이 끝나면 다시 돌아갈 곳’인 가정과 직장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우리 마음속에 중앙탑을 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