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소설가

(동양일보)참, 세상 요지경이 되다니!

 요지경속이 아니고 그냥 요지경이야?
 내 말은, 세상이 요 지경이 되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이 말이야.
 난 또 뭐라고. 그도 그렇지만 ‘세상 참 요지경속’이기도 해.
 요지경속?
 요지경이라는 게, 상자 앞면에 확대경을 달고 그 안에 여러 가지 그림을 넣어 들여다보게 만든 장치 아닌가. 그래서 요지경속이란, 속 내용이 알쏭달쏭하고 복잡해서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고. 그러니 요즘 세상이 꼭 이렇단 말일세.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 말이나 내 말이나 같은 말이구먼. 
 보게나, 저, 저, 이 쪽 저 쪽 보이는 논배미들을, 건성건성 벤 자리가 역력하지. 저게 영농하는 천식이가 맡아 부치는 것들이라구. 그 알뜰한 천식이가 왜 저렇게 처삼춘 벌초하듯 했겠나. 뭐 쌀농사 져서 재미가 있어야제.
 정미소 가격으루 쌀 한 가마니에 십삼만 멫 천 원 했다지 아마, 그게 가격여 뭐여. 그 가격이라면 20년 전 가격보담두 웨래 멫 천 원 싼 가격이라니 그 동안 딴 물가들은 멫 배 멫 십 배나 올랐는데 말여. 그러니 재미가 있겄어. 울화통이 터져서 홀랑 엎어놓지 않길 다행이지.
 왜 저 남녘땅 어딘 싹 갈어엎구 트랙터루 시위까지 했대잖여. 근 그렇구 천식이 그 사람 말여, 처음 영농업 시작할 때는 시골 젊은이들 대처로들 많이 나가서 시골의 논밭이 노는 게 많았잖여. 그래서 땅임자 노인네들이 전과는 반대루 부치는 쪽이 많이 먹기루 하구 남을 주었잖아. 그때 이거 괜찮겠다 싶어서 농협에서 대출받아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구 장비 일체를 갖추고 뛰어들었잖여. 근데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루 되나. 처음 멫 해는 괜찮었지. 하지만 쌀 소비가 전과 같질 않으니 차츰차츰 내리막길이 되더니 요즘 들어서는 요 지경이 되지 않았는가!
 글쎄 말일세, 이렇게 복잡해서 뭐가 좋은 거고 그른 건가가 도무지 알쏭달쏭하니 세상 요지경속 아닌가 말여. 앗 참, 근데 말여 시방 우리가 이렇게 길거리에서 말장단만 하고 있을 게 아닐세. 마을회관엘 빨리 가야제. 우리가 제일 늦은 것 같으이!

 시방 저 두 사람이 와서 다 모였으니 이장, 인제 한마디 해야 되잖어?
 그럴까요. 그럼 한마디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새해 초하루고 마침 일요일이라 두엇 집 빼놓구는 다 모였고 외지 대처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도 여럿 왔군요. 새해초하루엔 매년 하는 연례행사지만 올해도 마을 부녀회에서 떡국을 끓여 대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따 떡국 나올 때까지 대화들 나누시지요. 이상입니다.  
 근데 말여 이장, 오늘에야 말하지만 사실 떡국은 설에 먹는 게 정상 아녀?
 내도 이 사람 말과 같은 생각이네. 전에 신정이라 해서 양력 새해초하루를 설날로 정해서 쇘을 적에는 마땅히 이날 떡국을 먹었지만은 이제 다시 음력 새해초하루를 정식 설로 되돌려 놓았으니까 마땅히 설날에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워뗘?
 이참에 내도 곁들이겄네, 떡국은 요샌 설날 아니라도 일부러 사먹기도 하니께 아무 때나 먹어도 좋겠지.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의 생각이 어디 다 그런가. 떡국은 으레 설날 먹는 것이고 또 떡국을 먹어야 또 한 살 먹는 거라고 여기는데 공연히 미리 한 달여 이상이나 앞당겨서 미리 한 살을 더 얹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지 않아도 쓸데없이 자꾸만 나이만 먹는 것 같아 서러운데 말이지. 다른 음식으로 바꾸면 안 되겄어.  워뗘 이장 내 말이?
 다 맞는 말씀들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새해’ 하면 양력 일월일일을 말하는 거라 설과 같이 한 해의 첫 출발하는 날이구, 좋으나 싫으나 새해 초하루가 되면 한 살씩은 먹는 거구, 이렇게 이날을 설과 같이 중한 날로 여기구 이왕이면 그 설에나 먹는 떡국으로 동네 분들을 잊지 않고 대접하는 부녀회원들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구 말입니다. 
 지금 이장 말을 들어보니께 양쪽의 말들이 다 일리가 있네. 그러니 인제 그런 말들은 그만두고 딴 얘기로 넘어가세. 아까부터 보니께 저쪽에 웅크리고 기신 석골양반이 밭은기침을 연방 콜록콜록하고 기시던디 감기 걸리셨나보지유. 그리유?
 그려 그러신가벼. 고개를 끄덕이시는 거 보니께. 독감예방주사는 보건소에서 맞으셨지유. 요새 독감이 우리 도 전체적으루 대단히 기승을 부린대유. 조심하셔야 돼유.
 요새 독감은 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걸린다는구먼. 예방주사약이 동이 났댜. 그래서 더 야단들인가벼.
 그래서 미리 날짜를 땡겨서 방학을 한 학교가 많다는디. 독감이라는 게 전염성이 있는 거여서 사람 많이 모여 있는 데는 그만큼 더 빨리 많이 걸려서 그런가벼.
 텔레비전 보니께 그게 올 이월까지 갈 공산이 클 꺼라는디. 것두 보통 큰 일이 아녀. 
 큰 일 하니까 말이지만 요즘 돌아가는 우리나라 시국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을라구. 안 그런가 여기 대처에서 온 젊은이들, 도회지 요새 대단하지. 촛불집회다 뭐다 해서?
 예, 그거요. 대단하지요. 저도 한 번 참가했는데 온 시민이 다 나온 것 같아요. 애들 손잡고 나온 사람도 있고, 혼자 나온 사람, 부부가 나온 사람, 학생, 직장인, 애들, 어른 뭐 하여튼 굉장했어요.
 텔레비루 보니께 대단하긴 대단하던디. 그게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이라며. 그게 뭐여?
 그렇지요. 국정을 농단했다고 해서, 즉, 나라의 정치에 관한 일이나 행정에 관한 일을 대통령이 직접 보거나 이를 잘 아는 전문인의 조언을 받아서 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친한 일반인의 조언을 받아 행했고, 또 이 일반인은 이를 빌미로 해서 부정하게 개인적인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했다는 거지요. 이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대통령이 탄핵이라는 것을 당하고 그 일반인이 붙들려 있구먼.  
 나라와 사회의 안팎사정이 이렇게 어지러운 판에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 판은 왜 그리 또 시끄러워. 내 정당이 옳다. 네 정당은 그르다. 에이 마음 안 맞아 새 정당 만들어 나가야겠다. 그렇다면 우리 정당과 합칠 용의가 있다. 는 등 옥신각신 티격태격 야단들이니 말여.
 여보게 인제 그 얘긴 고만 하세. 그 사람들 자기들 밥그릇 챙기느라 바쁜 사람들이야. 당장 우리 발등에 불똥이 떨어져 있는 판 아닌가. 그 걱정이나 하세.
 조류독감 얘기구먼. 그러고 보니 찬식 씨가 안 보이네. 오늘 안 나왔구먼. 그 찬식 씨 네도 끝내는 오리장을 닫았잖아. 작년 그 와중에도 면했고 올해도 그냥 넘어가는가보다 하고 버티더니 그예 걸려가지구 출하 한 일주일 앞두고 만여 마리나 살처분했다는 게야. 
 그러니 그맴이 어떠하겠나. 근데 말여 우리 마을엔 찬식 씨네 한 집이지만 저 산 아래 웃골동네는 한 삼십여 호 동네 전체가 오리농장이잖여. 한 사년 전에 오리고기가 한창 인기가 있어 소비가 잘 될 때 집집이 수박하우스 오이하우수 그만두고 농협대출 받아서 오리축사로 바꿨잖여. 그래서 그게 일이 년은 괜찮았다 하고 작년까지두 아무 말 없더니 웬걸 이번엔 그 에이아이에 온통 다 걸려 싹 살처분했대요 글쎄. 
 근데 그 살처분할 때 말여 한두 마리두 아니구 멫 천 마리 멫 만 마리인데 또 죽은 것두  아니구 생떼같이 산 것을 산채로 묻으니 그 주인은 말할 것두 없지만 그걸 직접 맡아 살처분하는 공무원들 맘은 어떻겠어?
 오죽해야 어질어질하구 정신분열증까지 걸린대잖여. 
 그렇댜. 근데 그게 이번엔 오리농장뿐 아니라 양계장도 무사하질 않잖아. 웨래 더 극성이라는디.
 그려 글쎄, 우리 초등학교동창 윤식이 있잖여 걔는 오리농장하다 멫 년 전에 닭이 괜찮을 것 같아서 양계장으루 바꿨잖여. 동네서 뚝 떨어져 있는 야산 밀어서 아주 널찍하고 크게 축사 져가지구. 알 낳는 산란계가 한 육만 수는 된다구 했지 아마. 얼마나 재미를 보았는지 닭으루 바꾸기를 잘했다구 흐뭇해 하더라니까. 근데 그게 이번에 싹 쓸었다는 거 아녀.
 그건 산란계지, 인제 육계까지 덮치고 있는 모양여. 그리구 인제 어디만 빼놓구 전국적으루 퍼졌대지 아마. 하필이면 올해가 닭핸데 닭들이 왜 아직까지두 수난을 겪는지 모르겄네.
  저기유, 저기유, 잠깐만유!
 경로방 아줌니 아녀. 왜 저러셔, 뭐가 저리 급하셔?
  이장님한테 오늘 말씀드려야 겠어유. 이번 연말에는 우째 아무 데서도 우리 경로당으루 아무 것두 안 갖다주네유. 작년까지만 해두 여러 곳에서 라면이다 쌀이다 과일이다 뭐다, 뭐다 들어오더니 올해는 쌀 이십키로짜리 하나밖에 없는데유. 이장님이 한번 알어봐유.
 알었어요, 알었어요, 나라가 어수선하고 경기가 없어서들 그럴 거에요. 
 이상해서 한번 해본 소리유. 그건 그렇구 곧 인제 떡국 나올팅께 상들이나 펴놓구 있어유!
 
 어르신, 인제 떡국 먹으면 다들 갈 텐데 그 전에 어르신이 한 말씀하시지요! 
 새해에 모두가 어두운 소리들뿐이구먼. 하지만 말여, 올해가 정유년 닭의 해 아닌가. 육십갑자에서 아랫부분을 이루는 열두 개 지지의 동물 중에 닭만 날개를 가지고 있네. 용에도 날개가 있어 승천을 한다지만 그건 가상의 동물이지. 물론 닭은 날개는 있지만 잘 날질 못하네. 하지만 유사시엔, 즉 무슨 다급한 일이 생길 시엔 푸드드득 하고 높이 멀리 날아가지 않는가. 또 한 가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 아무리 천재지변을 당하는 다급하고 험한 일이 있어도 우리에겐 이겨낼 힘이 있고  출발과 희망이 있다는 말일세. 정유년 닭의 해가 주는 가르침이 이다지도 크구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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