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더웠던 지난 여름도 기억속에 아득하고 어느 덧 깊은 가을로 접어드는 11월에 이르렀다. 전국이 단풍으로 물들었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임을 실감케하는 가장 좋은 시기도 이때가 아닌가싶다.

정서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자연과 친화하는 이 시기, 삶을 예찬하기에도 좋은 이 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누구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다사다난의 해’라는 말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모자랄 것 같은 올해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염원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선 사람이 살만한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해마다 오는 가을이지만 올해 유달리 상념이 많아지는 것은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시기임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이웃의 어려움을 같이 아파해 주는 사회가 사람이 살만한 따뜻한 사회다. 물론 지금은 품앗이가 관습이던 예전과 다르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함께 있어야 더욱 힘이 나고 기운이 북돋아지는 존재가 사람이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람 인(人)은 둘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돈도 좋고 출세도 좋지만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투명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이번 연말을 앞두고 우선 떠오르는 단어가 김영란법이다. 금품 수수, 향응등 불투명한 거래에는 시소의 법칙이 작용한다. 누군가 불법적인 거래로 이득을 취한다면 어느 한쪽은 자기도 모르게 피해를 본다. 특히 공직자들의 부패는 일부 소수가 아니라 온 국민이 피해를 본다. 그들이 수수한 금전규모의 수십 수백배의 국고가 새나가고 사회의 어느 한곳에선 부실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다.

지난 9월 28일‘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즉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3,5,10만원 등으로 분류까지 해 놓은 것을 보면 부패근절의 단호한 의지를 엿볼 수도 있다.

경기의 위축을 가져오는 부작용도 클 것이라는 반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그만큼 부정부패의 일소는 다급한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끝으로 안전한 사회를 바란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반드시 먹고사는 문제에만 달린 일은 아니다.‘사람이 곧 소우주’라는 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전사고로부터 해방된 사회가 바로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고의 대부분은 안전불감증과 타성에 젖은 안이한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스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취급부주의도 바로 안전관리에 대한 불감증의 다른 표현이다. 모든 사고는 궁극적으로 인재(人災)다. 아무리 기기가 발달하고 첨단의 안전관리방식을 개발했다 할지라도 안전관리에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는 것은 사람이다. 누구는 사람 사는 곳에서 안전사고는 필유(必有)라는 말을 체념적으로 읊조리기도 한다. 그것은 당연히 위험한 생각이다. 안전사고는 근절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일상속에 안전의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형의 안전관리활동보다는 무형의 안전의식 정착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이유다.

연말을 앞두고 떠오르는 생각을 몇가지 말해보았지만 요지는 하나다. 사람들이 가장 인간답고 투명하게 안전히 살 수 있는 사회를 조기에 만들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저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모두가 따뜻하고 투명하며 안전한 연말을 보내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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