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창사 25주년을 돌아보며…

▲ 안수길(논설위원)

1991년 10월 12일 창사, 그해 12월 29일에 창간호를 발행한 동양일보가, 오늘 6786호를 내면서 창사 25주년을 맞는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척박한 땅에 씨를 심는 개척자적 의지 하나로,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25년 동안을 결간 없이 버텨 온 동양일보의 족적이 새삼스런 감회에 젖게 한다.
 변화 발전의 주기가 갈수록 단축돼 가고 있는 요즘은 신상품에 대한 관심집중 효과가 2년을 넘지 못할 만큼 소비자들의 안목,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 발전되고 있다. 소비자의 안목,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따르지 못하는 상품은 도태를 면치 못한다.
신문도 일종의 상품이다. 사회 전반에 대한 감시와 계도를 위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 구실이고, 소비자인 독자들의 안목과 의식을 따르지 못해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할 때는 역시 도태를 감수해야한다.  
동양일보가 창간 후 여러 난관을 겪으면서도 결간 없이 25 년을 버텨 온 것은 그만큼 발 빠른 변화를 거듭하면서 향상되는 독자들의 의식을 선도하고 정치 경제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고발하는 신문 본래의 구실을 다 해 왔기 때문이다.
‘신문 없는 정부, 정부 없는 신문 중 그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 제퍼슨(미국 정치가)의 말이다. 신문의 구실이 강력한 국가,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고 올바른 시민의식을 계도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한 것이다.
동양일보는 비록 지역신문이란 한계가 있지만 그 구실이, 역할기능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계는 독자와 정보의 비중에 대한 것일 뿐, 사회 감시와 독자 대중의 계도라는 본래의 구실에 경중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간 동양일보의 25년 성장은 사회 감시를 위한 비리 부정의 고발과 지역사회 현황 보도에 신속성과 정확성, 공정성에 하자가 없었음을 독자들이 보증하고 신뢰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사회 계도와 시민의식 향상을 위해 펼쳐 온 각종 문화사업은 착근단계를 거쳐 풍성한 과실을 거둘 만큼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지역은 물론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이무영문학상, 지용신인문학상, 충북여성문학상,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등은 한국 및 지역문학 발전의 밑돌을 놓는 작업이요, 충북 및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와 도내순회 명사시낭송회는 저속한 일부 대중문화에 참신한 새 자람을 일으킨 시민정서순화운동인 동시에 낭송문학의 개척에 선도역할을 해 낸 것이다. 지역방송사 CJB와 월드비전 공동으로 매년 도민모금운동을 전개, 에티오피아 ‘코리아마을 돕기와 결식아동 돕기운동을 지속해 온 사업은 도민의 사랑나누기를 통해 상부상조의 미풍을 진작하는 시민의식 계도사업이었다.
충북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물박사선발대회, 우리말겨루기대회 등은 청소년들의 올바른 사회상식과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 배양을 통해, 차기 세대의 건전한 사회풍토 조성의 기초를 닦는 사업이었다.
 경영 여건이 취약한 지역신문이 이런 역할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영자와 사원들의 일치된 의지와 결속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동양일보가 걸어 온 25년의 족적은 탄탄하고 신뢰로운 것이었다 해도 결코 미래의 신뢰까지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진로는 독자들의 시선이 현재까지와 같이 우호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
문화 계도사업은 지속성과 투명성, 발전적 효과 창출을 위한 운영방법의 모색이 따라야할 것이고, 독자들에게 제공되는 갖가지 정보는 정확성과 신속성, 공정성이 확보 돼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그릇 될 때, 독자들의 신뢰는 무너지고 50주년 100주년으로 이어져야할 장수 기대는 무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정적 취약성을 극복해야하는 경영자는 물론, 하루를 25시간으로 연장, 숨가쁘게 뛰는 기자들은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에 예리한 통찰력을 겸비한 철인의 각오를 다져야할 것이다. 각종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종이신문’의 정보독점시대가 지난 현재는 독자들의  정보접근 기회나 판단능력이 결코 기자들의 의자 밑에 머물러 있다는 안일한 의식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한때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은 ‘적의(敵意) 있는 신문이 네 개 있으면 천개의 총검보다도 두렵다’고 했다.
이 말 속에는 신문이,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의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통치자의 편력과 권력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편, 민중의 편에 서야하고, 비리 부정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신문, 불의와 부정에 눈 돌리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신문, 그런 신문이 국가 사회의 건재와 시민의식의 정립에 기여하는 신문이요 정의로운 언론이다. 또한 그것이 종이신문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25년의 족적을 발판으로 50년 100년, 그 이상의 장수를 누리며 충청도라는 지역 한계를 초월, 전국으로, 동양 각국으로, 마침내는 전 세계로 족적을 넓혀 가야할 동양일보가 설 자리는 물론, 그러기 위해 구성원들이 다져야할 각오 역시 자명하다. 분골쇄신. 정의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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