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무

오랜만에 비 내리는 교외에 나와

인적 없는 들길을 걸어봅니다

함초롬히 비에 젖은 강아지풀도 보이구요

예쁜 각시붓꽃도 보송한 민들레 꽃씨도

맑은 눈을 글썽이며 젖어 있어요

물 불어 오르는 도랑가에는

개박두더지도 민달팽이도 분주합니다

벌써부터 버들잎들 몰래 숨어서

덩달아 속내까지 몸을 적시구요

꽃 다 떨군 조팝나무도 빗속에 조금은 처량합니다

나도 껑충한 방동사니풀 한 포기 쯤으로 서서

종일 빗속에 젖어보고 싶은 날 있습니다

젖은 눈으로 세상을 적시는 것들 바라보며

대견해서 함께 빗물에 젖어보고 싶은 날 있습니다

 

△시집 ‘바람연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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