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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한·중·일 국민작가를 견주어 새밝힘 한다(1)
포석의 생명살림 문학방정식

김용환 충북대 교수

포석 조명희(抱石 趙明熙‧1894-1938)는 민족수난기를 살면서 항일운동과 사회주의 문학 사이를 오가며 변증법 궤도를 그렸다. 그는 문학의 여러 장르, 희곡, 시, 시조, 소설, 수필, 논설을 망라하며 선구자로서 발자취를 남겼다. 1927년 잡지 <조선지광(朝鮮之光)>에 게재된 ‘낙동강’ 소설에서 땅이 일제에 빼앗겨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근원적 생명력, 하늘의 영(靈)을 향하는 생명살림의 문학을 일구고 주인공을 로사로 부활시켰다.

포석은 ‘무심개신(無心開新)’의 생명살림으로 1928년, 헤이룽 강을 건너 연해주 지역의 새 하늘을 찾아 망명한 후 니콜스크에서 살며 ‘만주 빨치산’을 집필하고 문학 활동을 지속했다. 포석문학은 민족주의 낭만을 비극의 예술범주로 통합하면서 미래와 현실을 아우르는 생명살림을 보여준다. 그의 예술은 실재와 이상 사이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활명개신(活命開新)’을 나타냈다. 불가항력의 운명 앞에서 ‘활명개신’으로 영혼 식민지화에 따른 피해망상을 치유하고, 차별에 저항하는 운명을 ‘샘물’이라는 동시에 담아 우주생명이 개체생명 사이를 파고드는 덕성을 찬미하였다. 우울현장에서 샘물은 춤추며 돌 틈 사이로 스며드는 자애덕성을 보이며 싸움현장에서 험한 산길 사이를 누비며 유유자적하는 청정덕성을 드러냈다. 차별과 편견에서 하늘의 영은 소리되어 산하에 울리는 포용덕성으로 생명을 감싸 안았다.

또 다른 영혼 식민지화 경험을 다룬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는 근대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곤경을 명료하게 그렸다. 그는 신경쇠약에 폐결핵이 겹쳐 불안에 시달렸고 아내유산으로 결혼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1904년, 신경증을 달래고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라는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피해망상 증상을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고양이에 투사하였다.

무분별지(無分別智)를 표상하는 고양이는 떡국과 맥주를 마시고 인간을 염탐하고 조롱하며 관찰까지 한다. 쥐를 잡으려다 수모를 당하고 맥주를 마시고 물독에 빠져 태평스럽게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세상을 하직한다. 고양이는 인간 삶에 비친 차별과 편견을 진단하고 치유하며 인간 욕망의 '아집'과 애착을 규탄하면서, '자기가 주체이고 타인은 객체'라는 자기 본위 사유를 직시하고 자연주의와 대립각을 세웠다. 영혼의 식민지화 망상치유에 무심개신의 활로를 뚫었다.

<아Q정전>은 루쉰(魯迅‧1881-1936) 작품이다. 그는 대지주 장남으로 혁명사상에 눈을 뜨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의학구국을 목표로 삼았다. 중국국민의 전형을 풍자한 소설, <아Q정전>에서, 중화사상으로 영혼이 영토화되어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가는 우매함과 취약성을 아Q에 투사하였다. 아Q는 청조말기 봉건사회 노무자로서 모욕을 당하면서도 정신승리로 자위하며 영혼 영토화의 과대망상에 시달렸다. 아Q에 반영된 일그러진 영웅상은 영혼 영토화의 포장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망상에 시달렸다. 절망에 대한 항전으로, 루쉰은 생명살림을 위해 영혼 영토화 망상을 치유하기 위한 활명개신으로 살리고자 하였다.

그런데 포석의 <불비를 주소서> 시에서 ‘순실(純實)이 없는 이 나라에 아픔과 눈물이 어디 있으며 눈물이 없는 이 백성에게 사랑과 의(義)가 어디 있으랴’ 하며 영혼 식민지화 피해현장이 조국임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타는 불 속에서나 순실(純實)의 뼈를 찾아볼까 썩은 잿더미 위에서나 사랑의 씨를 찾아볼까.’ 하며 활명개신에 접근했다.

아울러 <봄 잔디밭 위에> 시에서 ‘미칠 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엄마! 엄마!”하고 소리를 내었더니 땅이 “우애!”하고 하늘이 “우애” 하옴에 어느 것이 나의 어머니인지 알 수 없어라.’고 하며 무심개신에 접근했다. 근원적 생명력은 봄소식과 함께하기에, 차별과 편견을 딛고 근원적 생명력으로 복귀한다. 포석은 양극단에서 ‘무심과 활명’의 새 밝힘의 길을 열었다. 고양이의 유머감각과 아Q의 과대망상은 포석문학에서 ‘무심과 활명’의 생명살림 문학방정식과 상관연동을 이루어 영혼의 자주성과 자립성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에 있어서 혼의 탈식민지화

시바타 쇼지(柴田勝二) 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國語大學) 교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작가로서 성숙해나갔던 시기는 근대일본의 발걸음이 복잡함과 어려움을 더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소세키의 생애에 있어서 큰 전환점은 1907(明治40)년의 도쿄아사히신문사(東京朝日新聞社) 입사이고 이 사회적 위치의 변화에 의해 소세키는 반은 학자의 여기로 창작하던 그때까지의 삶에서 불특정다수의 대중독자를 상대로 하는 전문작가로 변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소세키의 눈은 보다 강렬하게 ‘비아(非我)’로 바라보는 외부세계에로 돌리게 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강한 ‘나’그 자체를 이야기하기보다 ‘비아’를 파악하는 기점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작품 중의 인칭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 <도련님>의 ‘나’, <풀베개>의 ‘여(余)’와 같은 1인칭부터 <우미인초(虞美人草)>이후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3인칭으로 바뀐 것은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우미인초>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지만 이에 이은 <산시로>, <그후>, <문>의 이른바 초기 3부작을 써서 소세키는 작가로서의 지위와 기법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진행되었던 것이 한국병합의 움직임이며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1907년에는 2년 전에 체결된 제2차 한일협약에 이어서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어서 사법의 중요한 지위에 일본인이 임용됨과 더불어 한국군대가 사실상 해산되었다. 또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퇴위에 몰렸다. 이것에 의해 한국은 독립국으로서의 자율성을 상실하고 거의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반면에 일본의 침략에 반발하는 의병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 추세에 애를 먹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한국통치에 점차 의욕을 잃고 1909(明治42)년 6월에는 통감을 사임하기에 이른다. 그것을 반영하듯이 당초 한국을 ‘보호국’으로 ‘지도’의 대상으로 하되 병합에 반대했던 이토는 사임 수개월 전에는 병합에 찬성의 뜻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1909년 11월에 이토가 안중근(安重根)에 의해서 살해되는 것으로 한국병합의 흐름은 가속화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 사건은 병합이 이루어진 1910(明治43)년의 <문>의 첫머리 가까운 곳에서 화제로 나온다. 아내의 오요네(御米), 남동생의 코로쿠(小六)와의 잡담 속에서 언급된 이 사건에 대해 주인공의 소스케(宗助)는 “이토씨는 죽임을 당했으니까 역사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라고 빈정거리고, 그에 대해 코로쿠는 “어쨌든 만주나 하얼빈이란 뒤숭숭한 곳이군요. 저는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들어요”라는 감개를 토로한다. <문>과 그 전년에 나온 <그후>는 모두 주인공이 친구로부터 그 아내 혹은 공생자(共生者)를 빼앗는 삼각관계의 구도를 가진 작품으로서의 연속성이 뚜렷하고 이것은 분명히 한국이라는 이웃나라를 강탈하려고 하는 일본의 움직임과 조응하고 있다. 양자간의 연속성도 병합의 흐름이 1909(明治42)년부터 1910(明治43)년에 걸쳐 가속화된 경위와 겹치고 있다. <문>에서 소스케에게 내연의 아내를 빼앗기고 난 뒤 만주로 떠나 버린 야스이(安井)의 이름에 안중근과 겹치는 “평안할 안(安)”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흥미롭지만, 그가 일본에 귀환한다는 정보에 접한 소스케가 당황해서 카마쿠라(鎌倉)의 선사(禪寺)에 들어가버리는 것은 첫머리에서 코로쿠가 “만주나 하얼빈”이 “뒤숭숭한 곳”이고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든다는 말과 역시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소세키는 <만한(滿韓) 이리저리: 1909년 9월 2일~10월 14일 소세키가 중국 동북과 한국을 여행한 기행수필.>의 기술 등에 의해 중국‧조선 등 아시아 각국에 대해 멸시적이었다고 현재에도 평가되고 있지만 원래 중국고전에 의해 문학의 세계에 인도받은 소세키에게는 중국에 대한 경의가 있고, 또 슈젠지(修禪寺)의 대환(大患) 뒤에 맨 먼저 한국 병합의 귀추에 대해 친구에게 물었듯이 그는 한일관계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문>의 오요네가 몇 번이나 임신하면서 유산이나 사산으로 아이를 제대로 낳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점쟁이가 “죄가 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는 결코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것도 역시 소세키의 제국주의 비판의 우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비판에 소세키의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중심적인 주제로 포함하고 있는 작품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행인>이다. 아내와 동생의 사이를 편집광적으로 의심하고 후반으로는 친구와 함께 떠난 이즈의 여행에서는 눈에 비치는 꽃이나 초목을 모두 “나의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학자인 주인공 이치로(一郞)의 정신적 균형을 잃은 모습은 미우라 마사시(三浦雅士)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제국주의의 진전 끝에 피폐한 ‘일등국’이 된 근대일본의 비유적인 표상이나 다름없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치로가 제정신을 잃고 광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와카야마(和歌山)와 이즈(伊豆)를 여행한 때라는 점이다. 이곳들은 모두 ‘반도’에 위치하는 점에서 일본이 식민지화한 한반도를 상기시킨다. 사실 기이반도(紀伊半島)와 이즈반도(伊豆半島)는 모양이 약간 한반도와 비슷하고, 또 조선은 병합 후 그냥 ‘반도’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편집광적인 지배자인 이치로가 계속 초조(焦燥)에 사로잡히고 있는데 대해 피지배자적, 종속적이었던 사람들이 그를 떠나 〈독립〉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야기의 벽두는 남동생인 지로(二郞)가 오사카의 친구를 방문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그 상대인 오카다(岡田)라는 남자는 원래 이치로네의 식객적인 존재였다. 또 하녀인 오테이(お貞)도 맞선에 의해 이치로 집을 떠난다. 그리고 아내인 오나오(御直)와의 사이를 계속 의심받았던 지로도 도중에 집을 나와서 하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전개는 이치로 즉 근대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멍에를 벗어나가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점에서 말하자면 소세키가 그려낸 ‘탈식민지화’의 구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阿Q를 넘어, 식민지근성을 넘어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18세기 말,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에 성공한 서구는 과학기술과 민주제도로 무장한 채 잠자는 동아시아를 침탈했다. 황실 조정에서 무지렁이 백성에 이르기까지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으로 무장한 중국의 아Q(阿Q)들은 여전히 깊은 잠에 취해 속수무책이었다. 루신(魯迅)은 2000년 봉건의식에 마비되어 의식성, 주체성, 창조성을 상실한 채 약한자에게는 스스로 우쭐해 하거나 강한 자에게는 자기비하로 한없이 낮아지는 근대 중국인의 국민성을 직시했다.

탈(脫)식민지화란 원래 제국주의 지배 상황과 식민지담론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때문에 탈식민지화는 주로 서양의 침탈에 의한 동양의 주변화와 동양의 그것에 대한 해방과 저항이 주를 이룬다. 서구의 중국 지배 과정에서 노정된 식민의식과의 상관성을 발굴해 내는 작업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신중을 요한다. 루쉰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국의 과제는 반제반봉건이었다. 제국의 침탈에 의해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억압과 왜곡으로 신음했고 봉건질서에 의한 질곡도 감내해야 했다. 루쉰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의 절대다수가 반제(反帝)보다는 반봉건(反封建)에 치중해 있고, 반식민지 투쟁보다는 반봉건 계몽의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에게 ‘탈식민지화’를 명명한 것은 물질적 식민지화 상황보다 훨씬 깊고 짙은 정신적 식민지화 상황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정신적 식민지화 상황에 대한 반대, 저항, 극복의 희망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루쉰의 작품에서는 이성과 자유의지, 주체의식 등 합리적 상식을 배제당한 마비된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 잇는 부리 깊은 봉건의식을 어떻게 타파하고 각성된 민중으로 되살려 낼 것인가에 대한 투철한 투쟁을 발견할 수 있다. 루쉰은 제도로서의 식민지화보다는 중국인들의 사상의식 속에 뿌리박힌 식민지근성을 어떻게 탈각시켜 주체적 민중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를 고뇌했다.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탈해 오면서 이식한 식민지화가 아니더라고 봉건 2000년 역사 속에 내장된 유습의 탈피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던지는 중국의 현대사가 입증하고도 남는다.

루쉰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과정에서 노정된 물리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넘어 중국인의 영혼에 깃들어 있는 봉건성과 식민지근성을 깨치고 나와 ‘영혼의 식민지화’를 탈피하고자 했다. 때문에 루쉰 문학의 시작과 끝은 바로 ‘국민성개조’에 있었다. 근대 중국은 여전히 근본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격절의 시대를 관통하는 중이었고, 중국 현실상화에 대해 모든 중국인들이 스스로 각성해 ‘무쇠로 만든 방(鐵房)’을 뛰쳐나와 함성을 지르기를 고대했다. 루쉰은 이해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당시 사회의 역사 현실에 부합하는 인물형상을 빚어내 조롱하거나 풍자함으로써 중국인의 정신적 태도를 의학적으로 분석 해부했다. 또한 이를 통해 중국인의 ‘국민성’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냄으로써 ‘자기성찰하게’ 했다.

그렇게 빚어낸 수많은 인물형상 중에서도 발군은 역시 아Q다. 어쩌면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이지만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고, 또한 미래에도 존재할 인물일지도 모른다. 아Q는 개명하지 못한 채 혼돈상태로 존재하는 암담하고 무능한 인물의 전형이다. 환경에 맞서 대항하지도 못하는 고루한 포로이자 자존감이나 자아인식 또는 주체의식 등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노예일 뿐이다. 아Q에게는 제국주의 식민주의나 봉건의식 중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고루 구비돼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저항의 동력은 거세됐고 주체의식조차 마비된 잉여인간으로서 ‘망각’이라는 중국 전통적 전래보물을 답습하고 있는 존재, 지독한 콤플렉스에 치유불가의 열등감에다가 자기위안과 합리화의 최대 무기인 ‘정신승리법’까지 장착한 노예성의 전형인물이다. 게다가 적절한 자기비하나 자기보다 못한 대상에 대한 징벌적 화풀이도 빠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나 중국인 특유의 자고자대(自高自大)또한 만만찮다. 아Q의 존재방식은 철저한 무시, 회피, 합리화, 근거 없는 우월적 지위라는 ‘자위’, 권력에 무름 꿇는 노예근성 등이다. 아Q의 굴욕과 비극은 저항과 굴종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존재의 ‘식민성’에 기인한다. 루쉰이 우려하고 근심했던 ‘열근성’개조의 염원은 바로 ‘탈식민주의’를 통한 주체적 인간으로의 변화로 나아가 진정한 ‘민족혼’이 되기를 간곡히 희망했던 것이었다.

루쉰의 작품에는 봉건관습에 대해 저항하면서도 ‘식민성’에 대한 내부혁명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한 국민들에 대한 답답함이 배어 있다. 루쉰이 갈망했던 것은 다름 아닌 영혼의 식민지근성 극복이라는 문제였다. 루쉰은 아Q를 통해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위해 정형화의 부당성을 간파하고 이에 포섭당하지 않는 저항이 필요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Q의 비극성은 웨이쫭(未庄)의 통치계급이 아Q를 구획, 배제, 규정, 분류, 명명함으로써 피지배의 틀 속에 안존하게 만든 데 있다. 성추행범, 도둑놈, 심지어 마적단의 일원이라는 누명을 씌워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농촌시민사회이 시민권마저 박탈함으로써 그를 형장의 이슬로까지 인도하게 됨을 아Q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 아Q의 비극이다. 루쉰은 ‘아Q’에서 ‘광인(狂人)’까지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인물형상을 통해 봉건역사에 찌든 사상의식을 통렬히 비판함으로써 ‘탈식민지화’의 긴급함과 그 중요성을 명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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