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꼭 함께 있기를 바랐던 사람이 아닌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과
지금 이 모래밭에 함께 있구나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하고 싶었던 그 말
가슴속 깊은 우물에 넣어두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들만
빈 두레박에 담아 건네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한번은 만나리라 믿으며
만나면 별이 지기 전에
못다한 그 말 꼭 해야 한다 생각하며
꼭 걷기로 마음먹었던 그 길이 아닌
전혀 꿈꾸지 않았던 길 걸어온 지
어느새 이리 오래 되었구나
생각하는 저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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