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을 산 노부부 편지 한통에 갈등이 생기는데…

(연합뉴스)45년이다. 둘이 사랑의 서약을 맺고서 같이 산 세월의 길이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둘의 관계는 작은 ‘틈’ 하나에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 ‘45년 후’에서 그려진 케이트(샬롯 램플링)와 제프(톰 커튼) 부부의 이야기다.

토요일 결혼 45주년 기념 파티를 닷새 앞두고 부부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제프가 케이트와 결혼하기 전 사귄 여자친구 카티야의 시신이 스위스 알프스 빙하의 갈라진 틈에서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카티야는 50여년 전인 1962년에 실종됐다.

제프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다락방에서 카티야의 사진을 찾아내며 과거를 추억한다. 케이트에게 “나의 카티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50여년 전 실종된 전 여자친구가 발견됐다는 내용의 편지가 왜 제프에게 왔을까.

제프는 케이트에게 자신이 카티야의 법적 보호자였다고 실토한다. 명목상 카티야의 남편이었다는 것.

남녀의 동거를 이상하게 보았던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위스 당국에 둘이 결혼한 사이인 척했을 뿐 실제 결혼한 것은 아니라고 제프는 변명한다.

이에 케이트는 묻는다. “그 여자가 죽지 않았다면 실제로 결혼할 예정이었나.” 제프는 답한다. “그래. 결혼했을 거야.”

이때부터 케이트는 급격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케이트는 말한다. “그 여자 얘기 더 못하겠어. 괜찮다고 했지만…안 괜찮네.”

제프는 오래전 첫사랑 이야기에 민감해하는 케이트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다가오는 파티 준비를 해야 하는 케이트는 “저녁을 먹고, 자고 다음날 일어나 새로 시작해봐야지”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이 둘은 무사히 결혼 45주년 파티를 마치고 예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영화는 편지 한통으로 둘의 관계가 금이 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대사 하나하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둘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했다.

왜 제프는 저런 행동을 했을까, 케이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곱씹어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정중동(靜中動)의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주로 케이트의 관점에서 둘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렇다고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제프는 진실한 남편이다. 50여년간 가슴에 묻어뒀던 첫사랑의 기억이 편지라는 ‘틈’을 통해 둘 사이를 비집고 나타나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 대결을 벌일 때 그는 솔직한 입장을 밝힌다.

가정법으로 말하면 과거의 사랑과 결혼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현재의 사랑과 살고 있지 않느냐고.

제프의 진실함이 둘의 45년간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터이지만 이번에는 그 진실함이 반대로 작용했을 뿐이다.

영화는 손쉽게 해피엔딩으로 결론을 맺지 않는 영리함도 보여준다. 제프와 케이트의 마지막 행위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5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9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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