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면 영혼이라도 팔 것처럼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매달려 놓고 들어오면 여기 오기가 제일 싫잖아!”

이 말에 ‘뜨끔’하지 않은 직장인들 손 들어보시라. 얼추 저기 100m 멀리까지는 없는 듯하다. 작가가 제대로 한방 날렸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고 한 게 아니다. 이 드라마가 하려는 말은 다른 것이다.

“버스 타고 고속도로 달리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어요. 취준생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거든요. 취직해서 첫 월급 받으면 꽃구경 가야지 결심했는데, 몇 년째 봄을 외면했네요.”

대한민국의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아우성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오른 지 오래다.

그 절박함으로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하고, 회사 내에서의 온갖 ‘꼬락서니’와 알싸한 ‘썸’, 배꼽 잡는 코미디로 건물을 지어 올린 게 MBC TV ‘자체발광 오피스’다.

작가의 충실한 취재력과 희로애락을 절묘하게 버무린 필력, 연기자들의 고른 호연이 착착 들어맞는다.

덕분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튼튼하고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 시한부 + 3개월 계약직 = 이보다 절박할 수 없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흙수저’ 취준생 은호원(고아성 분)이 입사시험에서 100번 떨어진 끝에 3개월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극성’을 한껏 끌어올리는 설정이다. 여느 드라마라면 시한부라는 설정이 진부했을 텐데, 여기서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변신했다.

드라마는 지난 13일 방송된 10부까지 이 드라마틱한 설정을 동력으로 달려나갔다.

회사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죽을 각오로 하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만, 진짜 죽을 날을 받아놓은 은호원에게 그 말은 심장을 찌른다.

그래도 “8년간 꿈이 취직하는 거였다”는 은호원은 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대신, 꿈에도 그리던 직장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최선을 다했다.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직장을 얻고 싶은 취준생들의 절박함에 확대경을 들이댄 작가는 은호원의 선택에 시청자가 ‘공감해요’를 누르게 만들었다.

취업동기? 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100번쯤 떨어지면 ‘취업동기’라는 게 뭔지도 잊어버린다.

“학자금 대출에 집세도 내야 하고 먹고살기 힘드니까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왔지, 인생을 걸긴 무슨 인생을 걸어요!”

10부 말미 은호원의 시한부가 착각이었음이 드러났지만, 드라마는 남은 6부의 동력도 장착했다.

얼굴을 숨겼던 실세의 전면 등장, 시한부의 진짜 주인공과 정규직 전환에 성공할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 등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 계약직의 설움 + 코미디 = 쫀득쫀득한 드라마

“침대 반품은 어려워도 저 같은 계약직 반품은 엄청 쉽거든요”, “너무 부당하잖아요. 정규직 미끼로 저희 이용 하시는 거잖아요”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계약직의 설움을 드러내는 에피소드와 대사는 이 드라마가 공중에 붕 뜨지 않도록 잡아준다.

“조 과장이 왜 승진 못 했는지 알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왕이면 남자직원 찾는 게 현실이야”, “간, 쓸개 다 빼놓고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어. 체면, 원칙 지키면서 여기까지 못 와”

직장 내 여성에게 존재하는 유리 천장과 실력을 압도하는 ‘정실 인사’, 회사 내 각종 부정과 청탁, 워킹맘의 애환 등도 현실감을 높인다.

드라마는 그러나 진지해지려는 순간 위트 넘치는 코미디를 투입해 시청자를 즐겁게 한다.

계약직 3총사 ‘은장도’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측은지심과 코미디를 두 바퀴 삼아 동시에 굴러간다. ‘흙수저’ ‘은수저’ 가릴 것 없이 취직에 대한 절박함으로 목이 타들어 가지만, 어느새 경쟁자임을 잊고 진한 동료애를 발휘하는 이들의 모습은 각박한 세상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시한부라는 배수의 진을 쳤다는 이유로 은호원이 물불 안 가리고 종종 시원하게 ‘질러’대는 것 역시 십년 묵은 체증을 가시게 한다.

갑근세를 내야 하는 민초들은 더럽고 서러워도, 설사 부당해도 입을 꾹 담고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그들의 마음을 대신해 은호원이 ‘시한폭탄’처럼 도발하니 싱글벙글 웃음이 절로 나온다.

 

●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약이 될까, 독이 될까

6부가 남은 드라마는 은호원의 삼각관계에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부장 서우진(하석진)과 의사이자 창업주의 둘째 아들 서현(김동욱)이 ‘백마 탄 왕자님’ 역할을 맡았다.

‘흙수저’ 출신에, 3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한 은호원에게 이 두 왕자가 동시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이를 두고 “잘 나가다 웬 러브라인?” “결국 또 기승전 멜로냐”는 지적과 실망의 목소리가 비등하다.

실제로 굳이 멜로를 가동하지 않아도 배우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에서 고르게 호연을 펼쳐,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고아성을 비롯해, 이동휘, 호야, 하석진, 권해효, 김동욱, 오대환, 한선화 등이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삼각관계 때문에 가슴이 설렌다며 ‘본방사수’를 하는 시청자도 만만치 않다.

‘자체발광 오피스’가 진부한 로맨스 판타지로 끝날 것인지, 신선한 뭔가를 보여주며 막을 내릴 것인지 궁금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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