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 거장 송형익씨

▲ 송형익 클래식 기타리스트 <사진·최지현>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음악을 한자로 쓰면 ‘즐길 락(樂)’자가 들어갑니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바로 음악인 것이지요. 앞으로 저도 음악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한민족의 얼’, ‘고구려의 기상’ 등 주옥같은 곡을 창작한 유명 클래식 기타리스트 송형익(64) 씨가 6회 ‘충청북도 시 낭송회’에서의 공연을 위해 지난 16일 청주를 찾았다.

기타는 송씨의 불편한 다리를 대신 했다. 소아마비를 앓던 그는 11살 때 형을 통해 기타를 처음 알게 됐고 그렇게 시작된 기타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음악을 시작한지 50여년. 기타로는 이미 최정상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노력하는 기타리스트다.

“매일 10시간씩 연습했던 적도 있었어요. 밤 10시면 이웃의 눈치가 보여 집 근처 들판에 나가 새벽 2시까지 연습했지요. 겨울에는 30분 정도 지나니 꽁꽁 얼었던 온몸에서 열이 나더군요. 힘들었지만 기타를 연습하는 내내 즐거웠어요.”

송씨가 음악을 시작했을 무렵은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지만 클래식 기타에 매료됐던 그는 클래식 기타를 손에 잡았다.

당차게 클래식 기타를 시작했지만 한국은 클래식 기타의 황무지였다.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거의 독학을 해 클래식 기타를 익혔다.

그 후 정통교육을 배워 클래식기타의 선구자 역할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한국에 남겨둔 채 7년간의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 유럽 각국의 ‘악기 박물관’을 보게 된 송씨는 한국의 악기박물관 건립을 꿈꾸며 세계 각국의 희귀한 악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30년간 수집한 악기만 해도 500여점이다. 이 악기들로 ‘세계악기전시회’를 수차례 열기도 했다.

그의 음악인생에는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가 있다. 바로 두 딸 시예·예나씨다. 두 딸들은 아버지와 함께 ‘송트리오’로 대를 이어 음악활동을 하고 있으며 예술학교 출강을 통해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송씨는 요즘 오래전부터 꿈꾸고 있던 ‘1인 1악기’운동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이제는 먹고 살만한 시대가 됐으니 인생을 즐겨야 할 때입니다. 언젠가는 국민 모두가 악기를 하나씩 연주해 음악으로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는 ‘발현악기 오케스트라’결성 이라는 최종 꿈이 남아있다. 발현악기는 줄을 튕겨서 연주하는 악기를 말한다. 송씨는 이 최종 꿈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는 독일 카셀 음대를 석사졸업하고 한국티아협회 회장, 노원음악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기타교본, 세계애창기타 70곡집, 바하인벤션, 기타합주곡전집 등을 출간했고 중국연변 및 심양, 카자스탄, 미국 등에서 다수의 초청 연주회를 가졌다.

현재 (사)한국 기타문화예술원 회장, (사)한국기타앙상블 음악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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