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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포럼 - ‘조명희 전집을 읽고’ (1)
지상 포럼 - ‘조명희 전집을 읽고’ (1)
  • 동양일보
  • 승인 2017.02.2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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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는 ‘그리운’ 사람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동양포럼 운영위원회(운영위원장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주간 김태창 박사)는 오는 8월 15일을 즈음해 ‘2017 광복절 기념 국제포럼 - 한·중·일 문학 철학 대화 모임’을 개최한다. ‘조명희와 나쓰메 소세키, 노신을 함께 기린다(가제)’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의 조명희와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중국의 노신 작가를 여러 각도에서 비교하고 문학적 성과를 조명할 예정이다. 포럼 개최에 앞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면을 통해 예비 지상 포럼을 개최한다. 그 첫 번째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 ‘조명희 전집’을 읽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기술한 ‘조명희 전집을 읽고’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생명하는 넋…조명희를 읽다

오구라 키조 교토대 교수

 

조명희라는 넋과 만나고 나서 맨 먼저 든 생각은 “일본인이야말로 이 넋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낙동강>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지만,

오구라 키조 교토대 교수

조명희라는 이름은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식민지시대의 한국인 문학자로는 윤동주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고, 그 다음으로는 이상과 이광수일 것이다. 물론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한용운이나 김동인, 김사량, 김동리, 김소월도 알고 있지만, 아쉽게도 한국문학 애호가는 일본에서는 완전히 소수파에 속한다.

이번에 나는 <포석 조명희 전집>(동양일보출판국, 1995)을 읽고 생명의 외침을 들었다. 한류를 통해 한국문화와 만나고, 보다 깊게 한국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본인은 다음에는 이 조명희의 외침과 만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외침은 처음에는 멀리 1920년대의 조선에서 들려 왔지만, 마침내 내 귀 속에서 크게 증폭돼 결국에는 그의 소리가 나의 전신을 지배했다. 그의 소설에 그려진 것은 굶주림이고, 공간의 이동이고, 사람들의 마찰과 대립이고, 인간의 왜소함과 거대함이고, 지배와 피지배의 절망적 관계이다.

인간이 굶주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새 거지>에 그려진 모자(母子)나, <농촌사람들>의 빈농 일가는 절대적인 빈곤의 비참함을 맛보고 있다. 절대적으로 생활력이 없는 모자는 간신히 자살에서 벗어나지만 거지로 전락한다. 논에 대는 물을 둘러싼 싸움에서 부자에게 패배한 남자는 생활력을 잃고 절망 끝에 죽게 되고, 남겨진 노모와 어린아이는 간도로 쫓겨 간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등장인물들은 그것을 모른다. 전락할 때의 가속도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단숨에 바닥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 그려진 것은 절대적 빈곤만은 아니다. 즉 사회의 최하층에서 살기 위한 수단을 모두 빼앗긴 인간들만은 아니다. <김영일의 사>의 김영일은 일본 유학생이고, <땅속으로>의 ‘나’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지식인이며, <저기압>의 ‘나’도 신문기자다. 그들은 사지가 멀쩡하고 학문도 있다. 그래도 굶주린다. 극도로 굶주리고 있다. 그것은 왜인가?

조명희는 천재적인 후각과 냉정한 관찰력으로 “빈곤에는 다양성이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다양한 빈곤의 형태가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상일을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빈곤의 원인을 단지 하나로 고정시키려고 한다. ‘일제’의 탓이라든가 ‘자본주의’ 탓이라고 환원주의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일견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해답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격이 급한 사람은 그런 환원주의에 빠져 무언가를 외치거나 ‘타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나 자본주의를 설령 ‘타도’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유토피아는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새로운 빈곤이 생겨난다. 빈곤의 생명력은 끝도 없이 강하다. 제거하고 제거해도 빈곤은 새로운 생명력을 어딘가에서 얻고, 다시 만연한다.

물론 식민지시대의 빈곤의 원인을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거대한 모순과 깊은 관계가 있다. 가혹한 일본제국주의와 원초적이고 거친 자본주의가 커다란 원인이지만 그 밖에도 농촌기술의 부족, 계급차별, 가부장제, 인간의 주체성의 부족 등이 복잡하게 얽혀져서 조선의 빈곤은 재생산되었다. 일본인으로서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책임을 가장 크게 느끼지만, 역사를 상세하게 보면 모든 것을 일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고정지의 환원주의이다.

그래서 조명희는 청년운동, 농민운동, 평형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이라는 많은 운동을 나열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박성운은 열렬한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자는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전도시키려는 사명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사회주의가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생명인간주의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백정출신의 로사에 대해서 “당신은 최하층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탄 같아야 합니다. 가정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같은 여성에 대하여, 남성에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여야 합니다”, “당신은 또 당신 자신에 대하여서도 반항하여야 되오”라고 박성운이 말하는 것은, 그의 생명인간주의야말로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그의 육체적 생명은 경찰의 고문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고, 낙동강 한 구석에 사라져 가지만, 그의 생명인간주의의 넋, 생명하는 넋은 로사에게 이어지고, 생명하는 모든 인간에게 계승된다. 생명은 이미 명사가 아니라 모든 억압에 항거하는 강력한 동사인 것이다.

<낙동강>의 박성운에 앞서 조명희는 김영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의 처녀작인 희곡 <김영일의 사>의 주인공이다.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는 일곱 명의 조선인학생, 그 중에서 전석원은 부잣집 자식이다. 수십 엔이나 되는 돈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는 신진회라는 혁신적인 이념단체의 중심인물인데 실은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같은 ‘주의’는 일체 믿지 않고 ‘현실’만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의’를 말하는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팔기 위한 ‘매명행위’(賣名行爲)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전석원에 대해서 오해송은 ‘참된 사람’, ‘참된 주의자’를 설파한다. 반면에 최수일은 신진회의 창설자임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구속 끝에 지금은 술과 여자만을 생각하는 남자가 되어 요시와라(유곽)를 다니고 있다. 김영일은 극빈이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공부를 하다가 결국 몸이 망가지고 말았다. 그 때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날아 오는데, 그에게는 이미 조선에 돌아갈 차비도 아무 것도 없다. 전석원에게 기차표를 살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는 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박대연이 분노하여 전석원을 때린다.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자 전석원이 경찰을 불렀는데 신진회의 삐라를 발견하고 김영일이 연행된다. 그리고 며칠 뒤 석방된 김영일은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죽고 만다.

이 연극에서 김영일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정의감이 강한 박대연은 전석원을 사정없이 때린다. 그러나 김영일은 죽는 순간에 “우리가 전석원이에게도 잘못 하였어. 그렇게 난폭하게 할 것이 없는 것을”이라고 한다. 절망적인 빈곤에서 죽음이라는 끝 모를 늪에 빠지려고 하는 김영일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생명이란 긍정이라는 사상일 것이다. 박대연은 단순한 이항대립의 사상으로 전석원을 타도한다. 그러나 김영일은 전석원을 원망하지 말라고 한다. 생명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이라는 사상에, 김영일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도달한 것은 아닐까?

<낙동강>의 박성운은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반항하고 그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김영일의 사>의 김영일은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긍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지닌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그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생명한다”는 실천을 통해서 실현시킨 것이다. 그들은 “생명은 힘이다”(<생명의 고갈>)는 조명희의 철학을 결정(結晶)시킨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포석 조명희의 시와 수필을 읽고

김용환 충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포석 조명희(抱石 趙明熙·1894~1938)는 민족 수난기를 온몸으로 살면서 항일운동과 사회주의 문학 사이를 오가는 변증법의 궤도를 그렸다. 동학혁명

김용환 충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 불타오르던 1894년 여름, 진천에서 태어나 1938년 ‘일제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하바로브스크 감옥에서 총살형을 당하기까지 문학의 여러 장르, 희곡, 시, 시조, 소설, 수필, 논설 등에 걸쳐 선구자로서의 발자취를 남겼다. 이 가운데 67편의 시와 17편의 수필을 중심으로 읽은 소감을 피력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67편의 시에는 일반시 54편, 산문시 5편, 동시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시 67편 가운데 생명과 영혼을 노래한 시는 <생명의 수레>, <생의 광무>, <태양이여! 생명이여!> <불사의한 생명의 미소!>, <내 영혼의 한쪽 기행> 등이 있다. <생명의 수레>에서는 우주생명이 대교향악을 연주하며 영원하며 무궁한 영겁을 찬미한다. <생의 광무>에서는 개체생명의 시인으로서 <숙명>이라는 흉측한 탈을 쓰고 돼지와 여우들이 온통 들끓고 탐욕과 간교가 넘쳐나고 있는 오염 구덩이에서 살게 되었지만 개념을 철수하면 성신(聖神)의 궁전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자긍심을 묘사한다. <태양이여! 생명이여!>에서는 우주생명 율려(律呂)에 맞추어 뛰는 심장고동을 듣고, 울부짖음과 광란의 포효에서 숭고한 법열을 느끼며 생명약동의 광희(狂喜)에 축복으로 응답한다. <불사의한 생명의 미소!>에서는 우주생명과 개체생명의 소통을 고요함과 기쁨이 교체하는 적열(寂悅)의 소리로 묘사한다. 까닭 모를 신비의 소리는 지혜와 감각을 떠난 영혼의 미소로서 한없는 기쁨의 광선이 되어 생명의 머리 위를 비춘다. <내 영혼의 한쪽 기행>에서는 생명으로 인생순례를 떠날 때, 처음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곧 배신의 찬바람과 영(靈)이 토해내는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경청하면서, 굴종이냐 아니면 방랑이냐의 선택적 기로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 기로에 서서 영(靈)의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선악경계 너머 참사랑의 창공을 마주하며 방랑의 길을 선택한다. 굴종을 버리고 방랑의 순례 길에 들어서지만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표상하는 외별 빛의 안내를 받고 굴종을 버리고 과감하게 방랑의 길을 선택하고자 길봇짐을 싸게 된 자신의 결단력에 응원과 찬사를 보낸다.

또한 산문시 네 편 가운데 <짓 밝힌 고려>에서는 개체생명의 참담함을 고백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힌 조국은 왜인들에 의해 공장과 상점과 광산과 토지가 송두리째 점유되고 광란의 채찍질에 짓눌려 피와 살이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반항한 죄는 배의 주림이 아니면 학대에 시달린 빼빼마른 몸뚱이 위에 모진 채찍질이며 그것도 아니면 죽음의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거룩한 싸움의 힘을 믿기에 지금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새 깃발을 높이 새우고 거룩한 싸움을 향해 태양을 떠받침을 믿으며 자신을 들어 올린다.

동시 8편 가운데 <샘물>에서는 우주생명이 개체생명 사이를 파고드는 모습을 세 가지의 생명작용을 미덕으로 노래한다. 우울한 삶의 현장에서 샘물은 혼자 춤추며 돌 틈 사이로 스며드는 자애의 미덕을 보여준다. 또한 싸움이 지속되는 삶의 현장에서 험한 산길 사이를 누비며 유유히 걸어가는 청정의 미덕을 제시한다. 전봇대처럼 막힌 삶의 현장에서 하늘의 맑은 소리가 되어 산하에 널리 울리는 포용의 미덕을 천상의 소리와 함께 찬미한다.

그리고 수필 17편 가운데 <생명의 고갈>과 <문단괴물>은 생명의 실존체험을 말한다. <생명의 고갈>에서는 생명은 힘과 열, 그리고 빛이 있다고 한다. 살아 있음은 생명이 있음이고 그것은 예술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결코 죽은 소리를 내지 말고 살아 있는 소리를 내어야 된다. 인간이 우주생명과 멀어지면 마른 잎처럼 시든다. 생명이 고갈되면 도깨비장난이 되고 송장의 헛소리가 문학의 가면을 쓴다. 고갈된 생명을 부활시키려면 인내의 자의식을 갖추어야 되며, 생활에 대한 반성과 함께 힘과 열도 겸비해야 된다. <문단괴물>에서는 자본주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사회가 문예 상인으로 넘치고 있음을 고발한다. 노동하는 ‘문예공’으로 굶어죽을 지라도 ‘예술공’으로 충실하게 삶을 영위해야 된다. 사전검열과 극도의 생활불안을 경험하더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문단괴물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지 말 것이다. 비록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영향을 받아 조선 문단이 ‘문단괴물’로 전락할지라도 이에 타협하지 말고 일 년에 한 편 쓸 망정 상인물건이 아니라 문예작품을 만들어 우주생명과 멀어지지 않도록 깨어있을 것을 주문한다.

 

 

현실에 절망 않고 희망을 노래하다

김태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김태정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1894년에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1938년 소련에서 처형되기까지 44년의 짧은 생애를 산 조명희의 문학 활동을 시기적으로는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19년 9월 일본에 유학하여 1923년 봄에 귀국하기까지와 1923년 귀국해서 1928년 8월 21일 소련에 망명하기까지, 그리고 망명 후 소련에서 처형되는 1938년 5월 11일까지가 그것이다.

1919년 9월에 동경에 있는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1923년 봄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귀국하기까지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시를 창작하고 연극 활동을 했다.

1921년 7월 모국에서 순회공연까지 한 조명희의 창작희곡 <김영일의 사(死)>와 1923년 11월 『개벽』에 발표한 희곡 <파사>를 읽어보면 그의 문제의식을 알 수 있다.

<김영일의 사>는 빈부의 갈등과 대립을 주제로 현실비판의식을 나타내고 있으며, <파사>는 타락한 은나라 궁중과 빈궁으로 허덕이는 백성을 대비시켜 체제 전복의 당위성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현실 개혁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조명희가 시를 짓기 시작한 것은 동경 유학시절부터이다. 그는 유학시절에 지은 시와 귀국 후에 지은 시를 모아 1924년 6월 15일 처음으로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발간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는 모두 43편인데, 이 중 귀국 후에 지은 시가 11편이고 보면 거의 대부분은 동경 유학시절에 지은 시이다.

그는 시집 출간 이후에도 시를 짓기는 하였으나, 1925년 2월에 <땅 속으로>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이후에는 점차 시보다는 단편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산문에 비중을 두었다.

1926년에는 2월에 발표한 <농촌의 시>와 가을에 발표한 <무제> 두 편밖에 없다. 그 이후엔 소련에 망명하는 1928년 8월 21일까지 전혀 시를 짓지 않고 있다.

조명희는 소련에 망명하자 그 해 10월에 산문시 <짓밟힌 고려>를 『조선지광』에 발표하고, 그 이후 그가 처형되는 1938년까지 여러 편의 동요와 산문시를 남겼다.

조명희의 시는 시기에 따라 시의 경향이 다르다.

유학시절에 지은 시는 비애감, 고독감, 방황을 노래한 것이 많다.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이고 인간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의식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둡다. 이는 시인 조명희가 유학기간 중 극도의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가 귀국한 후에 지은 시는 유학시절의 시와는 다르다. 밝고 경건하고 신비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와 같이 어두운 분위기의 시에서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분위기의 시로 바뀐 데에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회고담에 의하면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해 겨울 내내 타고르에 심취하여 <기탄잘리>를 애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명희의 시집 『봄 잔디밭 위에』에 수록된 시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본다면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시보다는 삶의 괴로움에 방황하는 고독한 영혼을 노래하거나 인간을 부정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삶의 시가 훨씬 더 많다.

조명희의 시는 소련 망명을 계기로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를 보인다. 조명희가 망명하여 처음으로 발표한 산문시 <짓밟힌 고려>(1928.10) 는 이제까지의 시와는 사뭇 다르다. 그 내용을 보면, 일제 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이 같은 현실에 절망하지 말고 프롤레타리아의 힘을 믿고 해방의 그 날까지 싸우자고 외치고 있다.

이 시에는 고려의 땅, 고려 대중, 고려 프롤레타이라 등 ‘고려’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 일본과 관련해서는 일본 제국주의, 일본 부르주아놈, 일본놈, 일본 관리놈 등이 모두 다섯 번 나온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일본의 지배 세력에 대한 증오심을 통해 반제 반식민지 투쟁의식과 민족주의 의식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편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도 일곱 번이나 등장, 일제 식민지배 체제하에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조선 무산대중의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의식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시야말로 일제의 민족 억압에 대한 반제 투쟁의식과 무산대중의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계급 투쟁의식을 모두 담은 저항시라고 볼 수 있다.

소련에 망명하기 전에 지은 1926년의 <농촌의 시>나 <무제>가 가난과 굶주림을 소재로, 기껏해야 “그리운 햇빛을 보기 위하여, …이 기나긴 어둠을 전사같이 지쳐나가자”고 외쳤던 내용과 비교하면 현격한 변화이다. 묘사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직설적이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도 <여자 돌격대>(1931.3), <맹세하고 나가자>(1934.4) 등 여러 편의 산문시를 발표했으나 이들 산문시에서는 <짓밟힌 고려>에서와 같은 민족주의적 색채나 일제에 대한 반제 반식민지 투쟁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산문시는 오로지 계급시로 일관되어 투쟁적 구호와 정치적 선전 선동 문구를 나열해 놓은 느낌마저 든다.

조명희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25년 2월 『개벽』지에 단편소설 <땅 속으로>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그는 1928년 8월 21일에 소련으로 망명하기까지 5년 사이에 12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망명 후에는 단편소설 1편과 장편소설 2편을 썼으나, 장편소설 <붉은 깃발 아래서」>1928)와 <만주빨찌산>」은 발표되지 못하고 실종된 채 작품명만 전해지고 있다.

그의 소설은 전체적으로 가난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 경향에 따라 몇 개의 작품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궁핍한 현실 속에서의 지식인의 생활고와 삶에 대한 환멸을 그린 작품들이다. 작품 <땅 속으로>(1925), <R군에게>(1926), <저기압>(1926)이 이에 속한다. 또 하나는 가난으로 농토를 잃고 고향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간도나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농민들의 가혹한 현실을 그린 작품들이다. <농촌사람들>(1927), <마음을 갈아먹는 사람>(1926) 등이 그것이다.

조명희는 <낙동강>(1927)으로 대표되는 또 하나의 작품군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한여름밤>(1927), <춘선이>(1928), <이쁜이와 용이>(1928), <아들의 마음>(1928)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이 작품들은 계급적인 이념의 구현이라는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군 중에 조명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낙동강>은 식민지 현실의 곤궁한 삶을 극복하기 위한 지식인의 이념적 대응과 그 실천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박성운은 계급해방이라는 사회주의적 이념의 구현을 목표로 하면서도 일본의 수탈과 잔인성을 폭로하는 반식민주의적 민족투쟁의 성격을 잃지 않고 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내가 해외에 가서 다섯 해 동안을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강이라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낙동강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낙동강이 생각날 때마다, 내가 이 낙동강의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임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따라서 조선이란 것도”라고 회고하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조명희와 우주생명

야규 마코토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야규 마코토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조명희는 <어린 아기>라는 시에서 ‘선악을 초월한 우주 생명의 현상이라고 어린 아이를 찬양했다. 그는 어른의 사리분별을 초월한 어린이의 천진난만함과 그 부드러운 몸매에게 우주생명의 현현(顯現)을 본 것이다.

 

오오 어린 아기여! 인간 이상의 아들이여!

너는 인간이 아니다

누가 너에게 인간이란 이름을 붙였느뇨

그런 모욕의 말을……

너는 선악을 초월한 우주 생명의 현상이다

너는 모든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운이다

네가 이런 말을 하더라

“할머니 바보! 어머니 바보!”

이 얼마나 귀여운 욕설이며 즐거운 음악이뇨?

너는 또한 발가승이 몸으로

망아지같이 날뛸 때에

그 보도라운 옥으로 만들어낸 듯한 긁고 고운 곡선의 흐름

바람에 안긴 어린 남기

자연의 리듬에 춤추는 것 같아라

엔젤의 무도(舞蹈)와 같아라

그러면

어린 풀싹아! 신의 자(子)야!

 

우주생명이라고 하면 사름외계인과 같이 지구 바깥의 다른 혹성에서 사는 생물 또는 생명체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우주생명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주 천지에 가득 찬 생명 에너지, 근원적 생명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비록 우주생명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생각은 동양 사람에게 익숙한 바이다. 예를 들면 「주역」에서 “낳고 또 낳음을 역이라 한다”라고 하고 또 만물이 그 천지의 도, 근원적 생명력의 작용을 받아서 활기차게 노는 모습을 “솔개는 날아 하늘을 닿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도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다만 유가사상에서는 만물을 낳고 변화시키고 자라게 하는 천지의 덕을 체현하는 것은 성인군자의 덕이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기운을 오로지 하나로 집중시키고 부드럽게 해서 갓난아이처럼 할 수 있을까?”, “항상 덕을 떠나지 않고 갓난아이로 돌아가라”, “두터운 덕을 간직함을 아기처럼 하라”고 하듯이 노장사상에서는 성인군자보다 오히려 어린 아기가 덕을 간직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조명희의 <어린 아기>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가보다 도가적인 경지를 읊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상적인 계보를 다지지 않아도 아마 아이를 갖거나 어린이를 돌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에 공감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어린 아기는 계속 어린 아기로 있을 수 없다.

천사와 같았던 어린 아이도 어느새 퇴락(頹落)하고 세속의 때가 묻혀 천진(天眞)을 잃으며 보통 사람, 달리 말하면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가 되고 만다. 거짓 위(爲)자는 “사람(人)이 되다(爲)” 혹은 “인간(人)노릇 하다(爲)”라고 쓴다는 누군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게다가 문학자 조명희가 살던 시대는 보통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기조차 힘든 일제식민지시대였다. 그리하여 “예전에 중농이던 사람은 소농으로 떨어지고, 소농이던 사람은 소작농으로 떨어지고 예전에 소작농이던 많은 사람들은 거의 다 풍지박산하여 나가게 되고 (중략) 그들은 모두 도회로, 서북간도로, 일본으로 산지사방 흩어져 샀었다.”(<낙동강>) 그렇게 해서 살길을 찾고자 했지만 살림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마른땅 위에 꿈질대는 것은 다만,

'뼈의 사람' 아니 '사람의 뼈'뿐이다.(<땅 속으로>)

 

<땅 속으로>의 주인공은 어린 딸이 어여쁜 입을 방긋 벌려 “저기 저 모기……소리해, 남모르는 소리두 하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본능으로는 귀엽게 여기면서도 마음이 그것을 거부하고 “신통한 생각이 매우 나서” 곧 입을 한번 대려 하다가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악희의 운명”에게 본능의 빛이 가로막힌 스스로를 발견해서 그는 주먹을 부르르 움켜주고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된다.

조선 사람에게는, 아니 내게는 이것조차 뺏어 갔구나! 우주 생명으로부터 내어버린 자식이로구나!

이와 같이 조명희는 ‘우주생명으로부터 내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우주생명부터 버림을 받으면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냉철하고도 열정적인 필치(筆致)로 그려냈다.

<낙동강>의 주인공 박성운은 낙동강 어부의 손자였으나 배우지 못한 한을 품은 아버지가 어렵게 교육을 시켜서 농업학교를 졸업했다. 덕분에 군청 농업조수로 일하게 되었으나 마침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그것에 열렬히 헌신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체포되고 1년 반의 철창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박성운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와 더불어 서북간도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는 외지 생활 동안에 아버지도 잃고 5년 동안 만주, 노령, 북경, 상해를 돌아다니는 동안에 열렬한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박성운은 마침내 한반도로 돌아와서 처음에는 서울에서 노동조합운동을 하다가 서울의 단체가 자기 일을 안 하고 파벌 싸움만을 일삼고 있는 것에 분격하고 서울을 떠나서 출생지의 경상도에 가 버렸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 일대를 망라하는 사회운동단체를 만들어서 자기는 낙동강 하류 지역을 맡으면서 운동에 힘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박성운은 (아마 치안유지법치 위반 협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미결수로 있다가 옥중에서 고문을 당하고 병이 위중한 까닭에 보석되었다. 동지들이 그를 인력거에 싣고 바로 병원으로 입원시켜야 할 정도였지만 박성운의 희망에 따라서 낙동강을 건너는 데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을 건넌다는 모티브는 불경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인 ‘삼도천(三途川)’을 연상케 한다. 다만 삼도천은 건너는 것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가는 여정이지만 소설의 낙동강은 우주생명으로부터 버림받은 세계에서 활기와 희망으로 가득 찬 세계로 가는 여정을 상징하고 있다.

 

 

시대정신이 낳은 문학

박소예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박소예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내가 해외에 가서 다섯 해 동안을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강이라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낙동강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낙동강이 생각날 때마다, 내가 이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임을 잊어본 적도 없었다……. 따라서 조선이란 것도.”

소설 <낙동강>의 주인공 성운은 옥살이를 치르면서까지 독립운동에 열렬히 참여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쇠퇴하는 운동의 경향을 지켜보고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인물이다. 그는 농촌 야학을 설치하고 소작쟁의를 일으키는 등 무산계급의 권리를 위해 힘쓴다. 뿐만 아니라 그는“백정이나 우리나 다 같은 사람이다……. 다만 직업의 구별만 있을 따름이다……. 무릇 무슨 직업이즌지, 직업이 다르다고 사람의 귀천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옛날 봉건시대 사람들이 라는 말이다…….”라고 말하며 사회에 뿌리박힌 계급제를 철폐하기 위해 행동으로 앞서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성운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의 수많은 동무들은 “용사는 갔다. 그러나 그의 더운 피는 우리의 가슴에서 뛴다”며 그의 장례 행렬에 뒤따른다.

성운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진정한 무산계급의 권리쟁취를 위해 힘쓰고, 이미 사회에 만연하여 당연한 것이 된 계급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청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그가 이름뿐인 사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를 따르는 이들이 그를 용사라 칭했을 것이다. 이러한 성운의 행보의 바탕에는 낙동강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있었다. 조선 사람들이 물과 고기를 빌려 생을 연명하게 해준 낙동강은 단순한 강이 아닌, 조선 사람이 있게 한 조선 그 자체로의 상징을 지닌다.

성운은 낙동강에서 뻗어 나오는 수많은 물줄기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한다. 어부인 할아버지와 농부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공부한 지식인으로서 농촌 야학을 열기도 하고, 형평사 운동에 직접 참여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의 영향력은 그 시대 등장하기 시작한 여성 지식인 로사에게도 미친다. 로사는 교사가 된 자신의 덕을 보려는 백정 아버지에게 “아배는 몇 백 년이나 몇 천 년이나 조상 때부터 그 몹쓸 놈들에게 온갖 학대를 다 받아왔으며, 그래도 그 몹쓸 놈들의 썩어자빠진 생각을 그저 그대로 가지고 있구만”이라고 말하면서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피해자들 역시 사회 분위기에 수긍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런 로사에게 성운은 “가정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같은 여성에 대하여, 남성에게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여야 합니다”라며 그녀를 북돋아준다. 로사라는 인물의 등장은 여성이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된 당대 현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성운이 기존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낙동강>은 성운이라는 인물의 행보를 통해 프롤레타리아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함과 동시에 성운의 죽음으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기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낙동강>을 소설집의 제목으로 했듯 조명희의 소설들은 <낙동강>에 나타나는 두 가지 측면 즉, 첫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생활상과 둘째.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정신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땅 속으로>에서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강도를 감행하고 마는 가장의 모습을, <마음을 갉아먹는 사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몸을 파는 아내를 막지 못하고 결국에는 아내마저 재산가에게 빼앗긴 삼득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외에 다른 소설들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일본인 지주에게 빚을 진 농민이거나 공부했지만 자신의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어 가난한 처지에 내몰린 지식인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소설 속에서 현실적으로 묘사되며 주인공들은 향락에 빠지려 하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신은 이러한 주인공들의 삶을 기반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낙동강>에서는 프롤레타리아 정신이 어떻게 추구되어야 할지 성운의 행보를 통해 보여주며, 조명희의 마지막 소설 <아들의 마음>에서는 “사회 주의 혁명 투사”, “만국 노동자들의 단결 만세!” 등 직접적으로 사회주의 혁명 운동을 언급하며 주인공의 첫사랑 금순이 공군이 되어 일본과 싸우는 것이 ‘중국 혁명’, ‘세계무산계급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 속에, 특히 마지막으로 집필한 소설에 직접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관련된 단어들을 노골적이고 긍정적으로 사용한 것은 작가가 생각한 사회의 해답이 사회주의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명희의 소설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반드시 성공적인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R군에게>에서 주인공은 혁명 운동으로 옥살이를 하던 중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쁜이와 용이>에서는 용이와 결혼하기 위해 도망쳐 나온 이쁜이가 용이를 버리고 백만장자 아들의 셋째 첩이 된 결말을 보여준다. <낙동강>에서도 성운은 결국 감옥에서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조명희의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은 추구되어야할 것으로 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활동이며 이미 사회에는 부르주아의 권력이 팽배해있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의의를 가진다.

조명희 전집 중 소설을 중점적으로 읽은 까닭은 소설 속 세계야말로 작가가 세계 가운데 중점적으로 보이고 싶은 일면을 자기 주장으로만 일관하지는 않으면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설들을 읽고 나서 그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라고 불린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당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건과 배경은 노동자들의 공감을 사기 쉬워 보였고, 이러한 점이 당대의 읽는 이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함께하자는 작가의 청유가 설득력 있어 보이도록 썼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아들의 마음>과 같은 작품들에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지나치게 잘 드러나 때로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작가의 노골적인 청유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갉아먹는 사람’처럼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저항이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소극적 모습이 다수의 작품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훗날 김기진이 지적했듯, 당대 노동자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들이 작품에 다수 사용되었다는 점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에게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명희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것은 그가 일제의 감시와 검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에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이루려는 시대정신을 그의 문학에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의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조명희 자신이 다시 채워 넣은 흔적들이 전집에 반영되어 있었는데 그 흔적 하나하나가 그의 투쟁으로 보였다. 동시에 ’평등'을 외쳤던 당대의 사회주의 사상이 동학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먼저 평등을 외치고 실천하려 한 ‘열린 노력'이 문학의 명맥 속에도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조명희 전집을 읽으면서 일관되게 들었던 생각은 조명희의 글에는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일본과 부르주아 세력을 타파하려는 의지이든, 배고프고 고단한 삶을 겨우 연명하는 조선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이든,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문장들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 덕에 그가 독자들에게 청유하고자 했던 바 역시 명확하고 힘 있게 전달된다. 그 바탕에는 분명 그가 냉철하게 지니고 있었던 시대정신이 존재할 것이다.

끝으로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시 가운데 한 작품의 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부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어조로 노래하는 조명희의 시들 가운데 눈에 띄었던 시로, 그가 느끼던 시대적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감시당하는 ‘모욕'적인 조선인의 삶과 그 삶을 물려받을 운명에 처한 새끼 원숭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귀여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슬퍼합니다

“너는 왜, 그런 모욕의 탈을 쓰고 또 났어……”하고.

-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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