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활성화 돼 있지 않던 시절 ‘소통의 장소’

▲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이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설립, 운영중인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 송암길 청주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 전경.<사진·최지현>
▲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제공할 공산품과 주류를 물류센터에 입고하고 있다.<사진·최지현>

충청권 정론지 동양일보가 12일 창사 25주년을 맞았다. 이에 역사의 굴곡을 함께해 온 충북도내 동년배 기업을 찾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전을 들어봤다. 창사 25주년은 성년이 돼 갓을 쓴다는 약관의 나이를 지나 사회에 기반을 잡고 홀로 선다는 이립의 중간 나이에 해당해 그 의미를 더한다. 동양일보가 청주상공회의소를 통해 알아본 결과 올해로 설립 25주년이 된 충북지역 병·의원과 소상공인, 제조업, 건설업 등 기업은 모두 344개로 추산된다. 이 중 우리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는 주부들의 사랑방이자 지역경기의 바로미터가 되는 동네 슈퍼마켓의 든든한 뒷심이 돼 주고 있는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을 찾아가 봤다.<편집자>

 

(경철수 조석준 동양일보 기자) 동네 슈퍼마켓은 주부들이 가족건강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매일 찬거리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다. 또 주민들이 서로 교류하며 하루 생활의 피로를 풀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문과 IT(정보통신기술)가 보편화 돼 있지 않던 시절 동네 미용실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의 장소 역할을 한 곳이 동네 슈퍼다.

이런 동네슈퍼는 1996년 정부가 사전 준비 없이 유통시장을 개방하면서 국내·외 대형 유통사들이 골목상권까지 진출, 경영난을 겪으면서 줄 도산하거나 폐업하는 아픔을 겪었다. 최근에도 대형마트 계열사인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골목마다 진출해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연구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일자리 1개가 생길 때마다 동네슈퍼 1.5개가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형마트 주변의 기존 상점들이 고사하면서 지역수입이 줄고 지방자치단체는 훨씬 많은 공공서비스와 교통체증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얻은 수입은 지역은행에 예치되거나 지역사업에 투자되지 않고 본사가 있는 외지로 바로 빠져 나가고 있다. 이에 정부가 나서 재래시장과 중소상인에 대한 경쟁력 강화정책을 편다거나 제도적 보완을 통한 상생협약과 지자체 차원의 상생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미한 상황이다.

 

● 충북청주슈퍼조합 25년·물류센터 탄생

대형유통업체들의 무분별한 영업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동네 슈퍼를 하나로 모은 것은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이다.

조합은 공동구매를 확대해 대형마트 같은 할인행사도 정례화 하고 국세청으로부터 영세 상인들을 위한 주류 면허를 취득해 주류유통업까지 시작했다.

조합은 식품과 생활용품 등 구매 횟수가 높은 상품들을 중심으로 10% 낮은 단가에 공동구매를 추진해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주류 또한 조합이 제조사로부터 직접 제품을 구입해 유통 중간단계의 도매상을 거치지 않으면서 기존보다 15∼20% 할인된 가격으로 조합원 슈퍼마켓에 공급하면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조합은 1991년 3월 20일 발기인 대회를 거쳐 그해 4월 18일 창립총회에서 초대 이상현 이사장이 취임했다.

이후 12, 13대 류근필 이사장이 선임되기까지 지난 25년 간 10명의 이사장이 연임해 오는 동안 충북도슈퍼마켓협동조합, 충북중부슈퍼마켓협동조합,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으로 3번이나 조합명이 변경돼 왔다.

조합은 2008년 11월 20일 영세 상인들을 위한 주류면허를 국세청으로부터 취득하고, 2013년 9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조합 자부담(10%)을 통해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 송암길 61(3302㎡)에 지상 2층 규모의 연면적 1958.46㎡의 청주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를 지어 현재 3000여 품목의 공산품을 취급하고 있다.

 

● 조합, 골목 슈퍼 경쟁력 강화 나서

물류센터를 이용하는 조합원 260여명의 80% 이상은 매장 면적 65㎡ 미만의 영세한 동네 슈퍼이다.

2013년 2월 1100여개에 이르던 청주지역 동네 슈퍼마켓은 매출감소와 노령화로 인한 폐점, 일부 대기업 브랜드 편의점으로 업종 전환을 하면서 36.4%(400)나 급격히 줄었고, 현재 700여개 만이 영업 중이다.

영업 중인 동네슈퍼 중 7.1%(260) 만이 조합 물류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이에 조합은 물류센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전국 10개 조합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동 개발한 물류통합정보시스템을 이용해 구매 관리, 제품 주문에서 배송까지 모든 입·출고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일의 능률성을 높여주고 있다.

또 프로그램의 고도화를 통해 동네슈퍼의 포스(POS) 프로그램과 연결, 동네슈퍼의 수요를 예측해 적기에 적정한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프로그램 보완을 거친 뒤 같은 영세 골목슈퍼인 나들가게에도 제공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골목슈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센터 역할까지 수행해 영업 관리, 회계 관리, 지역소비자 서비스 만족도 향상을 위한 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또 조합은 앞으로 3년 안에 화장지와 쌀 등 자체브랜드상품(PB)부터 지역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1차 식품)까지 골목슈퍼가 아니면 판매할 수 없는 품목으로 승부를 걸기 위해 연구 중이다.

일례로 유통기한이 짧은 어묵, 햄, 유제품, 필수야채 소분포장 등을 통해 제품 구성의 경쟁력 확보에 나선다.

조합은 2014년 7월 8일 22대 류 이사장이 선임되면서 조직을 재편해 배송인력을 유경험자로 대체하고, 관리직원 교육을 통한 업무능력 향상, 관리 책임자 신규채용 교육 등으로 기존 10명이 하던 일을 9명이 하면서도 매출신장을 올리고 있다.

조합은 앞으로 추가 증자를 통한 부채탕감과 물류센터 이용 조합원 배가 운동을 통한 매출신장 등을 통해 완전한 흑자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류 이사장은 “2020년까지 현재 연매출 11억7279만원, 이용회원 260명, 공산품 배송비율 80%, 정 조합원 45명을 20억원 규모의 연매출과 500여명의 이용회원, 80%의 공산품 배송비율과 90여명의 정 조합원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며 “특히 현재 80%의 주류와 20%의 공산품을 취급하고 있는 것을 균등하게 50대 50의 구성비로 맞추고 더 나아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물류센터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동네슈퍼 지역농산물로 경쟁력 키운다

충북청주슈퍼조합이 대기업 유통 물류망과의 경쟁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동네슈퍼만이 팔 수 있는 지역농산물(신선식품)을 물류센터가 공급하는 것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일본 고베의 나가다 상점가에는 푸케토 슈퍼마켓과 대형 유통기업이 운영하는 다이에 슈퍼마켓 체인이 불과 20m 사이에 두고 영업중이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동네슈퍼인 푸케토가 다이에보다 장사가 더 잘된다.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신선식품에 있다. 상품 구색에서 신선식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72%나 된다. 특히 푸케토는 30년 이상 신선식품을 취급해온 동네 가게 주인 5명이 연합해서 만든 슈퍼다.

따로 운영할 때 보다 넓고 쾌적한 쇼핑 공간에 쾌적함까지 갖췄다. 고베에서만 이런 형식의 공동 점포가 13곳이나 운영되고 있다.

푸케토의 성공사례를 직접 보고 온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공동 물류를 통한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품질 경쟁력으로 대형 유통기업과 겨뤄 선전하는 경우”라며 “미국 IGA 슈퍼체인은 동네 소매업체들이 연대해 만든 프랜차이즈로 ‘당신이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우리 주민이 소유한 가게’란 콘셉으로 소비자를 공략한다”고 말했다.

 

“흑자경영으로 조합원 신뢰 회복할 것”

류근필 조합 이사장

▲ 류근필 이사장

(경철수 동양일보 기자) 류근필(63·청주 용암동코사마트 대표·사진)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과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류 이사장은 2014년 7월 8일 열린 조합 정기총회 보궐선거에서 12대 충북청주슈퍼조합 이사장으로 취임, 대과없이 잔여임기 2년을 채웠다.

이어 지난해 2월 25일 정기총회에서 임기 4년의 13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류 이사장은 비영리 단체란 조합의 특성상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지만 만년 적자란 주홍글씨가 늘 따라붙어 조합원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잔여임기를 넘겨받았다.

그가 취임하기 전인 2013년 조합 물류센터의 공산품 연간 총매출액은 53억8000만원 안팎에 늘 머물렀다.

그런데 그가 취임한 2014년부터 연 매출액이 10억여원씩 매년 수직상승했다. 2014년 65억1500만원, 2015년 75억2800만원으로 흑자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조합 부채도 2013년까지 10억여원 상당의 두 자릿수를 늘 유지해 오다가 2014년부터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런 그의 노력이 인정받아 지난해 말 중소기업인의 날에 류 이사장은 중소기업청장 상을 받기도 했다.

슈퍼마켓 가족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류 이사장은 매일 오전 6시 자신이 운영하는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 코사마트와 서원구 분평동 정훈할인마트 문을 열어 아내와 아들에게 인계하고 조합에 출근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비상근직임에도 류 이사장은 조합에 가장 먼저 출근해 불을 밝히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워커홀릭(workaholic)으로도 유명하다.

류 이사장은 “9명의 정직원이 5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같은 인원으로 연매출 10억원도 거뜬히 올리고 있다”며 “이는 일손이 딸리면 조합원들과 약속한 배송시간을 지키기 위해 저는 물론 행정과장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가 돼 일에 투입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류 이사장은 “바람이 있다면 추가 증자를 통한 부채 탕감 후 제로베이스(영기준)에서 조합을 운영하는 것”이라며 “1991년 조합 설립 후 그간 만년 적자운영을 벗어나지 못하다 지난해부터 겨우 흑자기조로 돌아서 9명의 채권자에게 매월 50만원씩 총 450만원을 갚아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돋울 지역에서 생산되는 1차 식품(농산물)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게 숙원사업”이라며 “이를 위해 얼마 전부터 농협충북유통과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이사장은 “중소 도매업을 했던 경험으로 공산품의 단가를 낮춰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가격경쟁력 확보에는 자신이 있는 데 매일 새벽 4시에 청주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아 신선식품(1차 농산물)을 조달하는 조합원들의 피로감을 풀어주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의 짐이 된다”고 토로했다.

류 이사장은 “전국 슈퍼마켓 조합 50여개 중 충북에는 청주, 충주, 제천, 단양 4개의 조합이 있다”며 “조합 재정의 부익부빈익빈도 심한 상황으로 이사장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류 이사장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가 나름의 경쟁력 같다”며 “대기업 유통사 물류망을 이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으로 토종 물류센터인 청주중소유통 물류센터를 조합원들이 많이 이용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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