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세분의 간호사들을 기리며 동아시아 생명공동체를 생각한다.

 

(정리/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동양포럼 주간인 김태창 박사(한·중·일이 함께 공공하는 철학모임 대표)가 지난 5월 9일 충북보건과학대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특강을 했다.

김태창 주간은 그 강연에서 특히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바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누구보다도 생명존중을 최일선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관한 증언과 간호사의 사회적인 위상과 거기에 걸맞는 자질, 그리고 이 고장 출신의 포석 조명희 선생의 생명관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동아시아 생명공동체 구상의 일단도 피력했다. 김태창 박사의 세 번째 동양인문학 특강 내용을 요약, 보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주>

안녕하십니까? 오늘 충북보건과학대의 간호학과 학생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83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장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때 가장 정성스럽게 병을 다스리고 기력을 회복하는데 지혜와 온정을 실어서 극진히 보살펴 주셨던 몇몇 나라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봉사의 은덕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가 만난 많은 간호사들 가운데서 특히 세 분의 고마운 간호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림으로서 저 스스로의 감은(感恩)과 보은(報恩)의 심정을 토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중국 북경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것입니다. 한 여의사와의 만남입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간호사이면서 의사이고, 의사이면서 간호사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그런 구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998년에서 2009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중국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습니다. 공공철학교토포럼을 주재하는 입장에서 중국에서 철학대화의 모임을 자주 개최했고 거기서 중국의 지식인들과 사회지도자들, 그리고 대학생들과 아시아의 공공하는 인간과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교육·환경 등등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더불어 실행하고 거기서 새로운 상생의 길을 열어가자는 뜻을 서로가 상대를 소중히 여기면서 공유·공감·공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주 위경련이 나고 신열이 심각한 정도로 오르고 심신이 탈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과로와 음식조절의 부적합 때문에 생긴 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병고를 치렀고 가장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저를 정성스럽게 치료해주고 간병해주신 그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2차 세계대전 때 중국동북부를 점령하고 중국침략의 선두에 섰던 한 일본인의 딸로 태어나 오로지 부모가 저지른 죄를 대신 갚는다는 일념으로 모택동이 지휘하는 인민해방군에 자진입대해서 먼저 간호원으로 일했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전문의로 중국인민에게 봉사해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일중·중일 간의 바람직한 관계 개선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일본에서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와 상생과 공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한국인을 만나서 한없이 반갑고 기쁘다고 했습니다. 같은 뜻을 지니고 오직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몰두하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동지 같은 생각이 들어서 밤새움도 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차 생명을 아끼면서 열심히 살자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교토포럼을 통해 그 분을 일본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뜻에 따라 그분이 교토포럼에서 말씀하기로 되었고 그 분을 주제로 하는 영화제작에 관한 구체적인 상의도 진행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분은 일본에 오기 이틀 전에 중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저는 그 분의 뜻에 따라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 분은 자기 이름이 유명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유족들도 딸의 뜻에 따라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 알아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사람됨·간호사됨·의사됨의 참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일본 오사카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것입니다. 나이를 먹다보니 여러 병이 생기는데 그 중 남에게 이야기하기 어렵고 자존심이 상해 드러내기 힘든 병이 바로 치질입니다.

저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치질 수술을 받았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심하니까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데 수술해도 재발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수술을 할 때 일입니다. 오사카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수술을 마치고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은 어느 정도 끝나고 회복기로 들어갔어요. 최종 단계로 방귀가 나오고 변이 나와야 치료가 된 게 아닙니까? 근데 그게 영 안돼요. 정말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간호사 한 명이 병실로 들어와 제 모습을 보더니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한 가지 결점이 있으신데 완벽주의 때문에 사서 고생하시는 겁니다. 선생님 지금 침대에 요를 깔아 놓은 것을 혹시 버리실까봐 신경을 쓰시면서 안절부절 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은 원래 더럽히려고 있는 거고 간호사는 환자분들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드리는 것이 일이구요. 그러니까 꼭 화장실에 가서 배변해야 된다는 생각을 당분간 버립시오.

급하시면 그냥 요위에서 배변을 하세요.” 남에게 피해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조금이나마 일본에서 알려져 있는 ‘김태창’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어서 긴장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강박관념에서 해방되라는 그 간호사의 따뜻한 한마디로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고 그래서 그 다음 과정이 순조로웠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에서 해방된 기쁨도 그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어두웠던 삶이 다시 밝아졌고 생명의 정상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간호사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이튿날 의사가 와서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수술을 잘 해주셔서 고마운데 저는 이 간호사 때문에 살아났습니다”라고 말을 하고나서 그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사가 웃으면서 “의사는 긴급조치만 취하는 것이고 그 다음 그 환자가 낫고 안 낫고는 전적으로 간호사에 달려 있습니다. 간호사의 역할이 의사의 역할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입원치료가 필요 없게 됐을 때 담당 의사에게 인사하고 나오는데 진찰실 밖으로 따라오면서 “선생님은 생명력이 강한 것 같아요. 생명이 있어야 일도 하는 건데 중요한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조금 더 신경을 써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라며 제가 못미더웠던 지 한마디를 남기고 진찰실로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저 자신이 무엇보다 먼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을 일깨워주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 후 저는 일본 의료인들이 모이는 모임에 초청받아 인문학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간호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간호사 한 명 덕분에 그가 있는 병원과 출신 학교가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고 평가가 높아지는 것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는 벨지움의 브라셀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던 10명 중 8명이 말라리아에 걸렸어요. 정밀 검사를 하기 위해 저를 포함해서 10명 전원이 브라셀에 있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 됐습니다.

검사 결과 저는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어요. 그때 의사가 제게 “김 선생님에게는 특별한 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면역력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소 의아해 하면서 저의 병실에 돌아왔는데 한 간호사가 따라와서 “선생님은 원래 한국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시지만. 그런데 한국에서는 고추장을 많이 드신다면서요? 아마 선생님의 피가 너무 매워서 모기가 바늘로 찌르고 피를 빨아들이는 순간 너무 매운 자극을 감당하지 못하고 병균을 옮기기 전에 자신이 죽고만 것 같습니다. 대단한 생명력을 타고 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감에 취하진 마시고 그럴수록 타고나신 생명력을 소중하게 간직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겁니다. 의사의 말은 극히 사무적인 말투였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것을 부연설명 하는 간호사의 탁월한 유머 감각 덕분에 저의 불안과 긴장감은 말끔히 씻어졌고 평안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호사란 의사의 좋은 해설자가 되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래도 아직은 안전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따스하고 친절하고 진정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말 한마디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직종이 있지만 이 세상에서 삶을 삶답게 해서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은 곳곳에서 인생에 절망하고 생명에 위험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삶의 의욕을 되살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간호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만이 아니라 가정이나 조직·단체 그리고 국가에서도 간호사의 심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직도 이 나이에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말로, 몸짓으로, 시선으로 일깨워 다시 살아나게 해 준 간호사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호학과 학생들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여기서 여러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학생 1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목표로 하고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한국과 외국의 병원은 환자를 대하는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생님이 경험하신 것을 알고 싶습니다.”

▷김태창 주간 “우선 좋은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담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해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느 나라의 어느 병원에서도 간호사들은 소위 나이팅게일 정신이라는 걸 몸에 익혀 두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진국의 간호사들은 정확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하는데 온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대체로 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발전도상국의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온정은 느껴지는데 지식과 기술면에서 조금 미흡한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이나 발전도상국을 막론하고 성심을 다하는 간호사와 그저 적당히 의무수행만 하는 간호사가 있고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수 십 명의 의무수행형 간호사들과의 만남은 아무런 감흥이나 기억을 남기지 않는데 성심을 다하는 간호사들에게서 받은 헌신적인 봉사는 긴 세월이 흘러도 감은과 감사의 마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학생 2 “선생님께서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새 시대에 필요한 간호사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주간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주셨습니다. 우선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모든 낱낱의 생명체에는 우주적·근원적 생명력이 깊숙이 심어져 있어서 모든 생명체가 차별 없이 신성하다는 인식. 한문으로는 天性之道, 영어로는 cosmophilia.

두 번째로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빛을 찾아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 한문으로는 望光之?. 영어로는 photophilia. 그리고 세 번째로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이룩한 삶의 새 열림을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습성. 한자로는 開新之樂. 영어로는 neophilia입니다.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렸지만 한마디로 모으면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문으로는 好生之德, 또는 貴生之德. 영어로는 biophilia. 그동안 일본과 중국과 서양을 왕래하면서 철학대화를 계속해오는 과정에서 몸에 베인 발언 습관이 되어버린 점을 용서하십시오.

물론 원래 일본어로 말한 부분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기는 했습니다만 충북보건대학교 간호학과 학생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앞으로 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실 때 여러분의 활동 무대를 한국 안으로 국한시키지 말고 동아시아로 넓혀서 생각해 보시기를 권고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아시아는 무엇보다 양질의 간호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고 아직은 수요가 공급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학생 3 “선생님의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청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 주간 “저에게 젊음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든이 넘은 제가 이십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가 여러분처럼 젊었던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때의 우리나라와 우리 겨레는 정말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한국동란(6.25동란)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전쟁이 가져다준 흔적은 너무나 참혹했고 거기서 빚어진 상처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거의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아픈 것이었습니다. 나라 땅은 오통 폐허가 되었고 삶은 말할 수 없이 힘겹고 가난하고 쪼들렸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형편이 지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지옥 같은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어딘가 멀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저 먼 곳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과 두근거림이 지옥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이 여겨졌던 저의 몸과 마음과 넋이 버티고, 이겨내고 보다 나은 곳을 바라는 힘을 안겨주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 거기서 생겨나는 설렘과 두근거림. 온갖 고통과 곤란을 참고, 견디고 이겨내서 마침내 보다 나은 세상을 바라고 그것을 이루려는 집념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 스스로는 그것이 바로 ‘꿈’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도 지금도 삶은 꿈이요 꿈으로 말미암은 설렘이요 두근거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은 때로는 무한한 힘이 되며 무기력한 나에게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게 해주었고 때로는 빛이 되어 칠흑 같은 어둠이 내 인생을 덮쳤을 때 환하게 길을 밝혀주었으며 때로는 열이 되어 절망과 포기로 인하여 시체처럼 싸늘하게 식어가는 나에게 열의·열정·열성을 가지고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밀어주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적어도 저의 개인적인 사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젊었을 때만 그랬던 게 아니고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철이 덜 들었다느니 세상 물정에 어둡다느니 여러 말을 많이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는 만약 꿈을 접는 것이 철드는 것이라면 철이 안 들어도 좋고 제가 사는 삶이 세상 물정과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런 세상물정에 밝을 필요가 없다는 고집을 지켜온 것 같습니다. 꿈이란 지금 이상을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무리 긴요한 것이라고 해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어디서나 꿈을 키우고 왔습니다. 더 이상 꿈을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곳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아무리 좋은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서슴없이 미련 없이 떠나서 꿈을 키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자주 헤매었습니다.

그 때문에 여러 나라에 가서 공부도 했고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학생들과 대화도 많이 했는데 거기에는 항상 간절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공유하는 보통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는 생명공동체의 실현이라는 꿈입니다.

다른 지역에 앞서 우리와 가까운 인연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중·일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들만의 관심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함께 이루는 시민사회의 새로운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를 나누어 왔고 오늘 이 자리에서도 대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꿈에 설레고 기대에 부풀고 공감의 확산 파동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어떤 일본대학의 여학생들이 저에게 ‘꿈과 연애하는 남자’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저는 동아시아 생명공동체라는 생각을 좀 더 구조화, 과정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한중일의 공통과제가 되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먼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바탕(好生之德)을 주축으로 하는 인격형성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그런 인격의 함양과 공유를 공동기반으로 삼는 시민주도의 ‘활명연대(活命連帶)’의 결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호생인격과 활명연대를 통해서 한중일 삼국이 국경내적으로나 국경횡단적으로 서로의 생명가치를 최상위에 놓는 가치질서를 정리하고 거기에 걸맞는 생명윤리를 함께 인정하고 실천하는 ‘상생공동체(相生共同體)’로의 발전을 기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삼차원이 아우러지는 입체적 과정 구조입니다. 당장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한중일 ‘의료공동체’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한중일 ‘의사·간호사 공동체’입니다. 한중일 간호사 공동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늘 마음 깊이 간직하고 일상적으로 위험에 처한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서 생명의 안전과 정상회복을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시는 간호사들과 간호사가 되려는 뜻을 세운 젊은 여러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생명공식’을 소개하려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공유·공감·공명하고 싶어서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도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대한 심적태도가 불명확하면 모처럼의 진정이 아주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예를 들 수도 있지만 앞서 가신 우리 고장 어른의 말씀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심정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고장(진천) 출신의 선각자 포석 조명희(1894~1938) 선생의 생명에 관한 생각을 제 나름대로 공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생명=힘×열×빛


일제 강점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포석 선생은 우리 겨레의 생명이 고갈되어 가는 것을 무엇보다도 안타깝게 여기셨고 그것은 온전히 일제의 포악한 침략과 비인간적·반생명적인 탄압지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서 격분을 토로했으며 거기서 우리 겨레의 생명에 대한 자각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포석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은 힘이다. 힘이 있으므로 열이 있고 열이 있으므로 광(光)이 있고 힘과 열과 광이 있으므로 온갖 색체와 온갖 음향과 온갖 형태가 있다”고. 그리고 “생명에는 진(眞)과 미(美)가 있다… 사람에게는 예술이 있다. 철학이 있다. 온갖 것이 있다.

이것은 다 생명의 표현이다. 삶이 있는 까닭이다. 생명이 있는 까닭이다”라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겨레가 악독한 일제의 식민통치 때문에 생명이 고갈되어 가고 그것은 우리 겨레의 힘과 열과 광이 소실되어 가는 것이고 우리 겨레의 진과 미가 쇠퇴하는 것이며 철학과 예술과 종교가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자신도 오랫동안 나라 밖에서 일하다가 모처럼 고국에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우리 겨레의 생명력의 약화와 쇠퇴에 대한 걱정입니다.

그래서 철학과 사상과 예술과 종교도 그 본래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 염려됩니다. 그러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력의 회복과 소생을 무엇보다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헌신 봉사하는 간호사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늘 생기 넘치고 언제나 건강하고 진실로 행복해야 우리나라도 우리 겨레도 생기를 찾고 건강을 지키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기와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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