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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에 돌아보는 80년 전 추억들... "주름진 세월만큼 삶은 참 재밌었다오"80년간 이어져온 끈끈한 우정 청주 석교초 1회 졸업생들
(왼쪽부터) 80년 동안 끈끈한 정을 이어오고 있는 청주 석교초 1회 졸업생 정승용·송재설·임노설·장창환 할아버지가 지난 25일 점심때 보은 창리의 한 음식점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80여년간 이어져온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주인공은 정승용(88)·송재설(88)·장창환(88)·임노설(89) 할아버지. 이들은 모두 청주 석교초 1회 졸업생들로 1937년 입학과 함께 긴 인연이 시작됐다.

80년. 강산이 여덟 번 바뀌고도 남았을 긴 시간 동안 까까머리의 개구쟁이 소년들은 어느새 팔순을 넘어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얼굴에는 세월만큼이나 깊은 주름살이 패였고, 머리도 하얗게 세어버렸지만 모이기만 하면 그때 그 시절 개구쟁이 소년들로 돌아간다.

지난 25일 점심때 보은 창리의 한 식당에서 오랜만에 정기모임을 가졌던 그날에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들 할아버지였지만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신이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모습에 까까머리 소년들의 모습이 겹쳤다.

“우리 모임이 시작한 게 2004년이에요. 당시 서울에 이원환(전 연세대 교수)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동안 우리가 동창모임도 못했는데 이제 동창회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연락이 끊어졌던 동창들을 모아서 석교초 1회 동창회를 만들었지요.”

정승용 할아버지는 동창모임이 만들어졌던 당시를 이 같이 회고했다. 동창회가 만들어진 그해에 동창회장에 신동수 한국동명기술공단회장을 앉히고 모교를 방문해 학교발전기금 100만원을 기탁했던 것이 이들의 첫 행보였다.

정 할아버지는 오늘의 석교초 1회 동창회가 있게 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청주모임 총무는 내가 맡고 서울 모임 총무는 정운집이라는 친구가 맡았는데 청주와 서울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교량역할을 단단히 해줬어요. 아주 고마운 친구였는데 2년 전에 갔지. 그 친구가 떠난 이후 서울 모임은 흐지부지 돼버렸어요.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안타까워요.”

청주에서는 13명의 동창들이 모이곤 했다. 그러나 그 중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4명만 남았다. 1회 졸업생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살려 매달 1일 모이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되도록 10일 이전에 날을 잡아 모인다고 한다. 모임 날짜가 정해지면 정 할아버지가 나머지 멤버들을 태우고 나들이 겸 점심을 먹으러 떠난다. 차에 타는 순간부터 이들의 ‘시간여행’은 시작돼 저마다 추억들을 풀어놓는다.

“나는 29살에 충북대 전임강사부터 시작해서 1995년 퇴임할 때 까지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여기 이 친구(송재설)는 경찰이었는데 사격실력이 대단했지요. 옥천서장, 충북도경찰국 통신과장을 하다 퇴임했어요. 창환이는 양복점을 운영했는데 소문난 멋쟁이었어요. 기름 발라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신사복을 딱 갖춰 입고 다녔는데 안쳐다 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에요.”

정 할아버지는 아직도 파릇파릇한 젊은 청춘의 모습이 눈앞에 선한 듯 생생히 이야기했다.

임노설 할아버지는 노래 실력이 아주 대단했다고 한다. 콩쿨대회에도 나갔을 정도로 그 수준이 뛰어났지만 6.25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에 들어가 육군본부 부관감실 소속으로 많은 공로를 세웠다. 1등 상사로 전역한 참전 용사인 그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다.

임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3명 모두 국가유공자이다. 지난해에는 1회 졸업생들 중 6.25 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호국영웅명비’가 모교에 건립되기도 했다.

송 할아버지는 “졸업이후 흩어졌다가 모임을 갖게 된 이후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옛 생각도 돌아왔다”며 “어렸을 때의 정(情)은 성인의 것보다도 더 야릇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1937년 입학, 1943년 졸업.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이후에는 6.25전쟁을 겪은 세대. 역사의 굴곡을 모두 겪어낸 셈이다. 그 거친 풍파를 마주했던 세대인 만큼 그들의 추억담 속에는 아픈 기억들도 있다.

장 할아버지는 다소 아픈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우리가 뭘 잘못했다면서 전교생을 운동장에 무릎 꿇고 앉아있게 했지. 나중에는 다리에 아무감각도 안 느껴져서 다리가 붙어있는지도 몰랐어요. 6.25사변 때는 말 할 것도 없죠. 먹을 것이 없어서 밥 지은 가마솥에 물을 붓고 끓인 뒤 그 물을 퍼먹기도 했지요.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어요. 지금이라도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니 참 좋아요. 매일매일 이 모임이 기다려져요.”

굴곡진 세월을 이겨내고 다시 만난 친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한 달의 단 하루, 이 시간이 더 애틋하고, 더 소중하다.

송 할아버지는 “먼저 떠난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지만 몇 해 동안 노년을 정말 즐겁게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앞으로도 한 달에 한번은 오래도록 꼭 만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떠나간 친구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옛날 추억을 되새겨 보자고.

<박장미>

박장미 기자  pjm892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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