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규 마코토 원광대 연구교수

 

시안 외국어대학에서 일했을 무렵, 대학 외사처(外事處)에서 외국인 교직원들을 위해 간쑤 성 톈수이 관광 여행을 기획한 바 있었다. 목적지는 하나는 맥적산으로, 여기는 후진부터 청에 이르는 무려 1600년간 계속 만들어진 수많은 불상과 마애불로 유명한 중국 4대 석굴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곳보다 톈수이 시내에 있는 복희묘(伏羲廟)도 관광한다고 듣고 즉시 참가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복희에 대해 개인적인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대 철학과 대학원에 유학했을 때, 19세기 조선에서 ‘기학(氣學)’을 제창한 사상가 최한기의 기학을 전공했다. 그의 글에 ‘오호라! 태호(太昊)로부터 우러러 하늘을 관찰하고 내려다 봐서는 땅을 살피고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는 것은 바로 우주를 꿰뚫어 보고 통달하기 위함이요 ‘추측(推測)’의 근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박사 논문에서 이 구절에 주목했다.

이것은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의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에 왕 노릇 했을 때 우러러 하늘의 모양(象)을 관찰하고 내려다 땅의 도리(法)를 관찰하고 새와 짐승의 무늬와 토지의 산물(宜)을 관찰하며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했으니……’를 본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권위를 빌리거나 유학자의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계사하전을 계속 읽어보면 포희(복희)는 팔괘를 지은 후 스스로 만든 괘의 모양을 보면서 새끼줄을 엮어서 그물망을 발명하고 백성들에게 사냥과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포희가 죽은 후 잇따라 나타난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堯), 순(舜), 우(禹)와 같은 성인들도 하나같이 괘상(卦象)을 보면서 여러 가지 문물제도를 발명하고 백성의 생활을 이롭고 편리하게 해주었다. 또 윤리도덕을 가르치면서 인간사회에 질서를 세웠다. 이로 인해 백성들에게 추대를 받으면서 임금으로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그러한 이를 문화영웅(culture hero)이라고 일컫는다.

그 후 은나라 말기에 문왕(文王)·주공(周公)이 역(易)의 효사(爻辭)를 짓고, 주나라 때에 이르러 공자(孔子)가 십익(十翼)이라는 불리는 주석을 달아서 역경(易經)의 텍스트가 완성되었다고 믿어져 왔다. 이것을 ‘삼성일규(三聖一揆)’ 즉 세 시대의 성인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은 일이라고 한다.

이것이 역경의 귀중함을 말한 이야기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달리 보면 복희 뒤의 성인들은 그가 남긴 ‘2차 자료’를 참고하고 주석을 달은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더 후대의 학자들은 성인들이 남긴 ‘3차 자료’로서의 역경 텍스트를 배우고 해석하는 구조가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천지만물을 직접 관찰할 권리는 논리구조상 최초의 성인인 복희씨가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삼성일규’ 이야기에서 세 가지 이데올로기가 도출된다. 첫째는 옛 성인이 엮은 텍스트를 절대시하는 문헌 중심주의이다. 둘째는 성인이 살던 옛 시대를 황금시대로 보는 상고주의(尙古主義)이다. 그리고 셋째는 위대한 성인이 창조한 문명과 문물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그 밖의 문화와 문명을 하찮게 여기는 중화주의(中華主義) 및 화이사상(華夷思想)이다. 이 삼위일체의 이데올로기가 몇 천 년 동안 한자문화를 수용한 모든 나라와 민족을 지배해 온 것이다.

그러나 최한기는 이와 같은 구조를 뿌리째 해체해 버렸다.

그는 역경의 ‘시작팔괘(始作八卦)’를 ‘추측지종전(推測之宗詮)’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복희에게 독점되었던 천지만물을 직접 관찰할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해방시켰다. 그가 말하는 ‘추측(推測)’은 오늘날의 의미와 달리 직관적, 직각적인 인식을 가리키는 ‘추(推)’와 반성적, 분석적 판단을 뜻하는 ‘측(測)’의 합성어이다. 바로 이 ‘추측’은 이목구비를 갖춘 인간이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므로, 적어도 인식할 권리에 있어서는 개개인이 성인과 같아진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박사논문을 썼으니까 이번의 복희묘 방문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사상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문헌지상주의, 상고주의 및 중화사상의 원점을 방문하는 여행이 된 셈이다. 복희묘를 탐방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퇴색된 후의 중국의 역사인식과 중화민족주의 속에서 성인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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