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중뇌 대량생산 기술 개발 중…동물실험 대체할 것"

한인 과학자들이 주도한 국제연구팀이 인간의 수정란에서 얻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뇌의 일부인 '중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파킨슨병 치료를 목적으로 3차원 형태로 만들어져 그동안 연구에 이용하던 동물실험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듀크대-싱가포르 국립의대 제현수 교수는 싱가포르유전체연구소 연구팀(응헉휘 소장, 조중현 박사)과 공동으로 '중뇌 오르가노이드'(organoid)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르가노이드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소규모 장기다. 2013년 대뇌피질이 만들어진 적이 있지만 중뇌가 개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에는 고한석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신주헌 존스홉킨스병원 교수, 조남준 난양공과대학 교수 등 한인 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에 미국 동부시간으로 7월 28일에 게재됐다.

뇌의 한가운데 위치한 중뇌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기능 등에 관여하는 조직으로 대표적인 신경퇴행성질환인 파킨슨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이 수정란에서 배양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든 중뇌는 임신 중기 태아의 중뇌와 비슷한 2㎜ 크기로 실험용 쥐의 뇌 전체와 비교하면 25% 정도에 해당한다.

운동기능 등을 구현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실제 인간의 중뇌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형태로 뇌의 기능이 어떻게 발생하고 작용하는지 연구가 가능하다.

중뇌 오르가노이드에서는 신경세포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생성하는 과정 등이 관찰됐다. 또 파킨슨병에 관여하는 '흑질'(Substantia nigra)을 구성하는 핵심 물질인 '뉴로멜라닌'(neuromelanin)을 만든다는 점도 확인됐다.

파킨슨병은 나이가 들면서 중뇌의 흑질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손실되면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질환이다.

특히 뉴로멜라닌은 동물실험에 주로 사용되는 생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물질로, 중뇌 오르가노이드가 인간의 파킨슨병 연구에 더 적합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무엇보다 연구팀은 파킨슨 환자의 혈액에서 유도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이용해 중뇌 오르가노이드를 만들면 도파민 신경세포 문제, 의약품 테스트 등 다양한 연구를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실험에 사용된 배아줄기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대체하는 개념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가 흔히 환자맞춤형줄기세포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별 파킨슨 환자의 중뇌 오르가노이드가 만들어지면 실제 환자 중뇌를 대신해 치료법을 연구하는 아바타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뇌는 조직검사가 불가능한 영역이었지만, 중뇌 오르가노이드를 이용해 조직검사를 시행할 수도 있고 특정 약물을 주입했을 때 도파민의 증감, 변화 등을 관찰함으로써 개별환자에게 적합한 약물을 결정하는 연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조중현 박사는 "이번 연구 과정에서 환자의 혈액에서 유도한 줄기세포로부터 인공 중뇌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확인됐다"며 "파킨슨병 등 뇌에서 발생한 질병들은 증상은 같아도 환자마다 원인이 다양한데 중뇌 오르가노이드를 이용하면 개별환자에게 맞는 치료법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연구팀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지금까지 알려진 파킨슨병 유전자를 변화시킨 줄기세포로 중뇌조직을 만드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이런 중뇌 오르가노이드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혁신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제현수 교수는 "중뇌 오르가노이드를 통해 뇌 조직의 성장을 계속 관찰하며 파킨슨병의 발병 원인과 작용원리 등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응헉휘 싱가포르유전체연구소 소장은 "앞으로는 중뇌 오르가노이드가 실험용 동물모델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파킨슨병뿐만 아니라 다른 뇌 질환이나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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