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신홍경 기자)

1. 라셀 디오네스 (결혼이주여성)

“명절을 맞는다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한국 며느리로서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라셀.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라셀 디오네스(48·청주시 상당구)가 추석명절을 앞두고 한 말이다.

필리핀이 고향인 라셀은 16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청주로 이주하게 됐다. 라셀씨는 시어머니을 모시고 살고 있다.

매년 두 번의 명절과 시아버지, 조상들의 제삿날이면 음식준비와 청소 등 허드렛일은 그의 몫이다. 그는 “처음 한국의 명절문화를 접했을 때 무척 생소했다. 필리핀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라며 “필리핀은 남·여노소 함께 음식을 준비하거나 각자 만들어온다. 또 차례를 지내지 않아 격식을 차리는 분위기가 아니라 파티 같다”고 말했다.

라셀이 이주한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때에는 한국문화에 적응하지 못 해 시어머니와 사소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제사가 왜 이렇게 많고, 이 같이 많은 음식을 왜 여자가 다 차리고 치워야 하는 지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에 세 번씩 하는 제사만이라도 한 번으로 줄일 수는 없는지, 남자들도 함께 도와줄 수는 없는지,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는 “명절이 시작되기 전과 끝나기까지 하루 종일 음식을 하고 청소를 했다”며 “그래서 처음에는 명절만 되면 필리핀에 있는 가족생각이 많이 나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라셀이 이 같이 힘들어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16) 때문이다.

아들 A군은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약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했다.

그런데 명절 때면 많은 친척들이 몰리는 바람에 A군은 수 없이 집을 뛰쳐나가곤 했다. 라셀은 아들을 찾기 위해 음식을 하다말고, 또 제사를 지내다 말고 맨발로 집밖을 나선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라셀은 “시집오고 10여년 동안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는 것도 힘든데 아픈 아들이 명절 때 마다 뛰쳐나가고, 사람들 대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명절이 싫어졌다”며 “그래서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니라 슬픈 날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셀은 “지금은 가족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한국문화에 적응하며 살다보니 명절에 많이 웃고, 이런 내 모습을 본 아들도 예전과는 달리 잘 따라준다”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는 남편이 라셀을 도와 함께 청소와 음식을 하고, 친척들도 아들과 함께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있다.

라셀은 “제사지내는 풍습 등 이해가 안되는 한국문화도 많았지만 지금은 자식들을 위해, 또 가족들의 건강과 앞날을 위해 조상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며 “한국의 이런 문화가 한국을 더 발전시킨 것 같고, 또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한국며느리가 돼 명절을 가족들과 즐기며 재밌게 보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 이옥화(북한이탈주민)

“명절 때면 북한에서 데리고 오지 못 한 막내 남동생이 생각납니다.”

한국에서 14번째 추석을 맞는 이옥화(여·46·청주시 상당구)씨는 탈북민이다.

▲ 이옥화씨.

그는 명절이 올 때면 마음이 시리다고 말한다. 고향생각도 나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생사도 모르는 막내 동생 얼굴이 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씨는 “언니 4명과 함께 탈북해 명절 때가 되면 아버지를 모신 대전 현충원에 가서 차례를 지낸다”며 “갈 때마다 막내 동생 좀 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6.25참전용사로 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했으며, 2004년 한국으로 모셔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했다.

그러나 이씨의 막내 동생은 탈북에 실패해 한국에 함께 오지 못 해 동생을 찾아 몇 번이나 중국으로 넘어가 수소문했지만 지금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 하고 있다.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을 챙기지 못 했다는 죄책감에 항상 마음에 동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산가족을 신청해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탈북을 했다는 이유로 신청서도 접수할 수 없었다.

그는 “언니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처럼 고향에 가 친척들과 친구들을 보지 못 하는게 안타깝다”며 “그나마 경찰서와 각 시민단체에서 주는 따뜻한 밥과 선물이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명절마다 합동차례가 치러지지만 청주에는 없어 탈북민들끼리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는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 된 마음으로 같이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며 “여기서 가족들은 보지 못하지만 또 다른 제2의 가족들과 함께 따뜻하고 풍성한 그런 추석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살면서 적응하기도 벅차지만 한국사람들의 편견에 치여 취직하기조차 어렵다.

이에 일부 탈북민들은 직장 면접을 볼 때 ‘중국사람’이라고 둘러 댄다고 한다. 한국사회가 탈북해서 왔다는 것 자체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지만 탈북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같은 한국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북한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니 믿고 의지하며 어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명절 때면 북쪽 가족과 형제에 대한 그리움이 더하다는 탈북 주민들. 언젠간 가족과 함께 고향 땅에서 따뜻한 명절을 맞이할 수 있기를, 올해 추석에도 북한이탈주민들은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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