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아래 끊임없이 자연에 도전해 왔다. 기술의 발전을 근간으로 인류에게 헌신해 왔던 ‘기계문명’이 이젠 ‘인공지능’이란 기술을 장착하고 인간에게 “한 판 붙어보자”고 도발을 해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알파고(AlphaGo)’다. ‘알파고’는 구글의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만든 인공지능 바둑기사 프로그램이다. ‘기계문명’ 측 대표선수로 나섰다.

알파고를 상대로 인류가 내세운 대표기사(騎士)는 세계적인 바둑챔피언 이세돌 9단이다.

‘세기의 대결’은 3월9일부터 3월15일까지 총 5회전이 치러진다. 어제 3월 9일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어도 좋을 만큼 ‘역사적인 날’이 됐다. 기계와 인간이 100만 불(약 12억 원)의 ‘파이트머니’를 걸고 격돌한 의미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알파고‘ 역시 ’생각하는 존재‘로서 당당히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인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계 따위가 감히 어딜.....”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체스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컴퓨터에게 두 손을 들었다. 1997년 ‘딥블루(Deep Blue)’라는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가 당시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왜 하필 바둑일까. IT업계에서 바둑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수많은 경우의 수중 가장 가치 있는 착수(着手)를 찾아내는 것이 바둑의 본질이며 AI연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바둑에 있어서 경우의 수는 10의 170제곱에 이른다고 한다. 숫자로 나열하면 ‘0’이 서너 줄이나 이어질 정도로 상상불가, 비교불가의 큰 숫자다.

바둑 9단을 ‘입신(入神)’이라는 별칭으로 불러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알파고’에겐 이제 바둑이 더 이상 ‘넘사벽’의 영역이 아니라고 자존심을 긁고 있다. 한 판 붙어볼만한 만만한 구석이 있다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나름 자신을 가질만한 근거도 있다.

구글이 2014년 1월, 딥마인드를 인수한 후 개발한 ‘알파고’가 2015년 10월에 유럽의 바둑챔피언 판 후이(Fan Hui) 2단을 공식 대국에서 이겼다. 그것도 5:0이라는 스코어로 실력차이를 입증했다. ‘알파고’를 마냥 한낱 컴퓨터기계로만 볼 수 없다는 반증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번 알파고는 시스템 구축과정에서 ‘몬테카를로트리탐색(MCTS)’ 기술과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이라는 기술이 결합되었다 한다.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이라는 인공지능 신경망의 알고리즘에 의해 다양한 머신러닝(Machine Leaning)이 이루어지고,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셀프대국’을 통하여 알파고의 실력이 날로 향상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딥마인드는 현재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크레이지스톤(Crazy stone)’과 ‘젠(Zen)’과 같은 다양한 바둑소프트웨어와 총 495회의 대국을 벌여 단 한 차례만 패배했을 뿐 494회를 모두 이겼다. 승률 99.8%의 대단한 실력이고 겁나는 선수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IT업계 쪽에서는 ‘딥마인드’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훈련장에서 3000만 번의 지옥훈련을 거쳐 온, 어쩌면 이미 괴물이 되었을 ‘알파고’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눈치다. 바둑계에서는 우려를 하면서도 ‘아직은’ 아닐 거라고 인류 최강 이세돌 9단을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려는 충격적인 현실로 나타났다. ‘불계패(不計敗)’. 첫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로부터 인류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기기야 하겠지만 4승 1패라도 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이세돌 9단의 대국 전 인터뷰 내용이다.

알파벳의 에릭 슈밋 회장은 “누가 이겨도 인류의 승리”라고 덕담을 했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의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기계를 상대로 인간을 응원해야 하는 기분도 묘하다. “알파고, 도대체 넌 누구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