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꼭 함께 있기를 바랐던 사람이 아닌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과

지금 이 모래밭에 함께 있구나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하고 싶었던 그 말

가슴속 깊은 우물에 넣어두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들만

빈 두레박에 담아 건네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한번은 만나리라 믿으며

만나면 별이 지기 전에

못다한 그 말 꼭 해야 한다 생각하며

 

꼭 걷기로 마음먹었던 그 길이 아닌

전혀 꿈꾸지 않았던 길 걸어온 지

어느새 이리 오래 되었구나

생각하는 저녁이 있습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