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하 오송종합사회복지관 주민기자

피곤이 쌓여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나가보니 훤칠한 키의 젊은 남성이 종이백을 건네어 주었다. 지쳐서 자고 있었던 터라 정돈되지 못 한 모습에 현관문에도 다가서지 못 하고 무언가 받아서 잠결에 냉동칸에 넣어야 된다는 생각에 일단 종이백을 냉동칸에 넣어두었다. 너무 피곤하여 잠을 다시 청하는데 영 잠이 오질 않고 섬광처럼 스쳤다. 분명히 윗 층에서 누가 다녀갔으며 나도 무언가 이야기를 분명히 하였는데 ‘무엇이지?’.

윗 층에 사는 아기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다녀간 모습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냉동 칸에 두었던 종이 백을 열어보니 아이스크림 두 통과 전화번호 적힌 메모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기가 특히 요즘에 너무 많이 뛰어다닌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필요하시면 전화 주세요.”라는 말이 기억났다. 나도 잠결에 나가서 ‘괜찮다.’고 한 것 같다. 시끄러운지도 잘 모르겠지만 늘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젊은 부부가 예뻐 보인다.

콩콩콩 뛰어다니는 아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언젠가는 호두파이를 사들고 윗 층 젊은 부부가 찾아왔었다. 그 때에도 괜찮다고 말 해 주었지만 아래층에 사는 우리들에게 많이도 미안했었나보다. 젊은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구정 한참 전에 흰떡을 만들어 찾아갔던 적이 있다. 문을 열어준 이는 할머니였다. 아기는 할머니와 함께 여전히 바쁘게 뛰어다녔던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짐작컨대 아기 엄마 아빠는 맞벌이 부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엄마, 아빠를 퇴근 후에 만나면 얼마나 신이 났을까.

우리 아파트는 은퇴를 하였거나 중, 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입주해 있고 조용한 편인 것은 사실이다. 조그만 아파트 평수도 두 부부가 살기에는 족하지만 아기는 뛰어봐야 25평이다. 게다가 그 평수를 온통 뛰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빈 공간을 뛰어다니는데 얼마나 뛰어다닐까. 추운겨울에 나가지도 못하고 아기가 발산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의 좁은 공간 뿐 인데 뛰는 아기가 무슨 죄인가. 또 그 부모는 무슨 죄인가. 게다가 할머니까지 온통 집안 식구가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숨죽여가며 미안해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윗 층이 조금 소란스러우면 갑자기 올라와 불평을 하거나 심하면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층간 소음으로 인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조금씩 양보하고 또 이해하며 조심하면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다.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소리들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동주택이라는 개념 속에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음도 인식해야한다. 우리는 아래층이기도 하지만 또 윗 층이기도 하다. 다 같은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위, 아래층에서 배려하며 손 내밀었던 이해가 통한다면 좋은 이웃으로 ‘우리’가 되어갈 것이다. 호두파이의 응답으로 흰떡을 올려 보냈었는데 이번엔 무엇을 올려 보낼까 즐거운 고민이 생겼다. 살아가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자신에게 몇 배 이상의 기쁨을 안겨준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늦은 결혼에 저 출산으로 인구도 줄고 있는 현상을 고민해 온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로이 시작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어른들의 배려와 아량을 조금씩 내어준다면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아파트에서도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조그마한 염려는 덜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적으로 힘 든 시기에 몇 사람만 모이면 오르내리는 이야기는 모두 ‘어렵다’이다. 어려운 중에도 가끔씩은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음을 알리고 싶고 그 주인공을 아직 통성명도 하지 못한 사랑스런 이웃인 젊은 부부로 삼고 싶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뛰어다니는 아기를 둔 부부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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