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

Ⅱ. 사가(佐賀)

■ 요시노가리(吉野吉野ヶ里) 유적(弥生時代後期)

  사가현 간자키(神崎)군 미타가와마치(三田川町)와 간자키마치에 걸쳐 있는 일본 청동기시대(B.C300~A.D300)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유적으로 한반도와 유사한 점이 많은 유적이며 주목받는 곳이다.
이 유적은 1986년부터 1989년에 걸쳐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대규모의 환호취락(環濠聚落: 취락의 외각 주변에 호를 파서 만든 방어적 성격이 두드러진 취락)터와 분구묘(墳丘墓)가 발견되었다. 환호취락은 그 규모가 약 25ha나 되고, 또 분구묘의 규모는 남북 40M나 된다. 주요 출토유물로는 세형동검, 유리로 만든

관옥(管玉)이 있다. 이 유적의 특징은 유적의 입지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다. 환호취락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농경에 의한 작물의 재배가 주민들의 주요한 생계수단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경우 도작문화(稻作文化)는 한반도에서 전해졌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옹관묘에서는 약 300개 정도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그 인골의 분석 결과 대부분이 도래인 계통의 성격을 띄고 있다. 또 출토된 세형동검의 형태가 경사암도 창녕군 동면 다호리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 기술적 원류가 한반도 남부지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유리로 만든 관옥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유적에서 출토되어 이 관옥의 기원도 역시 한반도로 불 수 있다. 이와 같이 요시노가리 유적의 대부분은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많은 유사점을 단순한 기술 이동의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한국계 이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한 결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지배인의 관저
서민의 집


[주소] 吉野ヶ里歴史公園事務所
〒842-0035佐賀県神埼郡吉野ヶ里町田手1869
TEL(0952)53-3902 FAX(0952)53-3910
YOSHINOGARI HISTORICAL GOWVERMENT PARK OFFICE
[교통편] 하카다(博多)역에서 JR 가고시마본선을 타고 도스(鳥栖)역(쾌속열차로 30분 소요)에서 내려, JR 나가사키(長崎)본선으로 갈아타고 요시노가리(吉野吉野ヶ里)공원역(보통열차로 약 15분 소요)에서 내리면 된다.

■ 아리타(有田)의 이삼평비(李參平碑)와 도잔진자(陶山神社)
  아리타(有田) 도자기를 개창한 조선인 이삼평(李參平)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 주민들에 의해 비가 세워졌다.
  이 비는 아리타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렌게이시야마(蓮花石山) 정상에 있으며 8M규모의 화강암에 음각되어 있다. 산을 냐려오면 도잔진사가 있는데, 이곳은 도조(陶祖) 이삼평을 주신의 하나로 모시는 신사로서 원래는 도조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5월4일 도조제가 열린다. 이삼평을 주임으로 한 아리타의 조선 도공들은 조선에 출병한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 直茂)군대에 연행되어 와서 일본 최초의 자기 산지를 개창하였는데, 아리타는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에도 세계적인 도자기 산지로 유명하다. 충청도 금강 출신으로 알려진 이삼평은 가네가에(金ヶ江)라는 성을 받아 가네가에 산베에(金ヶ江三兵衛)라도 불리웠으며 아리타의 류센지(龍泉寺) 기록에 의하면 1655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아리타를 중심으로 한 히젠(肥前)지방의 도자기는 나베시마(鍋島)번의 장려정책으로 1620년대를 전후로 일용식기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속히 발전하였고, 17세기 전반에 이미 동남아로 수출되었다. 이마리(伊万里)를 통해 유통되었기 때문에 이마리야키(伊万里燒)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한편 조선 도공에 기원을 두고 있는 사가현의 가라쓰야키(唐津燒)도 에도시대부터 유명한 도기 찻잔 생산지이다. 이 곳의 기시다케코요유적(岸岳古窯跡) 은 전형적인 조선식 가마로서 가라쓰야키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나가사키 사세보(佐世保)시의 히라도야키(平戶燒)도 조선도공인 김구영(金久永)․거관(巨關)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한다.

 

 


[주소] 住所: 佐賀県西松浦郡有田町大樽二丁目5―1
      郵便番号  844 宛先 陶山神社社務所 宮司 宮田清登
      電話 0955(42)3310 facsimile(41)1061
[교통편] 후쿠오카(福岡) 하카다(博多)역에서 나가사키(長崎)본선을 타고 자연동굴을 거쳐 아리타(有田)역까지 약 1시간30분정도 걸린다. 자동차로는 202번 국도를 타고 가라츠(唐津)와 이마리(伊万里)를 경유하여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

■ 아리타의 이즈미야마(泉山)와 백파선(百婆仙)의 비석
  이즈미야마(泉山)는 1616년 이삼평이 도자기를 굽기에 적당한 도토(陶土)를 처음 발견한 곳이다. 지금도 이 곳의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어 400년간 채굴된 자석장(磁石場) 자체가 아리타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곳에 이삼평에 대한 발견 350주년을 맞아 기념비가 세워졌고, 그 옆에는 무명의 도공들을 기리기 위한 도공의 비가 있다. 이삼평은 도토를 발견한 후 조선식의 계단식 가마인 텐구다니(天拘谷) 가마를 만들어 이 곳에서 처음으로 도자기를 구웠다고 한다. 덴구다니 가마에서 가까운 공동묘지 내에는 「조월창정심거사(祖月窓淨心居士)」라고 새겨진 윗 부분이 깨어진 비가 있는데 이는 이삼평에 대한 후손의 공양비이다.
 한편 아리타 호온지(報恩寺) 경내에는 「萬了妙泰道婆之碑」라고 하는 1705년에 새겨진 석비가 있는데, 조선에서 온 도공인 후카미신타로(深海新太郞=倧傳)가 1618년 세상을 뜨자 그 처인 백파선(百婆仙)이 다케오(武雄) 우치다(內田)에서 아리타의 덴진산요(天神山窯)로 옮겨와 아리타사라야마(有田皿山)의 개조가 되었다는 기록이 여기에 남아 있다. 현재 아리타나 근처의 이마리는 5월초 아리타 도자기 등 큰 규모의 도자기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고 아리타 도자미술관이나 현립 큐슈 도자문화관 등 각종 전시관이 있어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필수 견학 코스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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