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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바라는 단 한 가지…피해자 명예 회복과 유해 발굴”
“죽기 전에 바라는 단 한 가지…피해자 명예 회복과 유해 발굴”
  • 조아라 기자
  • 승인 2016.06.23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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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 사람 – 이세찬 한국전쟁충북유족회장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이세찬(81·사진·청주시 용담동) 한국전쟁충북유족회장에게 ‘6월 25일’은 66년 세월의 흐름에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다. 입 막고 귀 막은 채 살아야 했던 지난 시간 동안 생채기는 수십 번, 수백 번 곪아 문드러졌고, 열다섯 푸르던 소년은 어느새 여든 한 살 노인이 됐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그토록 그리웠던 아버지의 이름을 세상에 꺼내 놓는다.

이 회장의 아버지(고 이문구씨)는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희생당했다. 농사짓는 법 밖에 몰랐던 순박했던 아버지는 좌익에게 전향 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에 얼떨결에 등록됐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불과 35세의 나이였다.

“당시 참 못 살았어요. 풀뿌리를 캐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간신히 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는 겁니다. 공산당은 잘 사는 사람도 없고 못 사는 사람도 없고 똑같이 살게 한다. 쌀이 떨어지면 쌀도 준다. 그러니 자유당과 공산당 중 어떤 당이 좋겠느냐고요.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못 사는 게 죽겠으니까 그냥 공산당에 손 든 겁니다. 그게 보도연맹으로 돼 각 파출소에서 다 관리를 했어요.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아 집단으로 학살당했어요.”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뒤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단사살 현장인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를 찾은 어린 이 회장의 눈앞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십여구의 유해는 마구 뒤엉켜 있었고 살 썩는 냄새는 코끝을 찔렀다. 도저히 가장의 유해를 찾을 수 없었던 가족들을 피눈물을 흘리며 다시 청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이 회장을 비롯한 세 형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빨갱이’라는 낙인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 회장은 “어디 가서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돌아가셨다는 말도 못하고 지냈다”며 “연좌제에 걸려 항시 감시를 당해 공직은 물론 일반 직장 생활하기도 어려웠다. 사회 진출을 못하는 사람에게 딸을 준다는 사람도 없어 결혼하기도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와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되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등이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했다. 충북에서는 16개 시민단체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이 회장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려 했을 때는 이미 신청 기간(2005년 12월 1일~2006년 11월 30일)이 지난 후였다. 답답한 심정을 털어 놓을 길 없었던 미등록 유족들은 모임을 구성하고자 뜻을 모았고 2014년 한국전쟁충북유족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전국의 국민보도연맹사건 피해자는 약 20만명, 충북에는 5800여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보도연맹사건 피해자는 전국 5129명, 충북 895명이다. 전국적으로 약 97.5%, 충북지역에서는 85%의 피해자가 진실규명을 받지 못한 것이다.

진실규명을 위해 충북유족회는 충북인권연대와 함께 지난 14일부터 ‘과거사법 개정을 위한 충북지역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도민 2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한국전쟁유족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요구안은 △신청기간 1년 연장 △조사기간 4년 연장 △배·보상 특별법 제정 △과거사재단 설립 등이다.

충북유족회는 지난 21일 충북NGO센터에서 ‘합동추모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 행사에서 유족들은 한데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참여정부 당시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생겨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했지만 홍보 미숙으로 신청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 역시 뒤늦게야 알고 신청을 하려 했지만 기간이 지나 안 된다며 다음 기회에 신청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10년을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에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그의 바람은 다른 것이 없다. 과거사법 개정을 통해 추가접수와 추가조사가 이루어져 피해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유해 발굴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옥녀봉,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 낭성면 호정리,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등에 유해가 암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배·보상에 관한 종합대책안도 수립됐으면 한다.

“66년 동안 단 한번도 ‘아버지’라는 세 글자를 입에 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추모제를 지낼 때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불렀는데 세 번째는 차마 못이 메어 못 부르겠더라고요. 이제 내 나이 팔십이에요. 다른 유족들도 다 80~90살이 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해결이 돼야 하늘에 가서도 아버지 얼굴을 떳떳하게 볼 것 아니겠어요. 살 날이 얼마 안 남아 시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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