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우 청주시 서원구청 농축산경제과장

 

오랜만에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변의 산뜻한 푸른 들판에 시선을 묻으며 생각에 잠긴다. 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저렇게 많이 컷구나. 파란 바닷가 수평선을 보는 듯 시원하다. 한줌의 빗줄기가 더위를 식히고 주변의 먼지를 씻어서 더욱 푸르고 깨끗해 보였다. 딸이 ‘아빠 무슨 말 하실 거예요?’ 하고 묻는다. ‘글쎄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두 시간 이상 어색한 시간을 무슨 대화로 보내야 하나? 자칫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평소에도 말주변이 없다는 말을 듣는 처지 인지라 부담이 가중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반갑습니다’라는 한마디 밖에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자리가 상견례 자리라고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보니 어색한 장면이 눈에 선하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간이 여유가 있다하여 ‘미리 가서 주변에 있다 가자’했더니 ‘아빠! 여기서 몇 분이면 가요’하여 백화점을 서성거리다 생각지도 않은 지체로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을 늦게 되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모두들 서열 순으로 아빠, 엄마, 큰딸, 둘째딸, 막내딸이 서로 옹기종기 앉아 있다 일어나며 우리를 반겼다. 그중에 큰딸이 제일 반가운 미소를 띤다.

송구스런 마음에다 팽팽한 긴장감이 좁은 공간에 꽉 찼다. 최대한 부드러운 척, 편안한 척, 반가운 척 하며 인사를 한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건성거리며 서로 인사를 하고 앉아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게 되니, 역시 어색하다.

평소 아들에게서 단편적으로 전해들은 아빠의 인상은 고집스럽고 완고한 우락부락한 인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좋은 인상 이어서 순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스친다. 뭐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또한 음식 솜씨가 탁월하시다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찬찬하시고 마음씨 좋아보였다.

우리가족의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 질까?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예비 사돈의 주도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어찌나 달변이신지 나는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의 동조가 이루어져 금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몇 분 사이에 한 가족이 된 것 같은 분위기다.

남녀가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 사랑하고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은 서로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가족을 통합하는 과정이다. 아들은 처가 쪽 가족을 우리가족으로, 딸은 우리 가족을 시댁 쪽 가족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느덧 어색함은 사라지고 벌써 한 가족이 된 것 같은 스스럼없는 분위기가 되어 서로가 생각하고 있었던 양 가족의 통합 협상에 들어간다. 날짜를 조율하고, 장소를 정하고, 하긴 이미 사전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공식적으로 추인하는 절차라 할까? 일사천리로 일정과 절차를 정한다. 예비 사돈의 대화를 듣다 보니 예상했던 시간이 초과되었다. 처음 출발할 때 대화거리가 없어 어색할 것으로 두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대화시간으로 버스시간을 예약 했는데 기우였다. 한 세 시간으로 예약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스친다. 분위기에 빠져 일어나야할 시간을 놓쳤다. 올 때처럼 부랴부랴 서두르기 시작한다. 택시를 부르고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다음 만남을 예약한다. 택시를 타고 간신히 버스 시간에 맞췄다. 설상가상이랄까 딸이 배탈이 나서 약국으로 화장실로 헤메이다 버스를 타고 보니 오늘 상견례 행사는 요란하게 치른 것 같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달리며 오늘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협상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가족들 모두 좋은 것 같애’ 라고 아내가 말한다. ‘그래’ ‘아주 멋진 가족을 만난 것 같다’라고 말하며 오늘의 만남에 대하여 만족해한다. 오늘 첫 협상은 대 성공이었다고…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을 회상해 본다. 몇 십 년 전 처음으로 처가 가족들과 상견례 자리에서 장모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술은 잘하는가?’ 였다. 장인어른이 술 때문에 일찍 돌아가셔서 술이라면 한이 맺히셨단다. 그 시절 아내에게 약속한 것들은 얼마나 이루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지난 시간들이 아쉬움을 더 한다. 그때 아내를 만나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듯이 아들은 오늘 또 다른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절차를 밝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쌓아온 작고 초라한 성 보다는 아들이 쌓을 성은 좀 더 크고 좀 더 높게 그런 행복이 가득한 성을 쌓을 수 있길 바란다. 네가 책임질 또 한사람과 한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다 함께 행복한 두 가족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아들을 믿으며, 만족한 마음으로 잠시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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