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보훈복지사

 

온 들녘 흰 뿌연 밀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하얀 눈들이 주위의 산과 들을 덥는 청양의해 2015년 12월로 그 해가 다가고 있다.

올해는 광복70년, 분단70년이 되는 해로 온 나라 태극기 물결이 일렁였고, 더불어 온 국민의 애국심이 한층 더 고조되었던 년이기도 했다.

마지막 끝자락에 서서 내가 보훈지청 복지사로 이 자리에서 했던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여는 정부 3.0 정부시책에 발 맞추어 시행된 보훈 3.0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혹여나 복지(welfare)라는 미명 아래 너무 ‘복지’라는 단어를 남용하지는 않았는지…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유공자를 발굴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12월은 한해를 뒤돌아 보며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되씹어 보는 소중한 달이자 시간이기도 하다.

2015년은 국가보훈처의 찾아가는 보훈복지서비스인 보비스 8주년이 되는 해이며, 광복70년이 되는 해로 나의 위치에서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무엇을 노력했고, 무엇을 가슴에 담았는지 생각해 본다. 이 업무를 하면서 세월 앞에 노쇠한 유공자를 찾아뵙는 일들이 과연 행복했었는지, 진심으로 마음에 존경과 사랑을 담아 그분들이 지켜주신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공손히 예우를 표했는지 자문해 보니 조금 부끄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충주보훈지청은 충북북부지역 6개 지역을 관할하고 있으며, 16년부터 명칭도 충북북부보훈지청으로 국가유공자를 위한 여러 가지 지원사업 및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양사업을 하고 있다. 그중 국가유공자 노후복지사업은 현재 독거이거나, 노인부부세대로 고령 및 만성질환으로 일상생활이 힘든 유공자 분들께 가사간병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며, 현재 이 서비스를 받고 계시는 보훈대상자는 480여명이 있다. 그 분들의 노후를 위하여 섬기는 일이 보훈복지사와 보훈섬김이의 일이다.

국가유공자를 섬기는 일을 하다 보면 어르신들 모습에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들 속에 소진된 나의 몸과 마음을 당신들의 주름진 손으로 살포시 만지며 어깨를 두드릴 때면 슬프고 힘들었던 것들이 혀끝에 사르르 녹는 솜사탕처럼 어려운 기억은 사라지곤 했다.

올해 많은 행사를 하면서 가장 가슴에 담는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10월 2일 노인의 달을 맞이하여 개최한 「6.25참전유공자를 위한 무료합동결혼식」이다. 이 행사의 처음 취지는 병석에 누워 계시는 국가유공자이신 친정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그 어렵고 힘든시절 면사포 한번 씌우지 못한 채 생을 함께해 온 부인에 대한 미안함에 죽기 전에 꼭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소원을 말씀하셨고, 그것에 착안을 두어 힘든 보릿고개 시절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6.25전쟁에 참석해 젊은 시절을 보내고,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분들에게 국가유공자로써의 예우와 그분들이 원하는 버켓리스트 1순위인 무료합동 결혼식을 추진하게 되었다.

10월 어느 멋진 날, 무료합동 결혼식은 추진되었고, 행사장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만난 두 부부는 이제 성글성글한 백발의 머리와 80대의 노인이 되어 아픈 다리를 이끌며 결혼식장을 입장하시는 어르신, 걷기조차 힘들어 지팡이를 짚고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입장하는 어르신, 췌장암수술로 인하여 배변 주머니를 옆에 차고 부인의 옆구리를 붙잡고 입장하시는 어르신, 10쌍의 국가유공자 부부는 꽃다운 20대 신랑신부 못지않게 멋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띠며 행복해하는 어르신, 새로 결혼한 의미로 다시 백년해로 하고 아들딸 낳고 사신다며 너스레를 떠는 어르신을 보며 행사장은 박장대소했다.

비록 행사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추진함에 있어 많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눈물을 훔치며 감동하는 어르신들의 미소띈 얼굴과 가족을 보니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감동적이었다.

2016년에는 충북북부보훈지청의 찾아가는 이동보훈복지팀의 45명의 복지인력들은 국가유공자들의 명예로운 보훈을 위하여 ‘우리’라는 단어로 엮어 오늘도 행복한 복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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