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 <보은군수>

 

되돌아보니 어언 60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중학교 때 그 선생님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청주 시내에 중학교는 7개가 있었는데 청주사범병설중학교는 특차로 뽑았습니다. 각 학년이 3학급 150명으로 1반은 남녀공학이었지요.

저는 졸업생이 17명인 보은 회인 산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께서 문제를 내시면 학생들이 모두 손을 들고 “저요! 저요!”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이 놀라움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정다감한 아버지 같았고, 스승과 제자가 두터운 신뢰 속에 존경과 사랑이 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진실과 양심을 스스로 체득하게 했던 세 가지 교육은 첫째, 어린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셨던 선생님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선생님이나 젊은 선생님 모두 어린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셨고 학생이 아무리 잘못해도 폭언이나 욕설을 하지 않으셨으며 늘 고운 말씨로 조용하게 설득하셨습니다. 아들·손자에게 훈계 하듯이 한 마디 한 마디를 해 주셨어요. 존댓말은 상대방 인격을 존중하는 표시이기에 누구나 불쾌감을 가지지 않게 되고, 또 무례함을 저지를 수도 없습니다.

둘째,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한 선생님들.

당시 우리 학교는 매월 말에 시험을 보고 월초에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내드렸는데, 시험 때 감독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5분전에 담임선생님께서 시험 문제지를 가져와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책상위에 엎어 놓게 한 후 종이 울리면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셨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해답을 쓰는 데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컨닝을 하지 않았어요.

각자의 양심과 자존심이 있었기에 아는 대로 답을 썼습니다. 비록 백지를 내서 0점을 맞을지언정 내 자신을 속이는 비겁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였던 것 같아요.

셋째, 주인 없는 상점을 운영한 선생님들.

본관 건물은 3층이었는데, 2층과 3층 계단 빈 터에 공책·연필·도화지·삼각자·분도기·물감·잉크·철필 등 여러 가지 학용품을 진열해 놓고 파는 사람 없이 학생들은 물건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고 물건을 고른 후 나무통에 돈을 넣었습니다.

이상한 일은 매주 월요일 조회 때 지난 한 주일간의 판매실적을 전교 주번장이 발표했는데 판매한 물건 값과 돈 통에 들어온 돈이 일치되지 않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몇 십 원이 모자라거나 몇 십 원이 남았는데 월말 결산액은 거의 일치 되었습니다.

외상으로 가져갔다가 후에 돈을 가져왔기 때문 일거라고 믿어지는데 혹시 양심을 속일 수 없어 고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가 혼탁하고 학생들이 영악해졌다고 하지만 스승과 제자가 서로 믿지 못한다면 참다운 교육은 설자리를 잃게 되겠지요?

불신의 종말은 우리 모두가 불행해질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거짓 없이 착하고 바르게 자라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60년 전 청주사범병설중학교를 다니던 어린 학생이 자라서 평생 그 시절 안택수 교장선생님, 정직래·심봉진 교감선생님, 임창순·신승우·정진국·송재원·박종성·이영재·김향·이상덕·이종춘·경영호……. 선생님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그 스승처럼 살고 싶어 하는 제자는 행복합니다.

오늘도 선생님이 먼저 학생을 믿고, 존댓말 쓰고, 무감독시험·무주인 상점을 운영한다면 훌륭한 제자는 반드시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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