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시는 마침표 없는 육체다. 바디라인이 매혹적인 의문부호고 치명적인 물음이다. 감각의 동굴로 들어가는 절벽이고 절벽에서의 두려운 번지점프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고, 교감이고, 음악이고, 죽음을 정각(正覺)하는 거울이다. 모든 자명한 것들의 진위(眞僞), 사물들의 존재와 미(美)에 되물음을 던져 현실을 거꾸로 낳는 거울이다. (중략…) 시의 여백은 광대한 시간이고, 우주고, 밤의 대기처럼 눈동자가 검고 차다. 시는 존재의 지평이고, 사유의 숲이고, 사유를 배반하는 망령든 달이다. 창백한 공중이고 고요가 들끓는 지층이다.(‘시’ 중에서)”

과연 무엇이 시일까. 시인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깊은 고독에 빠져 고독한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청주에서 태어나 동시와 동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활약을 하고 있는 함기석(51·사진) 시인이 최근 시산문집 ‘고독한 대화’를 발간했다.

함 시인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한다. 시를 향한 그의 단상을 책으로 만난다.

이 책의 장르는 시산문. 시산문(詩散文)이라는 말처럼 책에는 시이면서 산문이고, 산문이면서 시인 글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는 시로 읽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산문으로 읽어낼 이러한 형식의 기저에는 언제나 ‘시’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시론(詩論)’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이 시와 산문 사이에 있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모두 20부로 구성된 책에는 20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자못 비장한 은유에 물든 모든 글들은 저마다 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글들은 ‘난해시’나 ‘현대시’처럼 오늘한 한국 시단에 대한 번뜩이는 시각을 보여주거나 시가 무엇이고, 시인은 누구인지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유와 반성적 통찰을 담아낸다.

책에는 산문의 형식을 빌려 시를 이야기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수학전공자라는 그의 이력을 짐작하게 하는 부제 ‘제로(0), 무한(∞), 그리고 눈사람’이나 3부 ‘제로(zero) 속의 무한(無限), 무한 속의 제로’의 ‘0(零)과 ∞(無限)’ ‘×(곱셈)과 ÷(나눗셈)’, ‘(x, y)=0, x2+1=0’ 등의 작품, 9부 ‘추상 세계를 응시하는 두 개의 눈·해석학자의 눈과 위상수학자의 눈’에 실려 있는 글처럼 수학 공부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들도 있다.

책의 말미에는 희곡도 있다. 유령과 대화하는 2인극 형식의 이 희곡에서 함 시인은 실제와 재현, 인간과 언어의 비극적 간극을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시이고, 과연 누가 시인인지 답을 찾고 있다.

함 시인은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동시집 ‘숫자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동화집 ‘상상력학교’, ‘코도둑 비밀탐정대’, ‘야호 수학이 좋아졌다’, ‘황금비 수학동화’ 등의 저서가 있다. 박인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난다, 444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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