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자 시인

무심천 물길을 따라
노을꽃 환히 타오른다
억새꽃 흩을 대로 흩고
허리 반쯤 굽어서야
발부리 돌아나간 도랑물
낮은 목소리에 귀를 적시는 봄.

불혹 지나 쉰 고개를 넘어
이순의 강가 다다르면
검디검은 머리카락 반백으로 물들고
사랑도 넉넉히 길들어 강줄기로 넘쳐흐를까.
고개 숙여 지나온 길 더듬어 볼 수 있을까
발자국 어디엔가 가시로 박힌 낭자한 선혈
모래톱 맑게 씻기듯 헹궈질 수 있을까.

△시조집 ‘그래, 섬이 되어 보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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