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열여섯의 겁쟁이 사내아이가 여든 고개를 넘는 사이 강은 호수가 되고 고토(故土)의 상징이던 붉은 산은 초목 우거진 산림이 되었다. 지게도 달구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절대빈곤의 전근대는 교육 수준과 불행지수가 극히 높은 현대가 되었다. 마스막재에서 바라보는 시내에는 고층 아파트가 우뚝우뚝 활거하고 있었다. 거기서 시골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립 밴 윙클에겐 이제 고향에서도 옛날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하게 생각되었다. (중략) 사라져간 것이 어찌 그뿐이랴. 그 시절 좋아하던 시인의 대목이 저절로 바뀌어 입가에서 맴돌았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은 아니러뇨. (본문 중에서)

 

한국 문단의 1세대 평론가, 유종호(82·사진) 전 연세대 교수가 불안과 결핍으로 점철됐던 66년 전 기억의 파편들을 애써 끄집어 내 한 권의 책으로 짜 맞춰 냈다. 에세이 ‘회상기-나의 1950년’. 이 책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여든이 넘은 노비평가가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0대 시절로 회귀해 당대를 복원해 낸 선연한 역사의 기록이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저자가 앞서 펴냈던 ‘나의 해방 전후’,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에 이은 세 번째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인 셈이다. 출간 순서로는 세 번째지만 연대순으로는 1941년부터 1949년까지의 기록인 ‘나의 해방 전후’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책은 1950년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겪은 유 교수의 체험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던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와 맞물린 그의 십대는 그야말로 암울했다. 충주 변두리 소재 용산리에 살던 유 교수의 가족은 전쟁이 일어난 다음날인 6월 26일에야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문과 확성기 가두방송으로 전쟁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오고는 했으나 학교는 평온했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업은 진행됐다. 전쟁 발발 1주일 만에 강원도 피난민 수용을 위해 휴교가 됐지만 이렇다 할 긴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피란길에 나서기 전 기르던 돼지를 처리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돼지를 잡는 터에 동네 여기저기서는 아이러니하게 돼지고기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시시콜콜해 보이는 삽화’를 저자는 ‘알뜰하게 모아’낸다. 66년 전의 정황을 치밀하고 세심하게 복원해 나가고 있는 글을 읽다 보면 유 교수의 대단한 기억력에 혀가 내둘러진다.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글은 마치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관찰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책이 단지 한 노비평가의 개인사에 불과하지 않는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단어가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묵직함 때문이다. 애써 외면하고 잊고 싶지만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민족의 상처를 유 교수는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긍정 없는 부정 일변도의 사고에서 창조적인 삶과 사회는 구상될 수 없을 것”이기에, “삶과 역사의 비극적 인식을 통해 후속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주”겠다는 일념 하에 쓰인 그의 글은 독자들의 마음을 진실하게 울린다. 1950년대 열여섯 살 소년에 대한 회상기가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유 교수는 “내가 겪은 일이 전형적이고 평균적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수많은 개인 경험의 하나일 뿐”이라며 “다만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사실에 맞게 적음으로써 그 시대를 상상하는 데 조그만 기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경험자의 생생한 증언이 많으면 많을수록 역사적 진실의 참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현대문학. 358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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