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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 마법의 거리 아바나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 마법의 거리 아바나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6.01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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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는 단편소설 ‘나홋카의 안개’(2014)로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등단한 김득진(60) 작가의 ‘쿠바 여행기’를 매주 금요일 연재한다. 김 작가는 2016·2017년 쿠바정부의 초청형식으로 메이데이(May-day·노동절) 행사에 참석하며 만난 쿠바의 모습과 문화, 사람들의 표정까지 여행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 앞 전경. 쇠사슬로 포로를 잡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예술가의 조각상.

쿠바에선 헤밍웨이 흔적을 찾는 게 우선이다. 그의 집필 장소였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은 이정표로서 모자람이 없다. 좀비가 되어 미로를 헤매다가 길을 잃으면 돌아오는 자리. 햇살 따가운 한낮이면 호텔에 성큼 발을 들여도 좋다. 철 구조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간수 차림의 남자가 두 겹 철창을 철커덕, 잠근다. 느린 속도로 5층에 멈춰 설 즈음이면 더위는 어느 새 달아나고 없다. 땀이 식은 걸 눈치 챈 걸까. 철창이 천천히 열리고 서광이 비쳐든다. 발을 내디디면 맞은 편 벽에 걸린 부조가 시선을 잡아끈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이 너털웃음을 머금은 헤밍웨이다.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511호는 언제나 문이 잠겨 있다. 느지막이 제복을 입은 관리인이 나타난다. 그녀가 입장료를 받고 열쇠 꾸러미를 꺼낸다. 흘려보낸 시간만큼 기다리라는 뜻일까. 몸에 진땀이 배어나올 즈음 문이 열린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종소리가 환청으로 울려 퍼진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흔적들 위에 은은한 소리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방안을 차근차근 둘러본다.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가 여러 나라 언어로 출간되어 있다. 그걸 집필한 코히마르 저택이며 낚시할 때 썼던 보트 사진도 걸려 있다. 알고 보면 헤밍웨이는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미끼 상품이다. 쿠바가 감추고 있던 속살을 좀 더 파헤쳐 본다. 혁명을 위해 피 흘린 영웅들이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낸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형제, 까밀로 시엔푸에고스…… 중심에는 쿠바의 정신적 지주인 호세 마르티가 자리하고 있다. 호세 마르티를 알리려고 헤밍웨이를 엑스트라로 고용한 그들 지혜는 놀랍다.  

헤밍웨이 흔적을 머리에 새기고 호텔을 나선다. 종소리의 환청이 성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발길을 잡아끈다. 오백 년 세월의 더께를 울러 맨 아바나가 헐릴 뻔했다는 기록을 읽는다. 디즈니랜드를 지으려했다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엔 불쑥 화가 치민다.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올드 아바나. 성 프란시스코 성당 내부만 둘러봐도 세계문화유산이 되고도 남는다.

 레 미제라블 형상을 동판으로 만든 예술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는 불쌍한 사람. 형체를 더듬는 손길이 허허롭다. 성당 바깥, 쿠바 최초의 노숙자 상은 예술적 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이든 바깥이든 자세히 보면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오래 들여다봐서 아름답지 않은 건 없다.

성당을 벗어나 아바나 오삐스포 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낯선 일상 속으로 뛰어들고픈 욕망이 커서다.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발을 잡아끈다. 셀 수없이 많은 문이 제각각의 색깔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파스텔 톤의 문짝들은 카드 섹션을 펼치기에 제격이다. 동시에 열리는 법이 없는 문짝으로 저들끼리 암호를 주고받는다. 열리고 닫히는 공식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풀 해법은 없다. 미지의 힘에 끌려 좀비처럼 걸음을 옮기기에도 바쁘다. 미로를 따라 얼마나 끌려갔을까.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따끔거린다.

 가이드북 펼치기에도 시간은 모자란다. 잠시 딴 데 시선을 두면 진귀한 장면들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려서다. 그때 온 몸을 검게 도배한 남자가 불쑥 나타난다. 지나치는 사람 목에다 쇠사슬을 던져 올가미를 씌우는 남자. 포로가 된 사람은 겁에 질려 몸을 웅크린다. 잠시 후 그게 퍼포먼스란 걸 안 포로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둘러선 사람들은 그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긴다.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가 맞나싶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순간이다. 돈 들이지 않고 빛바랜 바로크식 건물에 예술혼을 입히는 그들 노력은 눈물겹다.

●김득진소설가는…
1958년 부산 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2012 8회 자연사랑 생명사랑 전국 시 공모전 환경부장관상(대상)
2014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2014 8회 해양문학상 해양수산부 장관상
2015 2회 경북일보문학대전 금상
2016 1회 블루시티 거제문학상 금상
2016 8회 포항소재문학작품 공모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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