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 미네소타매장에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타깃이 보낸 광고전단지를 들고 화가 난 표정으로 매니저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매니저를 만난 남자는 “고등학생인 내 딸에게 유아복과 유아용 침대를 사라고 할인쿠폰을 보내는 게 말이 되냐”며 “고등학생에게 임신을 빨리 하라고 부추기는 거냐”고 항의했다. 남자는 타깃의 매니저로부터 거듭 사과를 받고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뒤 매니저가 다시 사과를 하려고 전화를 했을때 남자가 겸연쩍게 전화를 받으며 “내 딸과 얘기해보니 일이 있었더라. 임신이 맞다. 출산 예정일이 8월”이라며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이 사례는 뉴욕타임스 기자인 찰스 두히그가 ‘습관의 힘’이란 책에서 소개한 빅데이터(Big Data) 의 영향력을 설명한 사례다. 타깃은 여학생의 평소 쇼핑정보를 데이터로 분석해 임신을 예측하고 할인쿠폰을 보냈던 것이다.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평범한 개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데이터로 모아지고, 그렇게 모아진 빅데이터는 개인의 생각과 성향, 행동까지를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하는 자료가 된다. 더구나 이러한 일들이 개인의 동의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 인간이 빅브라더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되어 있는 것이다.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지는 세상에서 인간과 기계의 대결로 세기의 관심을 모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경기도 솔직히 말하면 흥미보다는 두려움이 큰 사건이었다. 첫 경기에 이어 두 번째 경기까지 인간의 패배로 결정되자 모두 충격에 빠졌다. 과학자들은 ‘기술의 진화’를 확인했다며 인공지능의 우세에 흥분했지만, 인간이 만든 기계 앞에서 인간의 지능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가치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평가될 수도 있다는 두려운 예견을 갖게 한다.

“‘기계의 시대’가 열리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과학자들의 흥분에, 문득 얼마 전 보았던 TV의 한 프로그램이 떠올라 섬칫했다. ‘명견만리’라는 이름의 그 프로그램은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에 대해 설명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편리함은 얻을지 모르나, 그만큼 인간의 일자리들이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최근 요리사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대형 초밥집에선 기계가 요리사를 대체하여 초밥을 찍어내는데 맛도 그대로이고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많은 주에서 무인자동차의 합법화를 채택하여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데, 무인자동차의 상용화는 핵폭탄급 대량실업사태를 예고한다고 했다. 운전기사, 운전학원 종사자들, 자동차판매사원, 중고차 시장 등에서 엄청난 실업사태가 예견되고, 그밖에 톨게이트 수금사원, 마트 캐셔직 등 수많은 직업군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기계의 발달 앞에선 엘리트 직군도 안전하지는 않다.

그 프로그램은 20년 안에 사라질 직군 안에 의사. 약사. 회계사 같은 파워엘리트 직군도 대다수 포함되었다고 하였다. 이미 회계프로그램의 발전으로 회계사도 하향세를 향하고 있고 미국의 대형병원에서는 약사없이 약을 조제하는 로봇시스탬을 도입한 병원이 3곳이나 되지만, 지금까지 사고가 1건도 없다고 했다. 또 모든 금융 거래가 온라인 등으로 거래되면서 증권맨, 외환 딜러 등 대표적인 화이트 칼라인 금융인들이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다고 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시대의 어두운 그늘이다.

직업만이 아니다. 빅데이터로 인한 사생활 침해와 개인 정보피해는 갈수록 심해질 수 밖에 없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증대되면서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사소한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이 필수가 되어, 개인 정보 침해가 발생한다.

마케팅 회사들은 이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사진 공유 SNS에 올라온 메시지와 사진을 활용하여 트렌드나 유행 아이템 등 요긴한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SNS를 쓰는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올린 사진이 마케팅 활용으로 쓰이는 것을 모르고 있다.

갈수록 빅데이터 솔루션은 정교해지고, 인간은 점점 더 왜소해진다. 이러다가 알파고 같은 기계가 설치는 진짜 ‘빅브라더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무섭다. 왠지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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