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표 ‘응팔’ 이어 ‘질투의 화신’도 성공

10살 많은 쟁쟁한 선배들과

동년배 역할 부담됐지만

배려 덕 캐릭터 잘 살려

상대배우와 연기주고 받고

리액션의 중요성 깨닫기도

 

갑자기 높아진 관심 얼떨떨

인기는 언젠가 사라질 것

SNS 발언 논란 힘들었지만

잘못 알고 절제하는 법 배워

 

(연합뉴스)‘응답의 저주’를 깬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나왔다. 고경표(26)다.

‘응답하라 1988’ 덕에 하늘로 붕 떠오르는 짜릿한 기분을 만끽했던 그는 뒤이어 ‘질투의 화신’을 만나면서 배우 고경표를 앞으로도 계속 주목하게 만들었다.

쭞“응팔은 다시 없을 작품”

‘응답의 저주’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연을 맡은 청춘스타들이 차기작에서 예외 없이 실패하면서 생긴 말이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세 시리즈를 통틀어 최근 박보검이 ‘구르미 그린 달빛’을 성공시키면서 이 저주를 처음으로 깼고, 고경표가 곧바로 그 바통을 이었다.

고경표는 “‘응팔’은 제 생애 두 번 다시 없을 작품”이라며 “제가 선우라는 캐릭터로 기억되게 해준 너무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응답하라 1998’ 이전과 이후로 고경표의 배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물론이다.

“‘응팔’에 출연할 때 길거리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께서 ‘경표야’라며 제 이름 석자를 불러주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는 그는 바로 그 ‘응팔’ 덕에 ‘질투의 화신’을 만날 수 있었다.

쭞“남성다운 매력 보여주고 싶었다”

‘응팔’에서 가난하지만 똑똑한 고등학생 성선우를 연기했던 고경표는 ‘질투의 화신’에서 30대의 멋진 재벌 2세 고정원으로 변신한다.

나이도, 신분도, 성격도 완전히 바뀐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를 다시 만난 고경표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 손으로 꽉 쥐었다.

타고난 중저음의 목소리가 톡톡히 진가를 발휘했고, ‘고경표 다이어트’가 인터넷 인기 검색어가 될 정도로 체중 관리를 한 덕에 근사한 ‘옷발’을 자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왜 나지?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고 부담이 컸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고 토로했다.

자신보다 무려 10살이나 많은 조정석, 공효진과 동년배 연기를 해야 했고, 여유롭고 매력적인 재벌 청년을 맡아 베테랑 조정석에 밀리지 않는 매력을 뿜어내야 하니 어설프게 했다간 존재감도 사라질 위험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밀리지 않았다. 어려 보이지도 않았고, 나아가 부드럽고 신사다운 면모로 여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는 “너무나도 운 좋게 조정석, 공효진 선배를 비롯해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이 배려해 주신 덕에 잘 해낼 수 있었다”며 “고정원 캐릭터의 80% 이상은 주변 분들이 만들어주셨다”고 공을 돌렸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상대 배우와 연기를 주고받는 게 어떤 것인가, 리액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질투의 화신을 안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을 정도로 쟁쟁한 분들과 연기를 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그는 “어린 학생의 이미지를 털고 남성다운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연기하면서도 나한테 이런 여유로운 면이 있구나 스스로 놀라면서 찍었다”며 웃었다.

쭞 “힘들었고 아팠고 반성했고 성장했다”

훤칠한 외모의 고경표는 중 2때 길거리 캐스팅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게 데뷔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그는 고 2때 연기학원에 등록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고경표는 “집이 인천이었는데 인천에서 여의도 학원까지 먼 길을 오가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그만큼 연기하는 게 좋았다”며 웃었다.

2010년 KBS 2TV 드라마 ‘정글피쉬2’로 데뷔했지만 ‘응팔’을 만나기 전까지는 무명이었던 그는 “지금도 제게 스타성이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고 주변의 높아진 관심에 얼떨떨할 뿐”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팬미팅을 해봤는데 그것도 되게 의외였어요. 제가 팬미팅을 하다니. 물론 너무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죠. 하지만 인기라는 것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고, 언제든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닐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응팔’로 스타덤에 오르면서 과거 SNS에 올린 글들이 뒤늦게 구설에 오르는 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던 그는 “힘들었고 아팠고 반성했고 성장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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