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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2) /일제는 어떻게 조선을 발끝까지 집어삼켰나
조선통치비화(2) /일제는 어떻게 조선을 발끝까지 집어삼켰나
  • 동양일보
  • 승인 2017.04.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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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참석자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바다 젠사브로(柴田善三郞), 아카이 케아츠시(赤池濃), 마루야마 츠루키치(丸山鶴吉), 치바료(千葉了), 마츠무라 마츠모리(松村松盛), 모리야 에이후(守屋榮夫).

● 좌담회 참석자

-귀족의원 법학박사 미즈노랜타로(水野鍊太郞)

-귀족원 의원 아카이케아츠시(赤池濃)

-귀족원 의원 시바다젠사브로(柴田善三郞)

-귀족원 의원 마루야마츠루키치(丸山鶴吉)

-귀족원 의원 모리야에이후(守屋榮夫)

-전 니가다현 지사 치바료(千葉了)

-전 조선총독부 식산 국장 마츠무라마츠모리(松村松盛)

-동양협회편집부 야마카다(山上昶)

 

● 3.1 만세운동과 큐리박사

야마가미(山上) : 1919년 3월에 조선 전역에 걸쳐 일어난 3.1운동 후 조선통치의 임무를 맡고 있던 분들의 고심은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일은 신문지상을 통하여 대략적인 내용이 보도돼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시 실제로 조선통치 임무를 담당했던 분들로부터 숨김없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후일에 참고도 되고, 또 역사적 자료도 될 수 있으므로 상세한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별로 지장이 없다면 당시 조선총독부 관제 개정에서 인사 문제에 관한 일까지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미즈노(水野) : 1919년 3월 조선에서 소위 독립만세 소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었지요. 이는 조선인이 일본의 조선통치에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을 희망해 일으킨 소요였고, 전 조선에 걸쳐 민중이 독립만세를 부르짖은 소동이었기 때문에 독립만세 소동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내각은 하라다카시(原敬) 내각이었는데, 하라다카시 수상은 조선에서 이러한 상태를 심히 우려하여 조선통치에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사태가 미국을 비롯하여 외국 여러 나라에까지 알려졌기 때문에 각 국은 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해 수많은 비난을 가했고, 신문 잡지에까지도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큐리박사는 일본과 친교가 있었던 관계로 하라다카시 수상에게 조선에 대한 통치방침을 개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서면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라다카시 수상은 이에 대해 자기도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개혁할 것이라는 회답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내각에서는 우선 조선 총독부의 관제개정 의안을 정하고, 이를 각의에서 결정한 다음 추밀원의 자문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 개정 의안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선총독은 종래 육군대장으로 충당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현재와 금후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무관총독을 조선에 배치할 필요가 없고 문관·무관에 관계없이 적임자를 총독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취지하에 종래의 총독부관제에 ‘총독은 육군대장으로 보 한다’는 규정을 고쳐 임용자격의 제한을 철폐했고, 문관 출신자도 총독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개정했습니다.

둘째, 경찰제도의 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종래 경찰은 헌병이 조직의 근본을 이루고 있어 그 우두머리인 경무총장은 조선주재 헌병사령관이, 각 도의 경무부장은 각 도 헌병장인 헌병보좌관이 이를 맡게 되어 있었으며, 헌병장교 및 준사관과 하사는 경시(警視) 및 경부(警部)에서 임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실적이 좋지 않았고, 특히 지방청에 있는 도(道)장관에게 경찰권이 없었기 때문에 도장관과 경무부장 이하 경찰관 사이에 종종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정에서는 경찰관서 관제를 폐지하고 중앙사무를 총독부로 이관시키며, 동부(同部)에 경무국을 신설하고 지방경찰 사무는 각 도 장관이 관장하게 하여 총독부 산하에 경찰 사무를 통일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셋째, 총독부 부국(部局)의 변경을 꾀하였습니다. 종래에는 총독부, 정무총감 그 밑에 각부 장관이 있고, 그 밑에 국장을 두는 조직이었는데, 이 조직은 너무 복잡하여 사무의 진척을 가로막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부장관(部長官)을 폐지하고 각 국장으로서 그 사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이것이 관제 개정의 주요한 요점입니다.

이 개정은 당시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시의 적절한 것이었기 때문에 추밀원도 이에 동의했고, 1919년 8월20일에 개정관제가 발표되었습니다.

 

정무총감이자 이른바 문화통치의 설계자였던 미즈노랜타로(水野鍊太郞).

● 정무총감 취임의 경위

이 취지 하에 조선총독부에 새로운 관제가 만들어졌고, 다음에는 총독부내의 인사조직에 들어갔습니다.

하라다카시 수상은 이 조직 즉, 인사문제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하여 근본적 개혁을 꾀하고 적당한 인재를 배치해 조선통치 개혁의 열매를 맺고자 했던 것입니다. 먼저 동년 6월 27일 하라다카시 수상이 전화로 내게 회견을 요청해 왔습니다. 전화를 받고서 시바(芝)공원 사저(私邸)로 수상을 찾아갔습니다.

“이번 총독부 관제를 개정해 조선통치를 개혁해 보려 하는데 그것에 대해 자네에게 상담을 하고자 불렀네. 실은 새 총독으로 사이토 해군대장을 교섭했는데, 거의 승낙을 받았지. 그런데 정무총감으로는 꼭 자네를 추천하고 싶어, 자네에게 이 지위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어쩌면 호된 곤욕을 치를 거라 생각되기 때문에 좀 안된 일 같지만, 달리 적임자가 없으니 국가를 위해 꼭 승낙해 주기 바라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기도하고, 또 당장 대답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좀 신중하게 생각한 후 답변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자 하라다카시 수상은 “생각해 보는 것은 좋지만, 이번 일은 거의 내가 마음을 굳혀 그렇게 하고자 결정하고 있어. 사이토 대장도 총독으로 조선에 부임할 것을 승낙한 조건으로 정무총감에 미즈노 자네가 가 주었으면 하고 원하고 있고, 나도 자네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니까, 꼭 이를 승낙해 주었으면 좋게네.”하고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쨌든 충분히 고려한 다음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하고 그 날 밤은 헤어졌습니다.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과연 이 난국에 정무총감으로서 조선통치의 중책을 맡아 이를 잘 감당해 낼 수 있을 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더욱이 그 당시 나는 구미 각 국을 여행하면서 전후의 세계 정세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 부임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고 결론짓고 며칠 후 하라다카시 수상에게 이러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난번 많은 시간 자리를 같이 해 주셔서 참으로 황송했사옵니다. 넓으신 은혜를 입어 밤늦게까지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였던 바 있사오니 요컨대, 금번 정무총감으로 취임해 달라고 부탁하신 건은 사정이 매우 난처하옵기에 감히 말씀을 여쭈옵니다. 더욱이 조선을 통치함에 있어 충분한 치적을 올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어떨지 자신이 없어 각하의 부탁을 이번만은 거절하고 싶사옵니다. 부디 다른 적임자를 물색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처럼 천거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함은 본의가 아닌 바, 소생의 충정을 잘 헤아려 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오늘 갑자기 산인(山陰)지방에 오게 되어 서면으로 감히 본인의 뜻을 밝히옵나이다. 배구(拜具)”

 

이 편지를 보내고 시마네현(島根縣)으로 강연을 나가게 되었는데, 귀경(歸京)하자마자 7월18일 밤 9시경 다시 하라다카시 수상에게 전화가 왔으므로 바삐 수상저택을 방문했다.

하라다카시 수상은 “일전에 자네에게 말한 정무총감의 건에 관하여 거절하겠다는 서면을 받아 보았네. 바야흐로 조선총독부 관제도 추밀원의 심의를 마치고 발표할 날이 가까워 오고 있어. 따라서 총독, 정무총감도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어. 전일에 내 본심을 듣고나서 자네가 이에 대해서 거절했기 때문에 그 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지만, 달리 적임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네. 자네가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억지로 자네를 괴롭히면서까지 그 직을 맡아달라고 하는 것은 나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달리 적임자가 없으니 꼭 자네가 분기(奮起)해 주었으면 하네. 정 안되겠다면 자네가 달리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에게 천거해 주게나”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각하의 뜻은 충분히 알겠사옵니다. 하지만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상황에서는 조선에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방면에서 각하를 위해, 또 국가를 위해 내 한 몸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번만은 심히 황송하옵니다만, 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전부터 각하와는 정치상 행동을 같이한 관계도 있고, 또 분에 넘칠 정도로 두터운 호의를 입고 있는바 각하를 위해서는 견마(犬馬)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조선의 형세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이 난국을 과연 잘 처리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속사정을 말씀드리면, 사이토 대장과는 이전에 한 번도 일을 같이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포부와 속마음 등도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대장이 관용 온후한 인사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지만, 문관과 군인은 사상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 종래의 관례로 보나, 또 내가 경험한 바로 보나 사실이고, 또 현재 제가 데라우치마사타게(寺內 正毅)내각의 각원(閣員)이 되어 경험하고 있는 바입니다. 또한 조선에서 총독과 정무총감, 대만에서의 총독과 민정장관, 관동주(關東州)에서 도독과 민정장관의 관계는 종래의 예로 보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도 저는 미리 들어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제가 정무총감의 중임을 맡는다 해도 과연 제 신념대로 그 난국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부디 제 뜻을 헤아려 주시옵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지금 각하는 달리 적임자가 있으면, 천거해 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시험삼아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정무총감의 지위는 소위 차관의 지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국무대신 급으로 이를 충당할 필요는 없고 차관급으로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꼭 국무대신 급의 인사로 충당하실 필요가 있으시다면 도코나미다케지로(床波 竹二郞, 1866~1935) 내상(內相)이나 나카하시토고로(中橋 德五郞, 1861~1934) 문상(文相)을 추천합니다. 만약 현임 국무대신을 움직일 수 없으시다면, 이누츠카가츠타로(犬塚 勝太郞)군이나 야마노우치이치나미(山之內 一次)군이나 또는 오가와헤이키치(小川 平吉, 1869~1942)군도 좋지 않을까요? 바라옵건대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 물색하시옵기를 청하옵나이다”하고 말하자 수상은 음성을 높여서 “자네가 지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내 생각에는 적임자가 아니야. 특히 현임 국무대신을 움직이는 것은 현재의 사정에서 볼 때 극히 곤란해. 그 외 사람들에 관해서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어. 조선 정치를 개혁한다는 것은 이전부터 내가 생각해 온 바이고, 이는 조선을 위해서도, 또 외국에 대한 입장에서 보아도 극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외로 중점을 두어 행정상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를 맡아야하는 것이야. 더군다나 인사문제는 제도의 개혁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고, 또 자네는 다년간 내무성에 있으면서 각 방면에 여러 사람을 알고 있으니까, 이런 점 등으로 볼 때 꼭 자네에게 이 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야. 자네에게 이 일을 맡아 달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괴롭고 안된 일이라는 느낌도 들어. 정무총감은 총독 밑에서 일하니까 차관의 지위여야겠지만, 조선의 정무총감은 결코 차관의 지위로는 부족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네. 행정 전반의 일을 담당해야 하니까, 물론 중앙관청의 차관 같지야 않지. 그러니까 정무총감은 대신 급의 인물이어야 해. 단지 일을 할 수 있다든가 제도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관록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조선에서는 현재 구한국의 수상 급 인물도 있고, 그 외 대신급 인물도 많이 있지. 그 위에서 통치할 정무총감이니까. 정무총감은 뭐라 해도 대신 급 인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야. 현 총감 야마가타이사브로(山縣 伊三郞)도 대신 급 인물이지. 더군다나 현 조선은 내외 여러 문제에 있어 분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반드시 대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돼. 이런 주요한 임무를 맡는다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 보아도 지극히 중요한 일이니까 자네가 싫더라도 꼭 이 직을 맡아 주기 바라네. 조선 문제는 지금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니 자네가 괴롭더라도 꼭 맡아 주게. 나의 이런 뜻을 잘 이해해서 이와 같은 비상시에 조선통치의 직무를 맡아 주었으면 하네”하고 지극히 간절하게 부탁하셨습니다.

나는 이에 답변하여 “저는 반드시 지위 여하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신념이 과연 이 난국을 처리해 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가령 제가 직접 조선에 가지 않더라도 각하를 도와 드릴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일전에도 대만이나 관동주의 인사문제에 관한 상담이 있었을 때 저는 최선을 다하여 각하를 보필하지 않았습니까? 조선 문제에 대해서도 똑같이 몸을 바쳐 충성할 생각입니다. 정무총감 지위를 맡지 않더라도 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기울일 작정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각하와 일을 같이 해왔고, 또한 각하의 환대를 받았던 바, 저 또한 각하에 대해서 견마(犬馬)와같이 충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각하가 임명하신 것에 대해 항상 복종해 왔지만, 이번만은 아무래도 각하의 간청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하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하라다카시 수상은 다시 덧붙여 “자네의 말에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리 재고해 보아도 나는 자네 이외 다른 적임자를 찾아낼 수가 없네. 만약에 자네가 정무총감 자리를 승낙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마도 사이토 대장도 총독 자리가 힘들다고 생각하여 총독을 그만둔다고 말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면, 다시 새롭게 총독에 적합한 인물을 물색하지 않으면 안되고, 내 정책상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되어 참으로 곤란하게 돼. 특히 이것은 내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야마다가(山高), 마츠가타(松方) 양 원로에게도 자네의 이야기를 했는데, 양 원로 모두가 그것은 매우 타당한 인사라고 하면서, ‘꼭 그렇게 하십시오’하고 권했기 때문에 지금 자네가 승낙하지 않게 되면 야마다가 마츠가타 양 원로에 대해서도 내 면목이 서지 않게 돼. 이러한 처지이니까 아무래도 자네가 갈 수밖에 없네. 가서 오래 있으라고 하지 않겠네. 관제개정에 필요한 제반 개혁을 실행하고 인사 경질과 제도 개혁이 일단락을 고할 때까지는 자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번에는 꼭 자네가 승낙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네. 이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으니 자네의 승낙을 얻은 것으로 하고 실행에 옮기겠네”라는 최후의 말까지 미리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까지 말해도 자네가 아무래도 싫다고 말하면, 자네 목을 메어 끌고 갈 수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세. 내가 이만큼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자네가 동정하지 않는 다면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네”하고 매우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이전부터 하라다카시 수상과는 대담을 통해 많은 논의를 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 일만큼 하라다카시 수상이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곤란한 얼굴 표정을 지어 보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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