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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불꽃
2016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불꽃
  • 동양일보
  • 승인 2016.12.2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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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훈(동양일보 신인문학상)
 

핏빛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파팍. 치치칙. 격렬하게 맞붙는 토치와 용접봉. 심부 온도는 천오백 도. 토치 출력을 더 올렸다. 노란빛으로 변한 불꽃들. 위협적인 아치 곡선. 파파파팍팍. 칙칙칙. 기체가 된 크롬의 알싸한 냄새. 차광안경을 뚫는 빛의 무리. 시신경을 압박하는 통증. 심부 온도는 이천 도. 여기서 밀리면 끝장. 용접 경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선. 최대로 올린 출력. 팍팍파. 쏴쏴샤. 착착. 천장을 향한 불꽃들의 거대한 곡선. 심부 온도 삼천 도. 모든 재료가 녹는 지점. 이젠 오직 흰빛 불꽃뿐. 그렇다. 죽음의 색은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 치치칙. 드디어 자동차 철판이 녹는 단말마의 소리. 최종 접합의 순간. 광적으로 치솟는 불꽃들. 자기 자신을 태우며 벌이는 빛의 잔치. 가스 용접 하나가 끝났다. 결과물은 철판의 주름진 용접선. 땀 닦을 시간도 부족하다. 오히려 더 바쁜 야간작업. 지금은 새벽 세 시. 오늘 따라 많은 물량. 그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랑했어요. 그대만을 영원히.” 변함없이 들려오는 대중가요. 작업에 방해만 되는 머저리 같은 노래들. 공장의 근육들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 문득 근처 조립 파트에서 들려오는 소리. 착. 탁. 착. 탁. 그래. 바로 저런 소리. 그 단조로움. 그 규칙성. 내게 필요한 것은 차라리 기계음. 공장에선 영혼을 비워야 하는 법. 불필요한 의미와 말은 절제해야 하는 법. 내 경쟁 상대는 오직 소리. 그리고 빛. 치치칙. 용접 토치의 가스 출력을 올렸다. 다음 작업 준비. 다시 튀기 시작하는 불꽃. 파파팍! 처음은 핏빛 불꽃.

 

그렇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도 핏빛 전등이 있는 곳. 주말이면 단골로 가던 방석집. 신입이라며 힘없이 인사하던 아내. 그 파리한 살갗. 지친 표정. 하지만 무언가로 꽉 차 있던 눈빛.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 물음에 아내의 답변은 간명했다. “저 외지에서요.” 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를 취했다. 과연 외지 출신다웠다. 그 낯선 냄새. 표면의 떨림. 말없음. 그녀의 단골손님이 된 나. 그리고 몇 번의 바깥 만남. 공장 주변. 하천. 도로변. 황량한 데이트의 나날. 그러던 어느 밤. 창백한 수은등 밑에서 전해준 반지. 아직도 생생한 십오 년 전 기억. 내 나이 삼십이던 해.

 

스피커에서 가요가 중단됐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른바 공장장 훈시.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며….”, “어려운 경기에….” 무의미한 서두 끝에 나오는 본론. “몇몇 불순한 시도에도…예정된 계획은 확고하게….” 그들의 계획은 언제나 확고했다. 몸통은 보존하고 꼬리는 쳐내는 칼날과 같았다. 야간작업이 끝나기까진 앞으로 세 시간. 그리고 곧바로 예정된 파업. 아침 여섯 시. 저들도 이미 눈치를 챘을 것이다. 조립 파트. 도장 파트. 용접 파트. 공장 전체를 육박해오는 농밀한 기운. 아. 이 긴장. 이 팽팽함. 온몸이 근질근질해진다. 훈시가 끝나자 이어진 휴게 시간. 십 분 간의 작업 중지. 화장실 다녀오기도 힘든 시간. 휴게실에 가보니 가득한 사람들. 말없이 서로의 눈치만 보는 모습. 지도부는 함구령을 내린 상태.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누가 말을 걸어온다. “여, 안녕하신가.” 도장 라인에서 일하는 녀석이었다. 특유의 비굴한 표정. 가느다랗게 뜬 눈. 쥐처럼 내민 입. 약간 굽은 허리. 녀석이 주임과 어떤 관계인지는 잘 알고 있다. 칼날을 세울 가치도 없는 놈이었다. 녀석이 내게서 정보를 캐내려고 한다. “뭐, 아침엔 좀 바쁘실 것 같던데.” 난 녀석 앞에서 뜨거운 커피를 훌훌 마셔 버렸다. 데인 혀를 이빨 사이로 물었다. 그리고 손으로 우걱우걱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녀석의 바뀐 표정. 비웃음의 표정. 내 안에서 충동이 올라왔다. 녀석의 쥐 같은 입을 구겨 버리고 싶은 충동이었다. 작업 재개를 알리는 방송 소리. 이제 마찰 용접을 할 차례. 재질의 보존이 요구되는 부위에 적합하다.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해야 하는 보닛이 바로 그런 부위다. 재료를 향해 접근하는 푸르스름한 전류. 치이익. 살짝 가해진 열. 흐물흐물해진 표면. 이때 가해지는 압력. 차아악. 착. 차아악. 착. 차분하게 달라붙는 소리. 다시 낮은 온도로 재료를 녹이고 순간적으로 압착. 다시 녹이고, 압착. 녹임과 압착 사이. 시간을 지체하는 순간 표면은 굳어지고 게임은 끝. 매끄러운 연결. 그것이 중요하다.

 

초기 몇 년은 매끄럽게 흘러간 아내와의 결혼 생활. 공장 라인의 흐름만큼 단정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침밥이라는 것을 먹고 다녔다. 그녀는 더 이상 방석집 붉은 등 밑에서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둘 다 말수가 적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장점이었다. 요란한 말들이 없는 틈으로 더 실감한 그녀의 존재. 저 고된 나날 위로 솟은 바위 같은 존재감. 언제든 바라볼 수 있는 바위. 공장이든 황무지든 어디든 상관없다는 느낌. 아내는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리듬감을 소유한 여자였다. 발걸음. 빨래. 요리. 젓가락질.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극도의 절제가 깃들어 있었다. 관계를 가질 때도 결코 괴성을 지르며 성급히 치닫는 적이 없었다. 나직하고 지긋한 신음소리와 함께 절정의 순간을 유도하곤 했다. 나는 오랜 기간 공장의 작업 라인을 대한 탓에 소음과 박자에 민감했다. 퇴근을 한 뒤에도 늘 차량 부품들이 조립되고 용접되는 소리에 시달리곤 했다. 기계들의 망령이 나를 끝까지 따라다니며 분절시키는 느낌이었다. 아내의 부드러운 리듬감은 그런 내 신경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풀린다는 것. 흐트러진다는 것. 공장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틈새. 아내가 만들어준 틈새.

 

저 편에서 다가오는 공장 주임. 그에게도 매끄러움 유지의 임무가 있다. 작업 순서와 흐름의 매끄러움. 오늘 저 치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공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내는 주임의 매서운 시선. 그 시선을 피하는 동료들. 툭. 툭.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들의 어깨를 치며 지나가는 주임의 손길. 격려를 가장한 위협. 경고의 손길. 좋다. 어서 내 옆에 오길. 내 어깨를 치길. 내 눈을 노려보길. 똑바로 노려보길. 주임과 나는 이미 한 번 맞붙었던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작업량을 채근하던 어느 날. 말대꾸를 한 나를 그가 조용히 불렀다. 아내의 과거 직업을 아는 그가 말했다. 내가 공장에서 쫓겨나면 마누라가 가랑이를 다시 벌려야 하지 않느냐고. 그때. 난 그 자리에서 그와 뒹굴었다. 얼마간의 소동. 간신히 해고는 면하고 감봉만 받았다. 그날 이후. 서로 으르렁거린 주임과 나. 저 작자에 대해 내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 랑. 이.’라는 세 음절은 값이 비싸다. 멱살다짐으로 끝나지 않을 일이다. 내가 노리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주임이 나를 그냥 지나친다. 그가 향한 곳은 신참이 있는 곳. 이 공장에서 가장 젊은 신참은 조립 파트에 있었다. 그가 공장에 들어온 건 세 달 전. 보랏빛 염색머리. 귀걸이. 스키니 진. 어딘지 허술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행동. 모든 면에서 드러나는 젊은 기색. 뭐 하러 전망도 없는 계약직으로 왔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알잖아요.” 그래. 나도 안다. 전망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계약직조차도 요즘은 경쟁이라는 걸. 난 녀석이 맘에 든다. 그 사건이 기억난다. 몇 주 전. 주임이 녀석 곁을 지나가며 귀를 잡아 당겼었다. 귀걸이를 지적했던 것. 그때. 주임의 팔을 붙잡은 녀석의 완강한 팔. 그리고 말없이 노려보는 시선.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눈빛. 그래. 이곳에서는 오그라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 오기. 불꽃과 라인 흐름에 맞설 오기.

 

물론 집에선 오기가 필요 없었다. 집은 공장이 아니었다. 맞서야 할 불꽃도, 공장 주임도, 살의도 없는 곳이었다. 결혼 후 이 년은 그저 유순한 양들의 행렬과 같았다. 단단해질 이유도, 독기를 품을 이유도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꺼낸 아르바이트 이야기.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물론 아내의 씀씀이는 헤프지 않았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월세, 옷, 먹거리, 통신비, 보험료, 의료비, 교통비, 난방비, 수도세, 가스비 등을 합치면 계약직 용접공 월급을 넘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방 크기를 줄이고, 덜 먹고, 보험을 해약하고, 몸이 아파도 참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내는 옷을 살 돈이 없어서 방석집에서 입던 천박한 옷들을 집에서 평상복으로 입었다. 나는 주말이면 싼 값에 장을 보기 위해 자전거로 한 시간 걸리는 곳에서 식재료를 사왔다. 그래도 생활비는 빠듯했다. 경조사라도 한 번 생기면 끼니를 건너뛰고 공과금을 연체해야 했다. 그러나 난 아내를 마트나 편의점 계산대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석집 시절의 아내를 기억하는 남자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집적거릴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야근을 더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때 아내는 본래 아이를 싫어하는 성격이라면서 낙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거짓말이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난 그런 아내를 설득시켜 출산을 하게 했다. 출산 후 보름 정도는 갑자기 생긴 꿀처럼 달콤한 기간이었다. 늘 공단의 무뚝뚝한 얼굴들만 상대해 온 내게 아이의 생글거리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출산 지원금을 다 쓰자 질식할 것 같은 날들이 엄습했다. 야근에 주말 수당을 더해도 양육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분유, 기저귀, 아기 옷, 아기 양말. 불꽃에 맞서서 번 돈을 그 보드라운 것들이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쉴 틈이 없는 매일매일. 난 결국 대출까지 하게 되었다. 점점 우리 생활에 서린 미묘한 기운. 표면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난 알 수 있었다. 그녀 안에 칼날이 조금씩 서기 시작했음을. 그리고 내 안에도 서기 시작한 칼날을.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어디를 겨냥한 것인지도 모를 그런 칼날.

 

신참 쪽으로 갔던 주임이 결국 시비를 건 모양이었다. 조립 파트에서 신참의 고함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쪽을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신참과 주임이 서로 살기등등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주임이 일부러 신참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사실 신참에게는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줬었다. 아침 파업 때까지 잠자코 있으라고. 라인이 정지되면 저들에게 빌미를 준다고. 작업을 방해하려는 놈들의 시도에 넘어가지 말라고. 그런데 지금 신참은 혈기 높은 목소리를 내며 주임에게 대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사이 물량이 쌓이기 시작하는 조립 라인. 자동차 공장의 라인은 직렬이다. 단 한 곳이라도 막히면 전체가 중단. 보다 못해 신참에게 달려가는 인근 동료. “물량이 쌓이잖아!” 그렇게 외치며 신참의 뺨을 후려 갈겼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녀석. 혈기를 다듬고 신경을 각성시킨다. 그러나 계속 씩씩거리는 주임. 그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스피커의 출력이 평소보다 올라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시끄러운 댄스 곡. 야간작업에 어울리지 않는 곡. 창고 쪽에선 자재를 실은 운반 카트들이 밀어닥친다. 그리고 언제 왔는지 공장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덩치들의 모습. 대놓고 압박을 주려는 진부한 수작. 갑자기 늘어난 물량에 작업자들이 살짝 당황한다. 차아악픽! 흔들리는 페인트 분사기. 핑! 어긋나는 볼트들. 파파팍! 용접 파트 여기저기에서 너무 크게 튀어 오르는 불꽃 아치들. 안 된다. 두 시간을 더 버텨야 한다. 약간의 틈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어쩌면 막상 파업이 시작된 후 대놓고 하는 싸움이 쉬울지도 모를 일. 라인의 미세한 움직임을 유지하고 신경 사이의 각을 좁힌 채로 버티는 것이 가장 힘들지도 모를 일. 주임이 여기저기서 고함을 치고 다닌다. 언제 나왔는지 공장장도 보인다. 라인 속도를 늦추지 말라고. 물량이 산더미처럼 있다고. 결국 사고가 일어났다. 조립부에서 누군가 볼트에 맞은 모양이다. 로봇팔과 협업이 잘 안 되면 볼트가 튀는 경우가 있다. 만만치 않은 볼트의 무게. 치명상도 가능했다. 다행히 작업자는 팔만 살짝 다친 듯했다. 그래도 작업 진행은 어려운 상황. 급히 달려와 쏘아붙이는 주임. 라인. 흐름. 라인. 흐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저 두 단어. 옆에 있던 동료가 동시에 두 라인을 맡는다. 배로 불어난 작업량. 위태로운 흐름. 아. 그러나 난 이 용접 작업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친 동료의 빈 자리를 메울 수가 없다. 자. 어서 아침이 오기를. 어서.

가난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결혼 생활.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고가 있었다. 아이에게 일어난 사고였다. 아이가 한 살일 무렵. 생활비 부족으로 압박 받던 아내가 집에서 일을 하겠다며 이상한 부품을 잔뜩 가져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스프링과 파란 색 플라스틱 막대로 이루어진 부품이었다. 아내가 일주일 동안 만 개를 만들어야 겨우 내 하루 야근 수당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난 그것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부품을 삼켰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를 봤다. 기도에 부품이 걸려 새파래진 모습이었다. 울지도 못한 채 양 눈이 충혈 된 모습이었다. 다행히 응급 처치는 무사히 끝났다. 집으로 아이를 데려오면서 난 자문했다. 그 사고가 누구 탓이었을까. 박봉의 무능한 가장 탓일까. 아이 감시에 부주의했던 아내 탓일까. 아니면 신 때문이었을까. 기막힌 인연으로 나와 그녀와 아이를 묶은 신 때문이었을까. 사고가 있던 날 밤. 입을 꼭 다문 채 벽만 바라본 아내.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은 사각무늬 벽지. 그 입. 그 시선. 눈과 입 사이에 응축된 그때까지의 결혼 생활. 적요한 증오가 나타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부품 조립을 관두겠다고 말했다. 제대로 돈을 벌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난 수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친척은 얼굴도 보기 힘든 처지였다. 공짜 보육원 같은 건 찾을 수 없었고 보모는 생각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내는 밤에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야간에만 영업하는 횟집이었다. 낮에는 아내가, 밤에는 내가 아이를 돌보았다. 조금이라도 교대 시간이 어긋나면 안 되는 일. 공장. 아이. 음식점. 아이. 벅찬 바턴 터치로 이루어진 나날들. 아내 얼굴은 하루 두 번. 육아 교대를 할 때만 볼 뿐이었다. 내 사전에서 다시 사라진 아침식사란 용어. 영혼 어딘가가 조금씩 구겨지고 짓이겨지는 소리. 그저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견뎌낼 뿐.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 그 일도 곤욕. 낮에는 용접 불꽃. 밤에는 아이 기저귀. 낮에는 금속 타는 냄새. 밤에는 아이 똥 냄새. 이제 맡기 어려워진 아내의 그 낯선 냄새. 내 메마른 생에 생기를 넣어준 냄새. 동시에 난 아내의 부드러운 리듬감도 더 이상 접하기가 어려워졌다. 아내가 조절해주지 못하게 된 내 생활의 시계. 난 집이 마치 공장의 연속인 듯 행동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접시를 식탁에 놓다가 깨뜨리고, 억지로 옷을 입히다가 아이를 울리고, 급하게 오가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또 하나의 공장이 되어 버린 집. 그저 교대 동료와 비슷한 존재가 되어버린 아내. 점점 회색빛이 되어 간 시간들.

 

몰려드는 물량에 점점 정체되는 작업 라인.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제 소음 수준으로 들려오는 스피커의 댄스 곡. 계속해서 밀려드는 자재 운반 카트. 평소 물량의 거의 두 배이다. 빌미를 잡기 위해 매서워지는 주임의 눈빛. 저들의 치졸함에 짜증이 밀려온다. 결국 흔들거리는 용접봉. 덩달아 출렁거리는 불꽃들.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주임이 곁으로 다가온다. 그의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불꽃들. 그가 말을 건다. “조심해! 맞을 뻔했잖아.” 난 일부러 용접기의 출력을 올렸다. 튀어 오르는 불꽃들. 주임이 황급히 피하며 말했다. “너, 이 자식!” 그러나 감히 불꽃들 사이로 다가올 생각은 못하는 모습. 마음 같아선 주임에게 용접기를 들이대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를 무시하고 작업 속도를 올렸다. 늘어난 물량이 조금씩 소화되어 갔다. 주변 동료들의 흔들거림도 평정되는 분위기였다. 치이이익! 경쾌하게 내뿜는 페인트 분사기 소리. 착착! 오차 없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볼트들. 샤샤! 팍팍! 힘차게 솟구치는 불꽃 아치. 그렇다. 우리에게 이 정도 물량 증가는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일. 장기 근속자가 대부분인 우리들. 사장과 공장장은 바뀌어도 우리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가장 불안정한 우리들. 계약. 잠시 해고. 다시 계약. 다시 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 일관된 불안정성. 그렇게 일해 온 지가 수십 년. 온갖 소음과 빛. 압력과 열. 눈치와 징계를 받으며 버틴 시간. 씨이이익. 씨이이익. 페인트 분사 소리. 도장부 김 씨. 입사 동기. 우리가 나눈 막걸리만 몇 병인가. 착착착. 조립부 박 씨. 일 년 입사 후배. 서로의 부모 장례식에서 밤을 샌 사이. 그리고 또 다른 김 씨. 또 다른 박 씨. 이 씨. 최 씨. 모두가 기억을 공유하는 사이. 그 기억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공장. 바깥세상의 어수선함을 막아주는 곳. 섬과 같은 곳. 성과 같은 곳. 오직 사물들의 무상한 운동만을 허용하는 곳. 동요하는 마음들에 묵직한 근성을 심어주는 곳.

 

아내는 지금까지도 묵묵히 횟집 일을 계속해 왔다. 아이는 이제 중학생. 육아 부담은 없다. 그러나 난 여전히 계약직 용접공. 박하고 불안정한 자리. 간헐적으로 수입이 없던 적도 있다. 그 모든 듬성하고 약한 부위를 메운 건 아내. 우리는 계속해서 이교대제 부부. 휴가가 겹친 경우도 드물었다. 주말부부보다도 더 못한 처지. 아내는 그렇게 일했다. 십 년이 넘게 횟집에서. 회를 서빙하고. 식탁을 치우고. 계산하고. 때로는 잔도 따르면서. 공단 도시의 온갖 거친 인간들을 상대하며. 지방 유지들. 사장들. 공장 노동자들. 심지어 조폭들까지. 방석집 출신인 아내. 아직도 몸매가 살아 있는 아내. 횟집의 저 숱한 잡스러운 놈들. 그들은 아내에게 얼마나 치근덕거렸을까. 얼마나 그녀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졌을까. 마치 장난인 듯. 아님 노골적으로. 아내가 꾹꾹 쌓아온 밤들. 그 무수한 더러운 손들. 결국 아내도 지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 아내와 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 갔다. 맘속 칼날이 실금으로. 실금에서 균열로. 점점 커지는 골로. 처음 실금을 낸 쪽은 아내였다. 나는 아침 출근. 아내는 아침 퇴근. 그런데 삼년 전부터 아내가 늦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삼십 분. 그다음엔 한 시간. 그리고 한 시간 반. 두 시간. 물론 그걸로 아내와 싸우지는 않았다. 싸움을 하는 순간. 대놓고 서로의 감정을 내보이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남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이 밥도 먹지 않는 부부. 이교대제로 돈 벌기에 바쁜 부부. 싸우는 순간 우리 사이의 껍데기 같은 본성이 드러날 것이다. 그 공허함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더 심해진 아내의 늦은 퇴근. 이젠 아예 점심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발그레한 뺨으로, 휘청거리는 다리로, 술과 담배 냄새를 풍기며. 그리고 남자 냄새도 함께.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에게서 남자 냄새가 났다. 횟집 남자들로 인해 날 수는 없는 냄새. 서빙이나 조리만 해선 묻을 수 없는 냄새. 옆에서 술을 좀 따르는 것으로는 날 리가 없는 냄새.

아내 생각에 손끝이 흔들거렸다. 나는 아크 용접 중이었다. 동요하는 손끝 때문에 미세하게 눈 쪽으로 튀어 오르는 불꽃. 이때 멈칫해서 용접을 멈추는 건 금물. 눈이 잠시 안 보여도 용접기와 용접봉을 잡고 있어야 한다. 중단하는 순간 용접 부위는 그대로 굳어버린다. 한 번 식어버린 부위는 결코 그 형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 이 불꽃의 세계에는 엄격한 비가역성이 지배하는 셈.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 세계. 오직 전진만이 가능한 세계. 다행히 용접은 무사히 마무리. 이젠 냉간 압력 용접의 순서. 작은 부품과 얇은 판을 고체 상태에서 접합하는 용접. 말 그대로 차가운 용접. 오직 압력만으로 일을 수행하는 용접. 순수 압력. 불꽃 가득한 용접 세계의 이단 영역. 전용 프레스를 작동시켰다. 팍. 팍. 착. 착. 서늘한 소리가 가라앉듯이 들려온다. 먼저 계기판의 고정 작업부터 시작했다. 착착. 탁탁. 무사히 접합. 이제 까다로운 브레이크와 액셀 부분. 일단 전용 프레스로 목표를 겨냥하기. 그리고 누르기. 확인하기. 이상무. 그리고 또 겨냥. 누르기. 확인. 이상무. 최면에라도 빠질 것 같은 규칙적인 박자들. 서늘한 소리들. 문득 떠오르는 아내의 차가운 얼굴. 그렇다. 아내는 점점 표정이 차가워져 갔다. 남자 냄새가 짙어짐과 동시에, 아침 귀가 시간이 늦어짐과 동시에, 마치 새벽 서리가 얼굴을 덮은 듯 변해 갔다. 착착. 팍팍. 확인. 이상무. 거의 기계적 흐름으로 진행되는 용접. 도취적 박자. 작업 중 너무 도취적이 되면 곤란하다. 도취가 되면 의식이 흐려진다. 의식이 흐려지면 기계적으로 팔만 움직인다.

사고는 바로 그런 순간 발생하는 법. 이것은 기계와의 싸움. 기계 속에서 일하면서 기계적이 되지 않아야 하는 모순적이면서 난해한 싸움. 다시 떠오른 아내의 얼굴. 굳어진 표정. 딱딱한 시선. 그 시선이 품은 건 어쩌면 멸시. 비루한 십오 년 결혼 생활에 대한, 불꽃 속에 갇힌 내 인생에 대한, 방석집과 단칸방과 횟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멸시였을 것이다. 착착. 팍팍. 조금씩 세지는 압력. 빨라지는 속도. 안 된다. 세기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아내의 그 냄새는 분명. 일관된 냄새였다. 잡탕스러운 냄새가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 한 남자에게서 나온 냄새. 착착착. 팍팍팍. 라인의 흐름보다 더 빨라진 내 작업 속도. 좋지 않은 조짐. 속도가 느리면 라인이 막힌다. 그 경우 차라리 막히면 그만이다. 그러나 너무 빠르면 내가 다칠 수도 있다. 문득 자제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치밀어 오른다. 한 남자의 냄새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착착착착. 팍팍팍팍. 주변 동료의 눈길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젠 거의 압착 지점을 보지도 않고 용접을 한다. 늦춰야 한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런데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자꾸 생각나는 아내의 굳은 얼굴. 그 냄새. 아내가 오전 늦게까지 머물다 오는 곳. 그곳이 횟집이 아닌 건 분명한 것. 그렇다고 매번 아침 퇴근 후에 술집에서 술을 마셨을 리도 만무했다. 결국 누군가의 집이었다는 이야기. 언제부터였을까. 아내와 난 잠자리를 가진 지가 언제인지조차 까마득한 상황. 그녀 입장에선 남자가 고팠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은 인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으니 말이다. 점점 견딜 수 없는 아내의 남자 냄새. 그 특유의 성인 남자 냄새.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떤 것이 내 목을 조이는 느낌. 배신감이라는 이름의 덩어리가 가슴을 가득 채우는 느낌. 착착. 팽! 아내 생각에 동요를 해서 그런지 결국 문제가 생겼다. 압착 용접 부위가 어긋났다. 이래선 다음 공정 라인으로 보낼 수가 없다. 다른 쪽에선 계속 밀려드는 물량. 내가 동료들에게 중대한 누를 범하게 되는 것인가.

 

그때. 마침 등장한 구세주. 작업 중지 안내 방송. 멈춰 선 라인.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공장 입구. 사장이 나타난 것. 이젠 사장이라. 녀석들도 어지간히 긴장하는 모양. 공장 앞마당으로 집합하라는 안내 방송.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리. 신참 녀석이 눈을 치켜 뜬 채 걸어 나간다. 아까 사고를 당한 조립 파트 동료도 팔을 움켜 쥔 채 걸어간다. 모두가 굳은 표정. 복제라도 한 듯 똑같은 표정들. 노란 나트륨등 아래로 모여든 작업자들. 아까 얼핏 봤던 덩치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우리를 비웃는 얼굴들. 내 안의 뭔가를 치밀어 오르게 하는 얼굴들. 사장이 말한다. “한밤중 수고가….” 역시나 진부한 서론. “그러나 어떤 불법도…이미 유관 기관에 협조도 요청했으며….” 경찰 개입은 지도부도 예상한 일. 우리 모두 예상한 일. “불미스러운 일은 용납을….” 순간. 옆에 있던 덩치 한 녀석이 머리를 좌우로 꺾어 보인다. 뚝. 뚝. 가소로운 놈. 납작하고 좁은 이마. 산돼지 같은 어깨. 전형적인 깍두기. 아는 것이라곤 형님들 말씀이 전부인 놈. 문득. 저 녀석이 아내를 횟집에서 일하게 했다는 생각. 아내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게 했다는 생각. 모든 게 저 녀석 탓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 지금 용접기만 있다면. 푸른 아크 용접기만 있다면. 저 뱀 같은 눈구덩이를 지져버릴 텐데.

그리고 그 옆의 덩치도. 그 옆도. 그 옆의 옆도. 그래서 사장까지. 그렇다. 사장. 턱에 살이 덕지덕지 붙은, 반짝이는 금시계와 금반지가 멀리서도 보이는, 바로 저 녀석. 용접기든 페인트 분사기든 한 번도 만진 적이 없는 놈. 용접 불꽃이 튀면 겁나게 도망이라도 갈 놈. 자기 지갑 사정에 따라 칼을 휘두르는 놈. 공장을 커다란 지갑 정도로 생각하는 놈. 필요 없는 동전을 내팽개치듯 우리를 쫓아내려는 놈. 바로 저 놈의 몸을 지져야 한다. 섭씨 삼천 도의 산소 에틸렌 용접기로. “현명하게 고민을….” 고민이라. 이러하니, 저러하고, 그러해서, 결국 이러하다. 공장 세계에서 저런 지리멸렬한 고민은 금물. 고민을 하는 순간. 팔은 잘려지고 눈은 불꽃 속에 녹아버릴 것이다.

 

공장 앞마당의 훈시가 끝났다. 작업 재개를 알리는 방송. 아예 공장 안으로 같이 들어오는 깍두기 덩치들. 천박한 인상. 출렁거리는 살집. 무섭기보다는 차라리 코믹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트집이 잡히면 시비를 걸 태세. 주임이 깍두기들 옆에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는 모양새가 보인다. 옆에서 걷던 깍두기 하나가 손가락 관절을 꺾어보였다. 우두둑. 위협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 눈치. 그때. 마침 곁에 있던 신참이 피식 웃었다. “뭐야?”라고 험악하게 묻는 깍두기. 순간 주변 덩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참 녀석이 또 일을 내는 것인가 싶은 찰나. 신참이 계속 웃으며 답했다. “꺾는 소리 한 번 좋으시네.” 깍두기 중 한 명이 신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그게 웃겨?” 심상치 않은 분위기. 주임도 이쪽으로 왔다. 노동자들도 신참 뒤쪽으로 모였다. 웃음을 멈추고 깍두기를 노려보는 신참. 깍두기가 손으로 신참의 어깨를 툭 친다. 밀리지 않으려는 듯 몸에 힘을 주는 신참. 그의 뒤에 서 있는 동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주임. 싸움이 일어나길, 그 틈에 전열이 엉망이 되길, 우리가 무너지길, 저들이 나서길, 큰소리를 치길, 예정된 파업을 무마해 버리길 바라는 눈빛.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나는 깍두기들 사이를 밀치고 지나가면서 소리쳤다. “비켜. 일해야 돼!” 깍두기와 주임의 시선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난 재빨리 용접기를 붙잡고 불꽃을 튀겼다. 파파파파팍! 놀라서 물러서는 녀석들. 그때서야 각자의 작업대로 돌아가는 동료들과 신참.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깍두기들. 시비 걸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금속 부품과 불꽃만이 번뜩거릴 뿐. 어쩔 수 없이 녀석들도 흩어진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이번에는 차체 바닥. 차곡차곡 겹으로 된 강판을 겹쳐서 용접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폭발 용접. 한 면에 화학 물질을 바르고, 다음에 그 면을 폭발시킨 뒤, 다른 면에서는 압착이 진행되는 용접. 용접공 사이에서는 일명 밀어내기로 불린다. 차아아아악. 준비 과정부터 심상치 않은 소리. 분사기로 골고루 발라지는 화학 물질. 치이익. 얇게 발라진 은빛 입자들. 나도 잘 모르는 정식 명칭. 그저 우리는 은빛 입자라고만 부른다. 찌이이익. 불꽃 생성기 앞에 놓인 강판. 그 밑에는 차체 바닥이 대기 중. 준비 완료. 삼 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안전. 멋도 모르고 서성이는 깍두기 덩치 하나. “조심해 인마!” 허겁지겁 자리를 피하는 녀석.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머저리 같은 놈. 찌이익. 전류가 흐른다. 팡! 스파크가 일었다. 팍! 그리고 폭발. 착! 압착. 오케이. 성공. 이상무. 폭발 용접은 나름의 맛이 있다. 용접공이 아니면 모를 특유의 맛. 모든 어지러운 상념을 가루로 만들어 납작하게 짓이기는 느낌.

 

아, 그러나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상념 하나. 아내 생각. 그녀는 삼일 전엔 아예 외박까지 하고 왔다. 전날 무엇을 했는지 빤하게 보여주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묘하게 흐트러진 옷매무새. 누군가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은 채 횟집 비린내를 털어 버린 흔적. 나에 대한 한없는 경멸의 표정. 언제라도 그녀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다시 고개를 드는 내 안의 배신감. 용접봉을 잡은 팔이 떨리고 눈앞의 초점이 흐려진다. 잠시 멍해지는 기분. 아차, 싶어서 다시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보이는 건 무수한 불꽃들. 한없이 뜨겁게 타오르다가 차갑게 식은 채로 바닥에 떨어지는 불꽃. 온도와 빛의 변화. 솟구침과 소멸함. 그것이 바로 불꽃의 생. 허술한 감정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 주변 노동자들의 모습도 차분하다. 어떻게든 빈틈을 노리는 깍두기들과 주임을 무시한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파업을 불과 몇 십 분 앞둔 사람들 치곤 지나칠 정도로 가라앉은 모습. 그 순간 깨닫게 되는 사실 하나. 공장 생활이 우리들의 피에 부여한 것은 말랑거리고 어설픈 감성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근육과 신경 곳곳에는 기계들만큼이나 묵직하고 단단한 것들이 새겨져 있다. 오직 무거운 것만을 승자로 인정하는 금속 같은 감수성. 다시 생각나는 아내. 그녀가 보냈을 시간들. 방석집 창부, 가난한 용접공의 아내, 횟집 허드레꾼으로 살아온 십오 년. 삼키고 또 삼키며 몇 번이나 구겨 왔을 나날들. 어떤 격한 배신감도, 요란한 비난도 그 세월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래. 이건 배신과 불륜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것이 더 무거우냐의 문제다. 어떤 것이 더 단단하냐의 문제다. 난 무겁고 단단한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장 노동자의 감성. 저들이 자본을 축적하는 동안 우리가 다지고 벼려 온 것.

 

차체 용접의 마무리는 산소 아세틸렌 용접. 이번 경우는 특히 출력이 높아야 한다. 차체 바닥 전체의 최후 공정. 가장 온도가 높은 용접. 정확성보단 힘. 신경보단 근육이 필요한 용접. 치리리리리.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용접기 끝 파란 아세틸렌 불꽃. 차차차착착착. 솨샤아아. 핏빛 불꽃 아치가 천장에 닿을 듯 솟구친다. 작업복도 뚫을 것 같은 맹렬한 기세. 출력을 올려라. 온도를 높여라. 섭씨 삼천 도. 샤샤아아아. 이젠 노란 불꽃. 마치 폭죽이 터지 듯 차체 주변으로 퍼지는 모양새. 최대한 출력을 올려라. 온도도 최대로. 섭씨 육천 도. 태양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샤아아아아아아아아. 화산처럼 치솟는 불꽃. 마치 공장을 잡아먹을 기세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불꽃 괴물. 좋다. 올려라. 펼쳐라. 더 높이. 더 강하게. 작업복과 차광안경으로 쇄도하는 수천 개의 불꽃 입자들. 이미 저 멀리 피해 있는 깍두기 덩치들. 샤샤샤아아아아아! 팍파아아아아악! 폭발하는 불꽃. 남은 시간은 일 분. 이 순간 생각나는 아내. 메마른 밤들 속에서 굳어진 눈빛. 화석같이 파리한 얼굴. 파업 시작 삼십 초 전. 노동자들의 작업 소리가 갑자기 선연해진다. 그것은 더 이상 기계와 금속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이제까지 감내하며 흘려보낸 모든 것이 역류하는 소리다. 십 초. 이미 지도부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을 것이다. 오, 사, 삼, 이, 일. 드디어. 공장 앞마당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소리. 둥둥. 꽹꽹. 북과 꽹과리. 파업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들. 용접을 멈췄다. 불꽃들이 사라진 공장. 무서운 기세로 쇄도하는 아침 햇살. 그래. 밤을 버텨냈으니 이젠 우리 차례다.

 

■ 소설 당선소감 / 오 주 훈

 

수상 덕분에 글쓰기 욕망 생겨

 

저는 반복을 사랑합니다.

좋아하는 산책로, 음악, 영화, 음식이 있으면 집요하게 똑같은 곳을 걷고, 같은 것을 듣고, 보고, 먹습니다.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죄와 벌’에서 소냐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라스콜리니코프를 초대하기 위해 그의 방을 방문한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 대목을 마치 밀리미터 간격으로 움직이는 카메라처럼 관점을 이동해 읽으며 머릿속에서 반복 재현하곤 합니다.

그리고 음미합니다. 소냐로 하여금 말을 더듬게 한 무엇, 라스콜리니코프로 하여금 허둥지둥하게 만든 무엇, 그 장면, 그 인물들에 빛을 부여한 어떤 것을 음미하고 또 음미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곤 합니다. ‘아, 내가 지금 영원한 어떤 것을 접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습작을 할 때도 가장 초점을 맞추었던 것, 아니 어쩌면 유일하게 집중했던 부분은 바로 그 영원한 어떤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 번도 제대로 그것을 구현해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 쓰고 보니 센티멘탈리즘과 클리셰 범벅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괴로웠던 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좁은 방에 흩어진 책들과 원고 더미들의 초라한 풍경은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 읽기와 쓰기를 멈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읽지 않으면 썼고, 쓰지 않으면 읽었으며, 읽거나 쓰지 않으면, 읽을 생각, 쓸 생각을 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문장들의 성(城)에 체류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만 성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찰나,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금 더 머물 이유가 생겼습니다.

동양일보사의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1977년 부산 출생

● 고려대 졸업

 

-소설 부문 심사평

 

압축된 문장 속에 긴장감 넘치는 작품

 

응모작 43편. 1차로 27편을 덜어낸 후, 다시 10편을 덜어냈다. 남은 6편을 가지고, 소재와 주제의 독창성이나 문장이 기성을 능가할만한 가능성이 있는가를 고려, 당선작을 선정했다.

‘반정과 야심(신승민:서울)’의 작자는 기성작가에 못지않는 능숙한 화술(話術)의 소유자로 구성이나 문장에 별 험이 없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기시감(旣視感) 배제가 어려운, 역사물인 관계로 사건전개나 주제의 독창성 보장이 어렵다는 게 큰 아쉬움이었다.

‘무리를 떠난 사자(김호준:양산)’는 불운극복을 위해 외길을 걸어 온 남자의 고단한 삶을 압축, 무난하게 그렸다. 문장도 원만하다.

망가진 육체와 자식들의 배척으로 피폐한 노후를 맞았으나, 영혼의 위엄을 위해 자살을 택하는 주인물의 결심에 공감은 가지만, 이혼을 청구한 아내의 갑작스런 변심은 개연성이 희박하다.

‘다만 한 마리의 나비가(신동희:서울)’는 인간의 불안 심리를 악용하는 무속(巫俗)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고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심약한 사람들이 속게 되는 과정을 차분히 전개한 후, 말미에서야 경각성 주제를 암시할 만큼 침착하다. 험이라면 소재나 주제가 모두 흔한 것이어서, 신선감이 없고 결말예측이 훤히 보인다는 점이다.

‘이사(노은희:남양주)’는 고독사한 사람들의 사후를 수습하는 유품관리사 얘기다.

장기간 방치로 참혹해진 주검을 대하는 화자(話者)의 숙연한 마음과 거기 오버랩 되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온기(溫氣)없는 사회의 단면을 차분히 그렸다. 특이한 소재라 초반의 흥미가 높았지만, 평탄한 구성으로 절정이나 반전의 묘미가 약한 느낌이다.

‘폭설(우상애:청주)’은 험난한 설산(雪山)등반과정과, 남편마음을 빼앗아 간 여인에 대한 화자의 심리갈등을 치밀하게 묘사했다.

등산상식과 경험,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思惟), 그리고 탁월한 문장력과 구성력을 갖춘 작품이다. 말미에 드러낸 화자의 이중심리, 평온한 가정에 폭설 같은 재난을 안긴 여인에 대한 감정은, 이기와 이타,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의 보편상이요 갈등의 근원이며, 작품의 주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마지막까지 잡고 고심하다가 아깝게 내려놓은 이유는, 당선작에 비해 주제 부각이 다소 미약 하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불꽃(오주훈:서울)’은 파업직전, 자동차조립라인에 흐르는 긴박감을 통해, 산업화시대의 이면에 잠복된, 내일이 없는 계약직근로자들의 분노를 현장감 있게 그렸다. 독자를 용접기의 불꽃처럼 강렬한 긴장 속으로 휘몰아가는 작품이다. 종결어미를 과감히 생략한 문장은, 마감처리가 덜된 용접면처럼 거칠고 요약문 같은 느낌이다.

소재특성상 긴박감조성을 위한 의도적 시도로 보이나, 문장의 완성도를 의심케 할 여지가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작품 줄거리나 분위기의 일관성을 흩뜨리지 않고 주제도 명확하므로,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어 당선작으로 올렸다. 축하와 함께 정진을 빈다. 아쉽게 기회를 놓친 응모자들도 문학적 시각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수련의 끈을 놓지 않기 바란다.

■ 심사위원 : 안수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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