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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3) / ‘문화통치’ 앞둔 일제, 소리없이 총독부 인사 물밑 작업
조선통치비화(3) / ‘문화통치’ 앞둔 일제, 소리없이 총독부 인사 물밑 작업
  • 동양일보
  • 승인 2017.06.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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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좌담회 참석자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바다 젠사브로(柴田善三郞), 아카이 케아츠시(赤池濃), 마루야마 츠루키치(丸山鶴吉), 치바료(千葉了), 마츠무라 마츠모리(松村松盛), 모리야 에이후(守屋榮夫).

● 좌담회 참석자

-귀족원 의원 법학박사 미즈노랜타로(水野鍊太郞)

-귀족원 의원 아카이케아츠시(赤池濃)

-귀족원 의원 시바다젠사브로(柴田善三郞)

-귀족원 의원 마루야마츠루키치(丸山鶴吉)

-귀족원 의원 모리야에이후(守屋榮夫)

-전 니가다현 지사 치바료(千葉了)

-전 조선총독부 식산 국장 마츠무라마츠모리(松村松盛)

-동양협회편집부 야마카미(山上昶)

 

● 정무총감 수락과 친구의 충고

이렇게까지 수상이 결심을 굳히고 말씀하시는데, 이 마당에서는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단념하고 “이만큼 각하가 고심하고 계시고, 또 그렇게 까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은 더 물리칠 수 없군요. 결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각하의 정책을 도와드린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군요. 내 일신의 이유로 인해서 각하에게 이렇게까지 심려를 끼친다는 것은 저로서도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려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돼 기꺼이 이 일을 맡겠습니다. 한번 결심한 이상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전력을 다해 세상 사람들의 비판도 생각하지 않고, 한 몸을 다 바쳐 조선통치의 임무를 감당해 보겠습니다”하고 최종적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덧붙여 “단지 여기서 한 마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개혁을 함에 있어 총독부 내의 인사를 일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인선 등 모두 제게 일임해 주실 것인지? 물론 척식국장관도 있고 또 내각 서기장도 있고 각의에서도 인사에 대해 여러 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총독부 내의 새 조직에 대해서는 전부 저에게 일임해 주신다는 것을 각하께서 보장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하고 다짐을 받자 수상은 “그 점은 결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자네를 신임하고 있으니까 자네가 선택한 인사에 대해서는 전부 그것을 동의하겠네. 다른 간섭은 일체하지 않을 것이니 그 점은 안심하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저는 “그 다음은 앞으로 재정상의 일입니다. 주로 예산의 문제이지만 근본 개혁에 있어서는 서정을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도 늘어나야만 될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제 의견을 받아들여주실 것인지요?” 하고 묻자, “이것은 오쿠라(大藏省)대신과도 관계되는 일이니까 여기서 추상적으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 생각해 볼 때 현재 조선 문제는 중앙 정부에서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니까 예산뿐만 아니라, 그 외의 일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자네가 계획한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네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른 화제로 바뀌지만 하라다카시 수상은 매우 기분이 좋아서 온화한 얼굴 표정으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환담하셨고, 새벽 1시까지 이야기한 후에 헤어졌습니다. 수상은 현관까지 배웅을 나와 또 한 말씀을 덧붙였는데, “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각원(閣員)에게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해군대신과 원로 두 사람뿐이니 관제가 공포될 때까지는 절대로 비밀에 붙이기로 하세”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약속을 지켜 취임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또 사이토대장과도 만나지 않았으며 친구나 선배에게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후 신문지상에서는 여러 가지 풍설이 떠돌아 총독에 사이토대장이 임명된다던가 정무총감에는 미즈노씨가 될 것이라는 등의 기사가 나왔기 때문에 내 친구들 중에는 여러 가지 의견을 보내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절대로 정무총감 자리를 수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충고까지 해 주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특히 나가타히테지로(永田 秀次郞) 같은 동료는 가장 강력하게 이를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그 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배계(拜啓)

더 더욱 귀하의 정진을 바라옵나이다. 각설하고 귀하가 금번 조선 정무총감에 취임하신다는 소문이 신문지상에 전해지고 있고 더욱이 모 신문 기자로부터 그 사실이 확정적이라는 말을 들었사온 바 한 시라도 빨리 대면하여 이 사실을 확인하려 하고 있던 중 다시 위장장애가 재발하여 우선 근심하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옵니다. 정무총감에 취임하신다는 것은 노골적으로 말씀드려 그다지 찬성하기 어려운 바 만약에 거취양도(去就兩道)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면 다시 고려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찬성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면,

- 문관제도를 열망하고 있는 이 때에 무관총독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곤란할 수밖에 없다는 점.

- 가까운 시일 내에 내각 경질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 후계 내각이 누구이든 관계없이 조선총독을 문관으로 하는 정도의 일은 결행될 것이고 이를 미루어 볼 때 사이토 남작의 총독 임기는 결코 길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된다는 점.

- 조선통치는 난 문제이고 혹, 난국을 타개해 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총독으로 취임하지 않고 정무총감으로 취임해서는 귀하의 뜻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므로 아무래도 가련한 생각이 든다는 점.

- 군사권을 군사령부에 옮긴 상태 하에서 무인총독은 현재의 관동도독과 같이 예전에 비해 훨씬 권위 없는 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

- 제2의 야마가다 같은 정무총감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

이러한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 조선에 부임한다는 것은 어느 방면으로 보아도 귀하의 장래에 광명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아니 하옵니다. 단지 소생이 공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만약 귀하가 성패, 행·불행을 생각하지 않고 ‘하라다카시 수상의 뜻에 따른다’는 생각에서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그 직을 맡는다고 하시면 이는 또한 일종의 높으신 식견일 것이겠지마는 마치 귀하가 일찍이 고토(後藤)남작 밑에서 내무차관으로 일하셨던 그 의기를 가지고 임하신다면 즉 그러한 정도의 마음가짐이시라면 더 이상 말씀드릴 여지도 없습니다. 인생의 화복은 반드시 눈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어서 단지 소생이 너무 상식적인 인간이다 보니 찬성하기 어려운 평소 귀하의 우의를 생각하여 주제넘게 돌이킬 수 없는 죄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씀드렸사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만간 뵈옵고, 여러 가지에 대해 말씀드릴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라오며. 草草敬白(8월6일).”

 

라는 간절한 서신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그 후 편지를 보낸 친구와 만났을 때에도 “지금이라도 여지가 있다면, 반드시 거절해 주었으면 좋겠다”하고 간절하게 말해 주던군요. 다른 친구들로부터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조선에 간다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마음으로 결심한 상태였고 하라다카시 수상의 충심 어린 간청에 대해 이제 좌우를 돌아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성패, 행·불행을 제쳐두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국가를 위해, 또 하라다카시 수상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결심이었기 때문에 선배, 친구들의 호의에도 결단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 새 간부의 조직과 인선(1)

이렇게 해서 개정관제가 발표되고 8월 12일에는 총독과 총감의 임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국장급을 비롯한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라다카시 수상은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었지만 우선 총독인 사이토 대장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사이토 총독에게 면회를 신청한 다음 “우리들이 이 중임을 맡게 되었으니 개정관제와 함께 인사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에 대해 각하가 가지고 계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하고 묻자 사이토 총독은 “나는 해군 출신이고, 문관방면의 사람은 하나도 아는 사람이 없소. 그러니까 인사는 총감에게 일임하겠으니 잘 부탁하오.” 그래서 나는 “그러면 비서관으로는 누군가 생각해 놓은 인물이 있으신 지요”하고 묻자 “해군부 내에 알고 있는 사람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문관방면의 사람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까 자네에게 일임하겠어”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인사 책임은 내가 지고 선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사람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모리야 에이후(守屋 榮夫)에게 조선 행을 권했습니다. 모리야군은 일찍이 조선통치 개혁론을 주장하며 나에게 궐기할 것을 재촉했던 일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리야군은 다소 주저하면서 “저에게는 노모가 계시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고 말하던군요. 나는 “자네가 지금 주저하면 안 돼. 나는 자네의 가정 사정도 잘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꼭 분발해 주었으면 하네”하고 말투를 좀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또한 잠시 생각한 후 “그럼 승낙하지요. 함께 가겠습니다”하고 즉시 답했기 때문에 매우 안심했습니다. “지위는 비서관이든 참사관이든 좋은데, 자네가 희망하는 대로하게”라고 말하자 모리야군은 “비서관을 주로 하면서 참사관을 겸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선 먼저 모리야군이 비서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다음에는 당시 내무성 토목국장이었던 홋다미츠구(堀田 貢)군 및 이케다히로시(池田 宏)군, 나가타히데지로(永田 秀次郞)군 등을 불러 “이번에 총독부 내에 있는 경무국, 내무국, 식산국, 학무국 등 모든 국장을 교체해야하겠는데, 이들 중 어느 지위든 자네들에게 맡기고자 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는가?”고 상담하자 나가타군은 “나는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함께 가는 것이 정의이지만, 실은 오래 전부터 위장이 나빠져서 이번 조선 행은 곤란합니다. 특히 금번 고토씨가 외국에 가서 부재중인데 동양협회의 일도 있고, 잠시 유예해 주셨으면 합니다”고 말하면서 거절하던군요. 그리고 홋다·이케다 양씨는 그 다음날 와서 “모처럼 말씀하셨지만, 저는 일본에 있고 싶습니다. 금번 조선 행은 거절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매우 간절히 함께 일하고 싶은 뜻을 기지고 있었던 아카이케아츠시(赤池濃)군은 당시 시즈오카현(靜岡縣)지사였는데, 아카이케군이 괴롭더라도 조선에 데리고 가려고 권하자 아카이케군은 “각하 밑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참가해야지요. 그러나 아직 노부모가 한 분 계시니까 일단은 노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답변을 해드리지요. 그 때까지 유예해 주십시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어떻든 양친에게도 사정을 잘 전해서 승낙을 얻도록 하게”하고 말했습니다. 아카이케군은 재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양친에게 상담한 후 귀경하여 “양친에게 말씀드렸더니 미즈노씨를 위하는 일이라면 단연코 가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걱정은 많이 했지만, 미치지 않은 바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분발해서 각하를 도와 드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장 한 자리는 결정되었습니다. 이카이케 국장에게는 내무국장직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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