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근 충북보과대 외래교수 와인컬럼니스트

 

유럽의 겨울은 유난히도 춥게 춥다. 짧은 낮 시간과 잦은 겨울비는 낯선 여행자의 체온을 더욱 내리기에 더욱 충분하다. 필자가 성수기를 피해 처음 나선 유럽여행 또한 그러했으며 독일의 겨울은 따뜻한 조명의 바(bar)로 끌려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뿌옇게 김이 서린 그 안에서는 난로 근처에 모여 앉은 독일인들이 양손으로 뭔가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담소 중 이었고 본인 또한 당연하듯 그 것을 주문했다. 그 것은 글루바인(Gl?hwein), 한국에서 흔히 프랑스어인 뱅 쇼(vin chaud)라고 알려진 유럽 전통의 음료로서 와인에 시나몬을 비롯한 향신료들과 오렌지, 자몽과 같은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을 넣고 끓여 만들며 감기나 수족냉증의 개선에 좋아 주로 겨울에 즐겨 마시는 음료이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순식간에 퍼져 녹여 주었고 이국적인 향과 낯선 맛이었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모주(母酒)의 맛이다. 지구 반대편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공통적인 문화적 산물인 것이다. 모주 또한 한국의 전통 탁주에 계피를 비롯한 각종 한약재를 첨가하여 끓여내 만든 알콜이 거의 없는 술로 오래 전부터 널리 음용됐지만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제주도 귀향지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한데서 그 명칭이 유래됐다. 멀고먼 독일의 한 도시에서 경험한 글루바인의 기억이 고국에서의 잊혀진 기억까지 되새길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뱅 쇼(vin chaud)는 프랑스에서 와인을 뜻하는 Vin과 따뜻하다는 뜻의 chaud가 합쳐진 단어로 유럽에서도 추운 지방인 스칸디나비아 지방과 독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앞에서 언급한대로 독일에서는 글루바인(Gl?hwein), 영국에서는 멀드와인(Mulled wine)으로 북유럽 국가에서는 그뤼그(Gloegg)라고 불릴 만큼 전 유럽에 널리 퍼져있고 사랑받는 음료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감기에 좋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뱅 쇼의 주원료인 레드와인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현재까지 많은 연구와 보고서에 따르면 레드와인 안에는 각종 폴리페놀 성분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으며 그 주성분인 탄닌, 라스베라트롤 그리고 색소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대부분 포도의 껍질에서 추출된다.

대부분의 과일 껍질은 씨가 들어 있는 과육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외부로 부터의 공격과 상처로부터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폴리페놀 성분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천연 폴리페놀성분은 인체에 흡수되어 항산화 작용 및 혈액 순환 등에 효과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각 종 향신료의 효과이다. 만드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그리고 집집마다 그 레시피는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공통적인 재료로 계피와 정향, 팔각 등이 많이 이용된다.

계피는 정향, 후추와 함께 세계3대 향신료의 하나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소화기의 활동에 도움이 되며 정향은 천연 자양강장제라 불릴 만큼 원기회복에 효과가 좋다. 팔각의 대표적인 효능인 배뇨촉진은 감기의 열을 내리는데 효과적인 작용을 한다. 여기에 각종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까지 함께 하니 어찌 감기는 물론 우리 몸에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추운 겨울 인스턴트 차와 음료보다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슬로푸드 음료인 뱅 쇼와 함께 한다면 이 겨울을 보다 건강하고 따뜻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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